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아! 수비 좀 더 배우고 와. 여기는 고등학생이 노는 데가 아냐."

"이번엔 내가 피해줄테니 꼭 좀 넣어라. 가족들 보기 창피하지 않니?"

이런 말을 들은 선수는 피부 색깔에 관계없이 머리에 김이 무럭무럭 날 게 틀림없다. 당연히 게임도 풀리지 않는다.

바로 트레쉬 토킹（Trash Talking）의 진수다.

트레쉬 토킹이란 경기 때 선수들이 쓰는 거친 말이나 오버하는 행동을 일컫는 말이다. 미국 프로농구（NBA） 선수들은 대부분 경기 때마다 트레쉬 토킹으로 상대의 기를 죽인다.

`농구의 신' 마이클 조던부터 한국 프로농구 삼성 썬더스의 용병 싱글턴에 이르기까지 모두 즐기는 트레쉬 토킹은 슛보다 빈도수가 잦은 농구기술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심판들은 트레쉬 토킹을 막기 위해 테크니컬 파울을 주고 벌금까지 때리지만 돌아다니며 떠드는 입을 막지 못하고 있다.

플레이오프의 계절을 맞아 트레쉬 토킹의 세계를 소개한다.

91∼92 플레이오프 시카고 불스와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의 5차전. 2승2패로 팽팽히 맞선 두팀은 벼랑 끝에서 만났다.

천하의 마이클 조던도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조던의 당시 수비수는 클라이드 드렉슬러.

조던은 3점슛이 연거푸 터지자 마음의 여유가 생겨 드렉슬러에게 넌즈시 말했다.

"오늘 내 슛이 너무 좋은 것 같애. 자네 잘못이 아냐."

드렉슬러의 머리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조금 뒤 조던 자신도 믿지 못할 만큼 먼거리에서 3점슛이 성공했다. 또다시 조던의 입이 열렸다.

"이번에도 자네 잘못이 아냐. 나도 놀랬어. 이번에는 자네가 넣어보게."

드렉슬러의 머리를 끝내 열리고 말았다. 조던의 슛이 더욱 활개를 쳤음은 물론이다.

`트레쉬 토킹의 대가' 조던의 입담은 NBA 어록에 남을 만큼 예술적이다.

"자네 수비 아주 훌륭해. 하마터면 내 슛이 막힐 뻔했어."

"나 오늘 50점쯤 넣을 것 같애. 자네 얼굴에 먹칠하는 것 아닌가 몰라."

"이번엔 꼭 넣게나. 자네 가족을 위해서라도 내가 피해줄께."

시애틀 슈퍼소닉스의 포인트 가드 게리 페이튼은 트레쉬 토킹에 관한 한 조던보다 한수 위인 것으로 평가된다.

96시즌 신인 벤쿠버 그리즐리스의 가드 크리스 로빈슨은 지금도 게리 페이튼의 `토킹'을 잊지 못하고 있다.

벤치에 앉아있던 페이튼이 "이봐! 애송이. 수비 좀 배우고 와야겠어. 여기는 고등학생이 뛰노는 데가 아니라구."

페이튼의 혀에 망가진 사람은 로빈슨 뿐만 아니다.

덴버 너겟츠의 바비 잭슨은 페이튼이 시끄럽게 떠들자 뒤질새라 "네가 얼마나 잘하는지, 네 맘대로 쏴봐"하자 페이튼은 보란 듯이 3점슛을 넣었다.

페이튼은 그뒤로는 잭슨을 볼 때마다 "내가 괜히 1200만달러씩 받는 줄 아냐"라며 쏘아댄다.

또 페이튼의 토킹에 질린 유타 재즈의 존 스탁턴이 "숨을 쉬면서 얘기하지"라고 하자 페이튼은 "존 할아버지, 내 혓바닥의 젊음이 부러운가 보지?"라고 맞받아쳐 질리게 만들었다.

심판은 트레쉬 토킹에 대해 500달러짜리 스티커를 발부하지만 페이튼은 해마다 2만달러의 벌금을 내면서도 입을 쉬지 않는다. 과연 트레쉬 토킹의 대부답다.

그러나 페이튼은 트레쉬 토킹을 `신앙' 차원에서 말한다.

"코트에서 말을 하지 않으면 농구를 하는 것 같지 않다. 나는 트레쉬 토킹을 하면서 `내가 최고다'라는 자기 최면을 건다. 트래쉬 토킹은 이기기 위한 방법이다."

유타 재즈의 `우편배달부' 칼 말론은 골만 배달하는 게 아니라 `토킹'도 퀵서비스한다.

덩크슛을 성공시킨 뒤 넘어져있는 상대 선수에게 "어디 다치지 않았니? 다음부턴 내 앞에 얼쩡거리지마. 선수생활 끝내기 싫으면"이라며 근육질의 팔을 들어보인다. 이쯤되면 왠만한 선수는 주눅이 들게 마련이다.

지난 시즌 득점왕인 필라델피아 76ers의 앨런 아이버슨의 입담은 신인 때부터 선배들을 끓게 했다.

마이클 조던에게는 "조던, 절대로 은퇴하면 안돼. 내가 곧 이길테니까"하고 했는가 하면 샤킬 오닐, 그랜트 힐 등 쟁쟁한 선수들과 맞선 올스타전에서는 "당신들 정말 올스타 맞아? 동네코트에서 하는 것 같잖아"하며 선배들의 비위를 건드렸다.

샤킬 오닐이 "경기 때 가만두지 않겠다"고 하자 그 다음 멘트가 더 히트였다.

"오닐, 너는 내 상대가 아냐. 내 상대는 오직 조던 뿐이야."

이때 찰스 바클리가 오닐을 말리며 아이버슨을 꾸짖자 아이버슨은 곧바로 대꾸했다.

"바클리, 네가 NBA에 남긴 게 뭐가 있냐. 챔피언 반지가 있냐, 득점기록이 있냐?"

이들은 몸싸움 직전까지 갔지만 조던과 그랜트 힐이 말려 불상사는 없었다.

콩고민주공화국 출신으로 5개 국어를 구사하는 덴버 너켓츠의 디켐베 무톰보는 트래쉬 토킹도 특이하다.

공개 인터뷰에서 "나를 가장 귀찮게 하는 선수는 데니스 로드맨이다. 그러나 나는 로드맨과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거의 미친 사람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로드맨과 말한 것을 우리 아버지가 아시면 나랑 죽을 때까지 말 한마디 하지 않으실 것이다."

무톰보는 또 어학실력을 발휘, 상대가 모르는 외국어로 트래쉬 토킹을 한다.

그의 `토킹' 가운데 최고 히트는 `Dikembe Mutombo Mpolondo Mukamba Jean Jacque Wamutombo'라고 외치는 것이다.

`사바나의 아침'에 나오는 추장의 주문 같은 이 말은 다름아닌 그의 본명이다.

지금 NBA는 마지막 승부를 겨루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어보면 세계 최고 수준의 `토크'가 만발하고 있다.

N.B.A.L.I.N.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