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일본에서 일하는 친구에게서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잘지내니 친구야.'

'엉 너는?'

'나는 전철인데
움직이질 않네?'

'왜?'

'하루에 몇명이 뛰어내리는지....'



아....

유난히 무거웠을 너의 퇴근길.
너는 시체를 보진 못했을테지만,
분명 지하철 안내 멘트에서 갈기갈기 찢어진 삶을 보았을 것이다.
그래 그때 하필 내 생각이 난거겠지.

일본엔 스크린 도어 설치된 곳이 별로 없나?
이런 바보같은 생각을 잠깐 하다가
이윽고 섬��함이 밀려온다.
멈춘 지하철에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스크린 도어가 있었다 한들
죽음에 대한 의지가 터져나가는 걸
무슨 수로 막을 수 있을까.

각자도생의 시대.
우리는
선로에 뛰어든 사람이 되거나
멈춘 지하철에서 말없이 출발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거나
또는 집구석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전해 듣는 사람이 될 것이다.

'퇴근길에 사람이 죽었고, 나는 그 사람이 죽은 그 자리에 서있어. 너도 살아있지?'

가끔 나는 내가 살아있는 게 죄스러울 때가 있다.
몇년동안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삶.
무시당하고, 비웃음 당하고, 무서워서 이리저리 도망가는 삶.
누군가에게 자랑이 되지 못하는 삶.
이제는 지하철도 안타고, 집구석에서 키보드나 두들기는 삶.
지고 지고 또 져서 이젠 시들어버린 열정같은 걸
아직도 쥐어짜내려 애쓰는 삶.

지하철 청소를 하시는 어무니나
퇴직이 얼마 남지않은 아부지나
오늘도 야근하는 동생이나
퇴근길에 안부를 묻는 친구같은 존재들이
따뜻하면서도 괴롭다.
사람의 마음속에도 스크린 도어같은 게 있다.
튀어나갈 것 같은 절망을 애써 진정시키는 그런 거.

나는 저녁 밥상에서 어머니께 물었다.

"요즘은 지하철에서 자살하거나 하는 사람없지?
그 사람들 수습하고, 피같은거 지우는거 엄마가 안하지?"

어머니는 갑자기 심각한 얼굴로 아니라고 하는데,
나는 그 표정이 괜히 쓰려서 고개 숙이고 "응 그렇구나" 했다.

그리고 밥을 꾸역꾸역 씹으면서 생각했다.

그냥 지하철이 올 때까지 버티자.
스크린 도어가 열린 곳에 발을 내딛어도,
살 수 있는 그곳으로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타는 곳 안쪽으로 한 걸음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

이 방송 들릴 때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