자원봉사 보고서

넌 착한 사람들을 믿니...?

너의 눈빛 안에는 호기심 반 걱정 반이 담겨있군. 뭐 물론이지. 대학시절 동안 가장 친했던 친구를 5년 만에 봤는데 이런 소리나 하고. 충분히 그럴 만도 하지. 잘 지냈냐고? 그런 상투적인 안부 대신에 소주잔 먼저 비우는 게 어때? 그렇지, 잘 마시네. 누가 의사선생님 아니랄까봐 술 마실 때도 아주 기품 있고 안정적이군. 정신병 걸린 환자들을 상대하려면 의사인 니가 먼저 동요되면 안 되니까. 항상 침착하게 그들이 가진 문제점을 해결해줘야겠지. 어린 양들의 마음 속에 있는 그림자들을 걷어내고 밝은 빛으로 인도하는 게 네가 하는 일 아냐?

아니, 오해는 하지 마. 내가 너의 그 정신과 의사선생 다운 태도 때문에 기분 나쁘다거나 하는 건 아니니까. 오히려 내가 말하는 건 그 반대야. 이 시간만큼은 날 환자로 생각해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정신이 병든 현대인들 위에서 옳은 답을 내려주는, 하얀 가운을 입은 신답게 내가 정말 잘못된 건지 판단해줬으면 좋겠어. 내 표현이 너무 오그라드나? 미안. 너도 알다시피 내가 한 때 소설가를 꿈꿨잖아. 뭐 정작 국문과인 나보다 네가 더 순수문학은 좋아했지만 말이야.

넌 정말 변한 게 없구나. 옛날에도 그렇게 사려 깊은 얼굴로 내 이야기를 들어주곤 했었어. 너에게만큼은 내가 느낀 걸 솔직히 말하고 싶어. 대신 넌 친구의 이야기라고 사적인 일로 여기지 말고 객관적으로 들어줬으면 좋겠어. 혼란스러운 얼굴을 한 환자 앞에서 차트를 든 채, 온화하지만 냉철한 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네 일터에서의 모습처럼 말이야.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보고서라고 생각해.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일단... 일단 한잔하자.

그래.... 자원봉사 체험 보고서라고 하면 되겠네.

너도 알다시피 난 실패했었어. 왜? 너무 직설적인가? 하지만 사실인걸 뭐. 물론 다른 사람이 내 실패담을 듣는다면 재수 없다고 생각할 게 분명할거야. 한국 최고의 명문대라고 하는, 그 서울대를 졸업한 사람이 실패 운운하다니. 그치? 맞아, 우리가 나온 대학은 최고의 대학이었지. 뭔가 생경하게 느껴지는데? 너나 나나 한 땐 엘리트였어. 아차 넌 지금도 엘리트지? 미안하다.

어디서 서울대라고 어깨에 힘주고 다니거나 하지 않고 항상 겸손하던 너에 비해서 난 항상 거만했었어. 겉으로 티는 안 냈지만 내가 지식인이노라, 하는 자의식을 가지고 허황된 환상 속에 빠져 살았지. 난 정말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니까. 솔직히 우리 학교 입학한 사람은 대부분 이런 생각 한번쯤 해보지 않았어? 니미. 잔 비우자.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진 모르겠어. 불투명하고, 또 그래서 무언가 대단한 일이 일어날 거 믿을 뿐이었던 내 미래가 현실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시작한거지. 희미한 안개가 걷히고 나자, 거기엔 너무도 허무하고 밋밋한 결과 밖에 없었어. 왜 있잖아, 제작비도 많이 들고 CG도 빠방한 할리우드 액션 영화를 보러 갔는데, 그 결말이 너무 시시한거야. 그리고 그 시시한 결말이 끝나고 영화관을 나서며 집으로 돌아갈 때의 그 기분.

그래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아직 진정한 보석은 오지 않았다고 스스로 자위하며 기다렸어. 지방의 자잘한 학교에 다니는 새끼들이 빨빨 거리는 걸 보며 비웃기만 했지. 속으론 불안했어. 하지만 불안해하는 내 자신을 속일 수밖에 없었지. 왜냐하면 그건 나도 그들과 다를 바 없이 비루한 현실을 살아간다는 증거니까. 난 더욱 대단한 척 했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렇게 시간만 보냈어.

세월은 흐르고, 남은 건 할 줄 아는 거라곤 잘난 척하는 거 밖에는 없는 한심한 인간이 되어있더군. 난 일을 할 수도, 취업을 할 수도 없었어. 씨발. 뭐? 뭐가 할 수 없느냐고? 이건 내가 실제로 일을 할 능력이 있는가, 아니면 취업할 정도의 스펙이 있는가랑은 다른 얘기야, 새꺄. 니미, 너도 내가 눈만 높아서 백수로 살아온 것처럼 보는 거냐? .... 미안. 내가 좀 취기가 올라오나 보네. 괜찮아, 오늘은 좀 취하려고 온 거니까.

그렇게 너도 알다시피 졸업하고 우리는 헤어지고, 난 5년 동안 백수로 지내면서 무수한 날들을 골방 속에서 지냈어. 난 자꾸만 안으로 안으로만 썩어 들어갔어. 수도 없이 많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날리곤 했었지. ‘그때 내가 사법고시를 했으면? 암기라고는 내가 최고였는데, 당장 패스했을 걸...?’ ‘대학원에 갈걸 그랬어. 그 새끼 보다 문학에 대해서 내가 더 잘 알고 글도 더 잘 쓰는데. 그 새낀 벌써 박사까지 다 땄다지, 아마?’ ‘2학년 때 같이 창업해보자고 한 선배 따라서 그 일을 했었으면..’ 하고 말이야. 웃기지? 씨발. 나도 쪽팔린다야. 그러다가 결심한거야. 밖으로 나가자. 이렇게 살 수는 없다.

내가 선택한 게 뭐게? 응, 자원봉사였어. 남들처럼 뭔가 능력을 발휘해서 돈을 벌 엄두는 안 났어. 그렇다고 특별히 선의가 발동한 건 아냐.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순수하게 남을 위해서 노동하는 건 어떨까라는 마음에서였지. 왜? 웃기냐? 니미.. 그땐 정말 그랬다 새꺄. 그래서 꽃동네에 들어갔어. 알지? 사회 복지 시설. 사실 숙식도 제공해준다는 말에 혹한 것도 있었지. 더 이상 방 안에서 손가락 빨고 살 순 없으니까. 짜식. 뿌듯한 얼굴이네. 한잔 마시자.

자원봉사라.. 너도 내 성격 알잖아? 그런 건 가식적인 일이라고만 생각했었지. 그 이기적이고 오만한 서울대생이 어디 가겠냐? 응. 솔직히 몸 불편한 분들을 보고 처음 드는 건 혐오스러움이었어. 날 욕해도 좋아. 니미, 욕하라니까? 새끼. 먹고 싸고 그리고 자는 것 하나까지도 혼자서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과 솔직히 살을 맞대는 게, 아니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치가 떨렸어. 씨발. 그래, 나 나쁜 새끼다. 아주 잘나셨어요, 킥킥...

근데 내가 놀랐던 게 뭔 줄 알아? 나 말고 다른 자원봉사자들의 얼굴이었어. 오물과 그림자들로 범벅이 된 내 얼굴과 다르게, 그들의 얼굴은 티 하나 없이 밝았어. 그들은 정말 그들의 일을 사랑하는 걸로 느껴졌어. 이건 진심이야. 내가 그 시설의 장애인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한 건, 바로 궁금했기 때문이야. 도대체 왜 그럴까. 왜 자원봉사자들은 저렇게 행복해보일까 하고 말이야.

쉽지 않더군. 알다시피 난 그 동안 나만의 성을 짓고 세상을 향해 가시를 뻗치던 고슴도치 같은 새끼였잖아? 씨발. 고슴도치는 귀엽기라도 하지. 못생긴 선인장으로 해두자고. 근데... 존나 그 가시가 점점 약해지는 거 같더라고. 항상 목구멍 아래에 뭔가가 묵직하게 있는 것 같은 답답함도 조금씩 사라지는 거야. 씨발 그게 대체 뭐인지는 표현은 못 하지만, 대학교를 입학한 스무 살 이후로 한번도 표현되지 못한 채 묵혀 있던 그게.. 점점 사라지는 거 같더라구.

니미 씨발 그건 정말 대단한 경험이었어. 뭐? 나 취했다고? 잔말말고 한잔 더 따르기나 해.

그러면서 점점 다른 자원봉사자랑 친해지기 시작했어. 처음에는 나를 경계하던 그들도 마음을 열고 날 받아주더라고. 솔직히 나는 처음에 내 학벌도 안 알려줬거든. 알잖아? 우리가 어디가서 ‘서울대’라고 말하면 눈빛부터 달라지는 거. 그 눈빛은 특히 나에게는 대개가 안 좋은 눈빛이었지. ‘서울대도 별 거 없구만’ ‘서울대 나와서 쯧쯧쯧..’ 이런 소리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근데 그 사람들은 정말 순수하고 해맑고 좋아했어. 서울대를 처음으로 봤다며. 자기 일도 아닌데 왜 그렇게 좋아할까 싶을 정도로 말이야.

그곳에서의 생활도 적응이 되고, 나는 한동안 안 쓰던 글을 쓰기 시작했어. 어떤 글이냐고? ... 나 자신에 대한 글이지. 내가 5년 동안 글을 안 썼던 이유가 뭔 줄 알아? ... 씨발. 알 아네. 역시 대단하셔? 낄낄. 굳이 일기나 그런 걸 쓰지 않고 소설이나 시를 쓰더라도, 글쓰기는 곧 자기 자신에 대한 고백이니까. 나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으면 안 되는 거지.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러니까 글을 쓰면서, 나는 내가 여태까지 의식하지 못했던, 아니 일부러 의식하려 하지 않았던 나를 발견하게 되는 거나 다름없다, 이거야.

그렇게 한동안 글쓰기에 침잠하다 보니까, 약간 이상한 글이 나오데? 씨발... 내가 왜 행복한가에 대해서 쓰는데..

난 ‘내 생각이 아직도 삐뚤어져 있구나’ 라고 여기며 반성하곤 다른 자원봉사자들을 묘사해보기 시작했어. 그들의 얼굴을 잘 들여다 보고, 그들의 웃음과 긍정, 행복을 표현하려고 했는데...

근데 그러면 그럴수록 더 이상해지더라고. 이상하다는 말이 뭐냐고..? 글쎄. 한잔 더 마시자. 나 괜찮아. 씨발, 괜찮다니까.

내가 아까 말했지? 나 서울대라고 했을 때 자원봉사자들이 되게 순수하고 해맑은 얼굴로 좋아했다고. 근데 돌이켜 보니까 그 얼굴이 장애인들을 대할 때 얼굴이랑 같더라고..

그리고 몸이 불편해서 바지에 똥을 지린 어떤 늙어빠진 할배의 기저귀를 갈아주다가 문득 방에 있는 거울 속 내 얼굴을 봤는데, 내 얼굴이 딱 그 얼굴이었어.

행복한 얼굴. 목구멍 속에 꽉 막혀있던, 그래서 세상을 향해 가시를 드러낼 수 밖에 없었던 무언가가 해소된 그 얼굴.

근데 나는 나의 그 얼굴을 보고 기저귀를 가는 것도 있고 멍하니 거울만 봤어. 그리고 다가가서 나 자신을 돌이켜봤어.

거울 속 나는 그 아름답고 순수한 얼굴로, 이렇게 되뇌이고 있더라고.





‘내가 저것들보단 낫지...’

‘내가 저것들보단 낫지...’

‘내가 저것들보단 낫지...’



내가 서울대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와, 그리고 날개 없는 천사처럼 장애인들을 돌봐주던 자원봉사자들 얼굴에 드리웠던 그 행복도 결국에는 그런 말들을 속에 담고 있었어.


‘내가 저것들보단 낫지...’


라고...

그 순간 너무 무서워졌어. 씨발. 무서워졌다고. 니미. 그래, 자원봉사자들도 무서웠지만, 나도 무서웠어. 사람이 무서워졌어. 그리고 너무 지긋지긋해졌어. 그렇게 나는 바로 거기를 나왔어.

그리곤 며칠동안 방 안에 틀어박혀 있다가 널 만난거야.

여기까지가 내 자원봉사보고서야.

내가 처음에 물었지? 너는 착한 사람을 믿냐고..

너는 그 사람들을 착하다고 말할 수 있어? 이타적이라고 말할 수 있어? 그들의 행복은 정말이었어. 그 해맑은 얼굴은 진심이었어. 그리고 그 감정의 근원이 바로...

야 씨발, 놔 봐. 나 안 취했다니까. 한잔만 더 마시고.

의사선생님. 나한테 말 좀 해줘. 내가 아직도 비뚤어져 있는 것뿐이지? 아직도 실패한 명문대 졸업생의 콤플렉스 때문에 세상이 이상하게 보이는 거지? 그치? 그 사람들은 착한 거겠지? 그럼.. 착한 건 뭘까.

그 행복은 뭘까?

넌 어떻게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