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귀론（無鬼論）

무귀론: 천지간에 귀신이란 것이 없다는 이론.


내 친구 A는 논리학을 전공했고 어렸을 적부터 말을 너무나 잘해서 그를 대화로 이긴 사람은 단 한 명도 못 봤다. 심지어는 A가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 논리가 너무 완벽해서 빈틈을 발견하기도 쉽지 않을 뿐 더러 되려 반격을 하려다가는 내 꾀에 내가 걸리기도 한다.

그리고 내 친구 B는 무당의 기질을 타고났으며 그의 가족은 대대로 무당이다.

어느 날 A와 친구 B가 만나서 얘기를 하는데, 자연스럽게 귀신에 대한 얘기로 나왔다.

논리학을 전공한 A는 무귀론을 주장하며 귀신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차분하게 설명하였고, 그걸 듣는 나와 B는 평소처럼 A의 페이스대로 휘말리고 있었다.

그리고 B는 귀신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도, A의 무귀론에 반박하지도 않았다.


A: 그러니까 귀신이 존재 할 수 없는 거야, 알겠지?

나: 너 말 듣고 보니 애초에 존재 할 수가 없는 거구나…

B: 근데 귀신은 존재해…

A: 그럼 그걸 증명해봐, 원래 ‘입증책임’이라고 재판이나 소송 과정에서도 자신의 주장이 사실임을 증명해야 할 책임이 있는 거야, 증거는 주장하는 사람이 대야 대는 거라고.

B: 곧 나타날 꺼야


그리고 그 때, A에게 다가선 한 여성.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대학생 같이 보였다. 검은색 후드티에 하얀 캔버스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여성: 귀신은 있어요!

A: 그럼 그걸 증명해 보세요, 저는 없다는 걸 증명했어요.

여성: 세상에는 우연이라는 게 있잖아요, 우연은 증명할 수 없을 때가 있는 법이에요, 귀신도 이와 비슷해요 우연히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귀신이 의도한 것이죠.



그렇다. 여성의 반박은 생각보다 허술했다.

A와 여성은 그렇게 30분 정도를 귀신의 유무에 관해 토론을 했고, B와 나는 둘의 토론이 꽤나 재밌었다. 하지만 결국 여성은 A에게 휘말렸고, 결국 여성은 몹시 분해하며 우기는 상황이 벌어졌다. 흡사 어린아이가 만화영화 주인공을 실제로 만났다고 아빠한테 우기는 것과 같았다.

그렇게 상황이 완벽하게 기울어 지자 여성은 울먹였고, A는 계속해서 그 여성을 몰아붙였다. 카페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우리를 주시했고 나는 A를 말렸다.

결국 여성은 A에게 “당신은 그믐달이 뜨는 날 조심해야 될 꺼야!” 라는 저주를 하고는 나갔다.

A는 협박을 했다고 경찰에 신고를 하겠다는 것을 나와 B가 겨우 말렸다.

그리고 우리는 커피숍을 나와 하늘을 보니 늦은 밤이었고 그 날은 보름달이 뜬 날이었다.




B: 너 어떻게 하려고 그래?

A: 뭐가 말이야? 협박 받은 거? 하나도 안 무서워, 원래 사람은 아는 게 없으면 욕을 하는 법이거든.

B: 그래…


무당인 B는 꽤나 진지한 표정이었다.

몇 일이나 지났을 까, 달은 하현달을 넘어 그믐달이 뜨는 날이 되었으나 A는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혹시 몰라서 B가 A와 함께 다녔는데 여성은 A를 스토킹 하지도 않았고, 카페의 논쟁 뒤로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믐달이 뜬 날 밤…

저녁을 먹고 9시가 지나서 내게 전화 한 통이 왔는데 B 였다.

B: 카페로 와라 그때 만났던 곳


나는 집 근처인 A가 여성과 논쟁을 벌였던 그 카페에 갔고, 거기에는 A가 구석에 앉아서 계속 문 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내가 온 것을 본 A는 바로 내게 달려와서 나를 격하게 안았다. （약간 설렜다.）
A의 경직된 얼굴이 풀리고는 말하길

“그 때 만났던 그 여자가 갑자기 나타나서는 날 따라와, 나 좀 살려줘”

나는 무슨 소린지 영문을 몰랐다. 아마 그 여성은 어떻게 A의 행방을 알았는지 찾아내서는 A에게 해코지를 하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설령 해코지를 하더라도 겨우 대학생 1,2학년 처럼 보였던 여성을 두려워 할 A가 아니어서 A에게 왜 반격을 하지 않았는지, 혹시 흉기를 들고 있었거나 여성 말고 다른 사람이 있었는지를 물었는데

A는 “여성은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고 누구와 함께 오지도 않았는데, 여성을 보자마자 갑자기 온몸이 다 떨리더니 너무 무서워졌고 자기도 모르게 도망쳐서 카페까지 왔다”고 했다.

나는 A를 천천히 달래며 진정시켰고, A가 진정되자 때마침 B가 카페에 찾아왔다.


“어서 오세요”
카페 알바생이 인사를 한다.

“아메리카노 아이스로요”
B는 평소처럼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아메리카노요, 네 알겠습니다”

“야 A, 좀 괜찮냐?”
B가 A의 안부를 묻는다. 아직 A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것 같다.

“야… 뭐냐… 내가 이상한 거냐? 아님 그 여자가 귀신이었던 거냐?”
A는 겨우 진정된 몸이었지만 말을 더듬으면서도 땀도 흘렸다.

“어머, 두분 화해하셨나 봐요? 저번에 카페에서 그렇게 싸우시는 것 같았는데”

알바생의 한마디였다.


나는 알바생에게 A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뇨, 그때 싸운 건 얘네 둘이 아니라 왠 여성분하고 요 녀석이에요”

“아닌데…여성분이요..? 분명 두분 맞는데…? 뭐 조심하셔야 한다고 까지 했잖아요…? 여성분은 없었는데요...”


B는 씨익 웃었고, 입을 열었다.

“있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