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됩니다'라는 단편하고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이것만읽으셔도 이해하시는데는 문제없을겁니다.）


[퇴마사]
- 상편


그 사내로 말하자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홀연히 나타났다.

우리는 k산에 출몰한다는 요물을 잡으러 가는 길이었다.

그 요물이란, 생김새는 요염한 여인이요, 빠르기는 한창때의 범보다도 더 빠르고 그 요사스러움에 넘어가 목숨을 잃은 수컷이 열에 이른다 했다. 그 수컷이란 물론, 인간과에 속하는 영장류였고. 시달리다 못한 마을 사람들이 한푼 두푼 모아서 영감한테 구조요청을 한 모양이었다. 영감은 우리에게 사건을 떠넘겼고.

영감이 우리한테 떠넘기는 일이란 대개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혼자 처리하기 까다롭거나 보수가 탐탁지 않거나. 즉, 귀찮고 돈이 안 되는 일이라 할 수 있을 거다. 영감의 시큰둥한 표정으로 보아, 이번 일은 그 두가지 조건 모두를 충족시키는 듯했다.

‘나중에 고맙다고 절이나 하지 말거라!’

그렇게 큰소리 쳤던 걸로 보면 처음부터 꿍꿍이가 있었던 것 같지만.

“캬,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이 열릴 줄 누가 알았겠어.”

운전대를 잡은 대마가 흥분해선 떠들어댔다. 머리카락이라곤 한 올도 나지 않은 훤한 뒤통수가 달마도의 주인공을 떠올리게 했다.
대마란 별명은 영감이 지어준 것인데,
영감은 녀석과의 첫 대면에서
“넌 어째 대가리만 달마대사를 닮았구나!”라며 무릎을 쳤다.

해서 지어진 별명이 대마. 이왕지사 닮은 거, 대사의 영험함까지 닮았으면 얼마 나 좋았을까.

“형님! 이러다가 십몇년 뒤에 월드컵도 열리는 거 아닙니까?”
“월드컵이 열리면 우리한테 득 되는 거라도 있어? 바다 건너 양키 귀신들이 한반도까지 흘러들어오느냔 말이야.”
“에이,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십니까. 그렇게 세계적인 뭐시기가 열리면 우리나라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는 거 아니겠습니까.”

때는 1988년, 마침 용의 해였다.
대마의 말처럼 온 나라가 올림픽의 열기에 휩싸여 있었다.

2000년이 가까워 오니, 자칭 예언가란 놈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서 세기말에 대해 목청 높이고 있기도 했고. 이렇게 혼잡할 때일수록 음지에 있던 놈들도 덩달아 기어 나오는 법이다. 덕분에 일거리가 많아져서 우리들도 입에 겨우 풀칠이나 하는 수준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그래봤자 여전히 이류 퇴마사, 영감이 던져주는 일거리나 받아먹는 신세였지만.

그래도 우리가 긍정적인 분위기로는 세계 제일 가는 일류였다.

“어? 차가 이상한데요.”

차가 위태롭게 흔들리기 시작했을 때에도 ‘우리가 그러면 그렇지’하며 어깨를 으쓱했고,

“대마 너, 또 어디서 버린 타이어 주워다가 끼운 거 아니냐.”
“엔진에서 연기나는 것 같은데? 타이어가 문제가 아니라 차가 문제구만!”
하고 미효가 비명을 질러도,

“사고 나겠다. 당장 세워!!”

인적 드문 도로 한복판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이 되어서도, 웃어넘길 수 있는 사람이 어디 흔하던가.

차가 멈추자마자 미효는 뛰어내려 탈출했고, 대마는 팔을 걷어붙이고 본넷으로 달려갔다. 나는 맨 마지막으로 내리며 “어쩐지 싸게 팔더라”, 한숨처럼 중얼거렸고.

“여기가 어디냐. 둘째야, 힘 좀 써봐라.”

내 부탁에 미효는 콧방귀를 뀌었다. 미효는 유일하게 ‘감’이 좋은 걸 뛰어넘는 투시력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앞에 감춰진 물건에서부터, 넓게는 특정대상의 위치나 상태까지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런 대단한 능력자가 이런 이류 패거리에 속해있는 이유가 무언고 하니, 복불복으로 발휘되는 힘이었기 때문이다. 필요할 때 십중팔구는 감감무소식이었다. 바로 지금처럼.

“이까짓 일에 내 능력을 쓰란 말예요?”
“아, 그럼 영감한테 전화라도 해봐.”
“허허벌판에 전화가 어딨다구요.”

차 한 대 값에 맞먹는 비싼 카폰이 이 고물차에 장착되어 있을 리 만무했고, 부의 상징인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만큼 주머니 사정이 풍족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니까 니들이 삼류 소리를 듣지, 영감이 이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대마 너, 고칠 수 있긴 하냐? 어디가 고장났는지 알겠어?”

대마 녀석이 해맑게 웃으며 외쳤다.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기계 다루는 데는 젬병이었고, 미효는 말할 것도 없었다. 자전거도 못타는 녀석이었으니까. 운전면허를 가진 사람은 대마 밖에 없었다. 나는 운전할 줄은 알아도 어깨 너머로 배운 정도로, 정식 면허조차 가지지 않았고.

나는 안개가 내려앉기 시작한 도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J시 초입에서 10km 쯤 온 것 같았다. 내 감이 맞다면 k산까지는 15km쯤 남았을 거고. 가진 거라곤 체력뿐인 이류 퇴마사들한테 15km 걷는 것쯤이야 누워서 떡먹기였다.

문제는 저 고철덩어리.
산책 나왔다가 걷기 싫어서 드러누운 애완견처럼 버팅기고 있는 고물차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이냐 였다. 미련 없이 떠나기엔 우린 너무 가난했다.

그때 미효가 우리가 온 방향을 가리켰다.

“3km쯤 가면 정비소가 하나 있어요.”
“미효, 너……!”

드디어 능력을 발휘한 건가, 대마가 감격해서 울먹거렸다. 미효는 또 한 번 콧방귀를 뀌었다.

“오버하지 마. 아까 지나오다가 표지판을 본 거니까. 분명히 수리 된다고 써 있었어.”

우리 셋은 공평하게 가위 바위 보로 결정 내리기로 했다. 남는 건 체력밖에 없지만 게으름도 넘쳐흐르는 우리 아니던가.

나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대마는 단순 무식해서 무조건 주먹 아니면 보자기를 낼 거다. 문제는 미효인데……정작 필요할 땐 평범한 여자애였지만, 쓸데없는데서 능력이 곧잘 튀어나오곤 했다.

“가위! 바위! 보!”

더 이상 머리 굴릴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듯, 미효가 박력 넘치게 구호를 외쳤다.

“아싸!”
“하하하!”

“…….”

결과는 나의 패배였다. 대마와 미효는 나를 배웅하지도 않고 결과를 보자마자 냉큼 차에 올라탔다. 삼세판 이라는 마지막 패를 꺼낼 기회도 주지 않고서.

그러한 사정으로, 나 홀로 안개 싸인 도로를 되짚어가게 되었다. 맏형이자 리더임에도 불구하고.

하하!
우린 원래 민주적이니까, 나이 많다고 뒤로 빠지는 건 권위적이잖아?
정신 나간 놈처럼 홀로 웃었다가, 울었다가 하면서 말이다.

안개는 점점 더 짙어졌다. 손전등을 가지고 오지 않은 게 후회 될 정도로. 걷기 시작한지 단 몇분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차로 되돌아가려고 돌아 섰다가, 아차 했다. 차의 모습이 온데 간데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몇 발자국이나 걸었다고. 이 안개는 일반적인 자연현상이 아닌 듯했다.

온통 뿌연 안개에 둘러싸여 있다보니 방향 감각조차 사라져갔다. 다행인 것은 이곳이 도로 라는 거였다. 길을 따라서 앞만 보고 걸으면 언젠가 이 안개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위안 삼으며 걷고, 또 걸었지만 미효가 말한 정비소는 나타나지 않았다. 두시간쯤 걸은 것 같았는데. 마치 미로 속을 헤매는 것 같았다.

영험한 산 주위에는 다른 세계의 것들이 들끓는 법. 이렇게 짙은 안개가 며칠씩 지속되는 일도 종종 있었다. 몇십년 전만해도 k산 깊은 곳에선 도깨비를 볼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하니까.

하지만 k산은 15km나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멀리까지 영향을 끼칠 리가……. 왜놈들이 침범하기 이전에는 조선 팔도에 동시다발적으로 기이한 현상이 발생한 일도 있었다곤 하지만……지금은 그때와 사정이 다르다. 시대가 변하면서 그 기운이 퇴색되기도 했거니와 산의 터를 지키는 영물인 호랑이가 사라지면서 그 힘도 함께 사라져갔다.

그렇담, 또 다른 놈이 이곳에 똬리를 틀었단 뜻인데.
그때였다.

빠앙……!!

경적 소리가 정신을 일깨웠다.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강한 불빛이 내 얼굴에 쏘아지고 있었다.

“……!!”

검은색 자동차 한 대가 그곳에 서 있었다. 내가 내뱉는 숨소리조차 천둥소리처럼 들리는 곳에서, 엔진 소리를 듣지 못했을 리 없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라도 한 걸까. 검은색 차량은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서 있었다. 게다가 난생 처음 보는 차종이었다.

나는 눈을 찡그리며 헤드라이트 불빛 너머의 운전자를 바라보았다. 젊은 남자였다. 말쑥한 차림새는 서울의 빌딩숲을 바쁘게 오가는 도시인을 연상하게 했다. 그는 차 앞으로 뛰어 든 사슴이나 토끼를 발견한 것처럼 놀란 표정이었다. 놀란 건 내 쪽이었는데.

“하마터면.”
“큰일 날 뻔한 거 아시죠.”

나는 능글맞게 말을 이어 받으며 그의 옆자리로 올라탔다.

“이것도 인연인데 저 앞까지만 좀 얻어 탑시다.”
“저쪽으로 가던 거 아니었습니까?”

남자는 등 뒤를 가리켰다. 차가 온 방향이자, 내가 걸어가고 있던 방향이기도 했다.

“원래는 정비소를 찾아 가던 길이긴 한데……이게 그놈들 장난이란 걸 안 이상, 정비소는 이제 무의미하고.”
“정비소라면…….”

그는 사연있는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제 차도 갑자기 멈춰서, 조금 전에 수리를 하고 오는 길이거든요. 이런 우연도 있네요.”
“차에 이상은 없었죠?”
“어떻게 아셨어요? 정비소 주인이 조금 손보고 나니까 멀쩡해 지더라고요. 그래서 그런가 수리비도 받지 않고…….”
“이 안개 때문입니다. 차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 쪽은 차도 문제인 것 같지만.

“안개요?”
“안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놈들이 가장 선호하는 방식이거든요.”
“놈들이요?”

“궁금한 게 참 많으신 형씨네. 도깨비, 처녀귀신, 지박령, 뭐 그런 놈들 있잖습니까. 바다 건너 놈들로 치자면 뱀파이어, 흑마술사, 그런 놈들이 있겠고. 문제는 이 안개가 단순한 장난이냐, 결계냐 인데……. 자, 받으세요.”

나는 품에서 지갑을 꺼내 명함을 한 장 건넸다. 명함과 함께 부적 한 장이 딸려 나왔다. 나는 그것을 물끄러미 보는 남자의 손에 부적도 같이 쥐어 주었다.

“이건 뭡니까?”
“사은품이라고 생각하세요.”

퇴마사 일을 처음 시작할 때, 영감이 써준 부적이었다. 의뢰비 대신에 부적으로 퉁 치자고 해서 차마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다니던 거였다.

“부적을 사은품으로 받기는 처음이네요.”
“잘됐네요. 저도 공짜로 주기는 처음이니까.”
“퇴……?”

남자가 눈썹을 찡그렸다. 명함에 적힌 한자를 읽지 못한 것이다.

“퇴마사라고 읽는 겁니다.”

그는 읽지 못한 걸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 같았는데 의외였다. 수치심은커녕, 오히려 퇴마사라는 말에 호기심을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정말 정비소엔 안 가셔도 됩니까?”
“일행이 기다리고 있어서요.”

“조금만 더 가면 정비소거든요. 차를 어디에 세워두셨는지 모르겠지만……여기, 핸드폰도 안 터지거든요. 저도 이번에 대한민국에 통화불가 지역이 있는 걸 처음 알았는데.”

차도 번지르르 한 게, 돈 좀 있는 놈이구나 싶긴 했지만 핸드폰까지 가지고 있다니. 부잣집 도련님이 확실하다. 미효가 있었더라면 구미호로 둔갑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을 거다. 부잣집에 잡귀 하나 잡아주고 한몫 두둑하게 챙긴 사례가 여럿 떠올랐다. 나는 입가에 흐르는 침을 몰래 소맷부리로 닦았다.

“이대로 혼자 보내는 건 도리가 아니기도 하구요.”

그냥 내뱉은 말이 아니다. 안개가 더 짙어지고 있다. 집요하게, 나와 이 남자를 끌고 가려는 것처럼. 설마 이 남자가 목적은 아니겠지. 나는 그의 생김새를 유심히 살폈다.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청년이었다. 별다른 특이점은 찾아볼 수 없었다. 부자인 점을 제외하면.

“안개가 조금씩 걷히는군요.”

그가 탄식을 내뱉었다. 나는 오만상을 쓰고 서서히 걷혀가는 안개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도로가 펼쳐져 있었다. [oo마을] 이라는 푯말과 함께. 기대하고 있던 똥차와, 일행이 아니라.

“제가 길을 잘못 들어온 것 같네요. 갈림길은 없었던 것 같은데……이거 어쩌죠. 차를 돌려서 일행분 있는 곳까지 데려다 드릴게요.”

그가 차를 돌리려고 핸들을 틀어쥐었다. 우리가 지나온 길 역시 안개가 말끔하게 걷혀 있었다. 우중충한 하늘은 금세라도 땅거미가 내릴 것 같았다. 안개 낀 오후하고 요기가 넘치는 밤은 차원이 다르다. 더구나 이곳에 나는 혼자다. 일단 옆에 있는 남자까지 해서 두명이긴 하지만, 이러한 특수상황에서 그는 짐이나 마찬가지니까.

이 마을을 둘러싼 안개는 결계였을 것이다. 다시 안개 속으로 뛰어들기는 너무 무모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홀로 남아 퇴마를 하기엔 스스로를 믿지 못했다. 혼자서 자신만만하게 퇴마행을 다닐 정도의 실력이라면, 이류라고 인정하지 않겠지.

그때 무언가 눈에 띄었다. 나는 그의 팔을 잡고 마을을 둘러싼 산을 가리켰다.

“잠깐만요. 저기 보이는 산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아십니까?”

그때였다. 검은 물체가 갑자기 차 앞으로 뛰어들었다. 얼핏 봤지만 사람인 것 같았다. 정차해 있는 상태였지만 놀란 마음까진 멈출 수 없었다. 남자는 말릴 새도 없이 차에서 뛰어내렸고, 나도 얼른 그를 뒤따랐다.

남자는 떨리는 눈으로 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차 앞에 쓰러져 있는 사람은 -저것을 사람이라 불러도 좋다면- 온몸이 새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까만 비늘이 돋아나 있었다. 제길, 욕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남자가 손바닥만한 기계를 꺼내 들더니 이것저것 눌러댔다.

“신호가 안 터지네요.”

하는 걸 봐선 저게 말로만 듣던 핸드폰인 모양이다. 들고 다니는 전화기란 건 알았지만 저렇게 작은 줄은 몰랐다. 핸드폰에 정신 팔린 사이, 남자가 뒷좌석 문을 열었다.

“뭐하려고요?”
“일단 차에 태워야죠. 마을에 가서-”
“저게 무엇인 줄 알고 함께 가겠다는 겁니까?”
“네?”

“제가 아까 한 말, 잊었습니까? 우리를 가지고 논 건 그냥 안개가 아니었습니다. 아마 여기서 벌어지는 일을 숨기기 위해서 영악한 놈이 술수를 부려놓은 거였을 테죠. 우리가 용케 안개를 뚫고 들어왔고. 운이 나쁜 건지, 좋은 건지……. 아무튼, 저걸 기어코 차에 태우겠다면 여기서 헤어집시다.”

“그럼, 사람을……사람일지도 모르는데, 못 본 척 길에 버려두고 가잔 겁니까?”
“누가 버려두고 가자고 했어요? 마을에 가서 확인해보자구요. 아~무 이상 없는 마을이면 그때 도움을 청하면 될 일이고. 어차피 ‘저건’ 숨도 안 쉬고 있는데.”
"……."

결국 그는 내 의견을 받아들이고 다시 핸들을 잡았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주의를 환기시키려는 듯 중얼거렸다.

“저 산…… 아마 k산 쪽으로 이어질 겁니다. 옛날엔 산에 난 길을 타고 J시와 M시를 넘나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역시…….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여기가 고향이거든요. 제 기억에는 없지만……. 그래서 조사를 좀 해봤습니다. 한번쯤 꼭 와보고 싶어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홀연히 나타난 사내,
미로처럼 둘러싼 안개,
K산에 출몰한다는 요물.
이 모든 것들이 우연은 아니겠지.
나는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으흐흐, 음흉하게 웃던 영감의 얼굴을 떠올렸다.

마을은 사람 그림자 하나 발견할 수 없었다. 더는 차로 들어갈 수 없게 되자 우리는 차를 세워두고 걷기 시작했다. 사람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었다. 가스 위에 올려놓은 찌개 냄비나, 홀로 지지직거리고 있는 텔레비전, 슈퍼 앞 평상 앞에 놓인 술병과 신문 같은 것에서 조금 전까지 누군가 머물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이상한 직감을 느끼고 평상 위의 신문을 주워들었다.
2013년, 9월 17일.

“17일이면 사흘전이군요.”
“분명히 17일에 올림픽 개막식이 있었지……이봐요. 오늘이. 아니, 올해가 몇 년도입니까?”
“2013년 아닙니까?”

그가 핸드폰을 꺼내어 화면을 보여 주었다. 그곳에는 2013년 9월 20일이란 글자가 큼지막하게 떠올라 있었다. 그가 심상찮은 내 얼굴을 보고, 문제라도 있습니까?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1988년도에 살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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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설명드렸듯이, 전에 수리됩니다라는 단편을 올렸었는데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읽지않으셔도 무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