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주세요!!”

그녀의 울부짖음은 내가 그 근처를 갈 때까지 이어졌다. 그 덕분에 그녀에 대한 내 생각이 조금씩 부정적으로 변해갔다. 이런 곳에서 비명을 지르면서 살려달라고 하는 건 너무 어리석은 생각이다. 자신을 납치한 납치범의 심기를 거스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밀폐된 공간에 갇혔다는 말은 밖에서 지나가는 사람이 그녀의 구조신호를 들을 가능성이 상당히 낮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계속 비명에 가까운 소음을 흘렸다.

‘그래도 내가 모르는 것을 알 수도 있으니 일단 구해보자.’

그렇게 생각하고, 그녀가 갇혀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방문 앞에 섰다. 문고리를 잡기 전에 주위를 빠르게 살핀 뒤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돌렸다.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내가 슬그머니 들어오는 것을 본 그녀는 방금 전보다 훨씬 큰 소리로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짜증이 솟구쳤지만 그녀 입장을 생각해서 참기로 했다.

‘정말 이런 곳에서 비명을 지르다니 제 정신인가?’

원래 그녀의 반응이 정상적인 사람의 반응임을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쉿.”

검지를 빠르게 내 입술에 갖다 댔지만 의미가 없었다. 그녀는 이미 나를 제대로 쳐다보고 있지도 않았다. 조금이라도 소음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재빨리 문을 닫고 그녀에게 빠르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재빨리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영화에서나 하는 일이 실상에서 쉽게 될 리가 만무했다.

“으악!”
“더러운 손을 어디다 갖다 대는 거야!!”

정말 성깔 있는 여자였다. 초등학생 이후로 사람에게 물려보긴 처음이었다. 얼마나 쌔게 물었는지 중지에 이빨자국이 생겼다. 순식간에 짜증이 폭발해서 하마터면 그 여자의 면상을 주먹으로 갈길 뻔 했다.

“구해주러 왔어요. 조용히 해요.”

진지하게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지만 이미 그녀의 눈에는 사람에 대한 신뢰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자세히 보니 그녀가 입고 있는 교복이 반쯤 벗겨져있는 상태였다. 아슬아슬하게 하얀 속살을 가리고 있었지만 조금만 각도를 바꾼다면 그녀의 작은 가슴까지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거짓말하지 마!!”

마치 야생고양이를 보는 듯 했다. 얼굴만 봤을 때 고등학교 3학년 쯤 되어 보이는 외모였다. 물론 그보다 더 어릴 수도 있지만 말이다.
갈색 빛이 맴도는 큰 눈에 어릴 적 첫사랑을 연상케 하는 하얀 피부. 딱 잘라 말하자면 이런 곳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미인이었다. 하지만…….

‘미인이고 나발이고…….’

나를 믿지 않는 사람은 필요가 없다. 구해준다고 하더라도 나를 끝까지 믿지 못한다면 나중에 결국 내 발목을 붙잡을 짐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차라리 여기에서 버리고 간다면 녀석들의 시선을 이쪽으로 돌릴 수도 있을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거짓말이라……. 알겠어. 그럼 잘 있어라.”

중지에 찍힌 이빨자국이 욱신거렸다. 잠시 생각한 나는 곧 마음의 정리를 하고 곧장 문으로 다가갔다.
그렇게 완벽히 등을 돌리고 나가려고 하는 그 순간 갑자기 등 뒤에서 나를 부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잠깐만!!! 아저씨!!”

이미 그녀를 구출하는 것보다 도망가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발걸음을 멈출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녀의 다음 말이 나의 발을 멈추게 만들었다.

“가, 가지마!!!”

그 순간 과거의 장면이 잠깐 떠올랐다. 나도 누군가를 그렇게 애타게 불러본 적이 있었다. 어째서 그렇게 애타게 부르는데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던 걸까. 그저 한 번만 돌아봐주면 될 텐데…….

“뭔데?”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등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내가 얼마나 나쁜 짓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아직 미성년자였다. 이런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견뎌낼 만한 정신력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녀의 갈색 빛 눈동자에서 투명한 액체가 쉴 새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마 그녀의 본능이 나를 놓치면 죽는다는 것을 알려준 모양이다.

“사, 살려주세요…….”

방금 전보다 훨씬 얌전해진 목소리였다.

‘그래, 어린 애한테 내가 무슨 짓이람.’

원래 어린 아이는 싫지만 미인은 싫지 않았다. 짧게 한숨을 내쉬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한 번만 더 시끄럽게 떠들거나 물면 그냥 가버린다.”“네, 네…….”

도끼눈을 치켜뜨고 나를 물던 그녀의 태도는 온대간대 사라지고 없었다.

‘이렇게 순순히 따르면 구해줄 수밖에 없잖아…….’

별 수 없이 다른 플랜을 머릿속에서 짜기 시작했다. 그녀를 데리고 구출할 수 있는 방법을 말이다.

‘그 전에 일단 이것부터 해체해야겠지.’

그녀의 손발을 묶고 있는 건 방금 내가 묶여있던 철수갑과 똑같은 구조였다. 옆에 있는 스위치 기기까지 말이다. 단지 다른 거라면 녹이 조금 덜 슬었다는 것 정도?

‘어느 게 해체 버튼이지?’

다 눌러볼까 하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고민하는데 옆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빠, 빨간색 버튼을 누르면 돼요.”
“응? 뭐라고?”

잠시 스위치에서 눈을 떼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크고 아름답게 빛나는 갈색 빛에 잠시 넋이 나갈 정도였다.

‘아직 어린데 나중에 크면 정말 엄청난 미인이 되겠네.’

“제 기억으로는 녹색이 이 철수갑을 잠그는 거고 빨간색이 푸는 거예요.”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녀의 말을 듣고 아무런 의심 없이 그 잠금을 해제했겠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어떻게 그걸 알고 있지?”
“네? 그야, 당연히 납치될 때 여기에 바로…….”
“그럴 리가 없는데? 분명 기절시키고 데려왔을 텐데?”

단순한 내 짐작이지만 발버둥치는 타깃을 과연 여기까지 문제없이 데려올 수 있을까? 너무 눈에 띠고 저항이 심하니까 말이다. 그녀는 나를 물 정도로 저항이 심한데 그녀를 기절시키지 않고 여기에 묶었다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무슨 소리예요. 저는 납치 돼서…….”

거짓말. 그 세 글자가 머리에 떠올랐다. 원래 더 이상 볼 것도 없이 그냥 그 자리를 뜨면 되지만 방금 그녀의 처절한 눈빛 때문에 도저히 쉽게 뿌리칠 수가 없었다.

“거짓말하지 마. 헛소리하지 말고 어떻게 이 버튼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지 숨김없이 말하는 게 좋을 거야.”
“무슨 소리예요. 저는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
“딱 30초 준다. 해명을 해봐. 계속 이런 식이면 나는 그냥 혼자 여길 빠져나가겠어.”

이런 곳일수록 누군가를 믿는 건 아주 위험한 일이다. 만약 그녀도 종교인이고, 나를 낚으려는 수작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여기에 묶여있었다는 것 자체가 피해자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지만 말이다.
물론 나의 이런 생각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판단일 뿐이다. 그녀는 정말 그렇게 강제적으로 납치됐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아니야…….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야.’

그녀의 옷이 반쯤 벗겨져있지만 몸을 자세히 보면 흉터나 상처 하나 없었다. 저항이 심했다면 분명 그런 흉터나 상처, 멍이 있어야 정상이다. 역시 그녀는 무슨 의도인지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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