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어떡하지.’

마른침을 들리지 않게 삼키며 주위를 살폈다. 현관 복도에 불이 들어와 있으니 다른 가정집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이상하게 그게 더 무섭게 느껴졌다.

‘설마 이게 먹힐 줄이야.’

제 작년에 받았던 우유판촉 전단지가 먹힐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변명거리로만 쓰려고 챙겨온 것일 뿐인데…….
지금 앉아있는 곳은 벌써 2번이나 밟고 지나갔던 현관 복도다. 켜져 있는 복도 형광등 때문에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눈 앞에 보이는 거실 문과 안방 문이 스산하게 보였다. 저 문 너머로 그들이 메스를 들고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만약 여기서 도주를 하려면…….’

엘리베이터는 열리는 시간이 있으니 위험하고 비상구로 도주할 계획을 머릿속으로 구상하고 있었다.

‘아니지. 그럼 다른 한 명이 엘리베이터로 내려가서 1층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부정적인 생각을 급히 털어냈다. 결국 엘리베이터로 미친 듯이 뛰는 것밖에 답이 없었다. 그런 나의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몸에 반영된 것인지 나는 아직 신발을 벗지 않고 있었다. 신발을 벗지 않고 현관 턱에 걸터앉아있었다. 수틀리면 바로 도주할 수 있는 좋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불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어제 보았던 엽기 동영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이런 곳에 우유가 필요한가? 살인마들도 건강을 중요하다 이건가?’

아이러니하지만 그럴 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몸이 최고인 법이니까.

‘그렇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다. 이 집 주인은 바로 어제 살해당했다. 해부된 모습을 직접 보기도 보았고, 이어폰으로 살인마 녀석의 단말마의 비명까지 들었다. 죽은 게 확실하리라.

‘그럼 저 여자는 대체 누구야?’

마지막 이어폰 너머로 들었던 두 명의 여자 목소리 중에 그녀의 목소리가 없었다. 너무 생생히 기억나던 목소리들이라서 잊어버릴 리가 없다.

‘제 3의 인물이란 건가.’

전혀 짐작가지 않는 상황이라 섣부른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다른 쪽으로 진짜 주인이 집으로 돌아온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거실에 있던 그 사이비 종교의 흔적들은 전부 치우고…….

‘설마 그럴 리가……. 그냥 그녀를 종교인이라고 생각하면 간단하잖아?’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너무 순수하게 생겼다. 게다가 우유를 받아먹으려는 저 태도까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 손에는 오렌지주스가 담긴 유리잔을 쥐고 있었다.

“이거라도 드세요.”

그녀는 공손히 나에게 음료수를 건넸다. 나는 웃으면서 받긴 했지만 마시지 않았다. 뭐가 들었을지 모르는 음료를 함부로 마실 순 없는 노릇이니까. 음료수를 옆으로 잠시 밀어놓고 전단지를 꺼냈다. 최대한 판촉사원처럼 보이게끔 영업용 미소를 지었다.

“저희 00우유는…….”

그 때부터 줄줄 영업 멘트들을 읊었다. 과거 외웠던 것들이 제대로 기억나서 다행이었다. 덕분에 그녀는 전혀 의심의 눈빛을 보내지 않았다. 신중하게 내 한마디 한마디를 귀담아들었다. 지금까지는 평범한 여성이었다.

“안 그래도 우유를 먹을까 했었거든요.”
“이 근처에 슈퍼도 없으니 저희 00 우유를 이용하면서 정말 편하실 것 같네요.”
“그러게요.”

이 근처에는 알다시피 망한 지역이다. 슈퍼가 있을 턱이 없다. 게다가 뭔가를 생필품을 사려면 몇 십 분이나 걸어가야만 했다.

“그것보다 이런 곳까지 배달을 하나 봐요?”

순간 움찔했지만 웃으면서 거짓말했다.

“네, 저희 00우유는 어디든 갑니다.”

이런 곳까지 단 한 명의 고객을 위해서 배달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기름 값도 안 나올게 뻔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나의 존재를 놓칠 수 없었던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논리적으로 그녀가 나를 붙잡은 이유도 이해가 갔다. 하지만 역시……. 내가 봐도 수상한 판촉 사원을 집에 들이다니…….

‘가만? 정말 그러네? 젊은 여자가 집에 수상한 판촉 사원을 들이다니?’

평범하게 생각했을 때 그 상황을 보고도 집에 들이는 건 이상했다. 그렇게 생각하자 반대로 건장한 남자인 내가 위협을 느꼈다. 다른 함정은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얼른 계약해버리고 나가야겠다.’

원래 목적은 이 집의 탐색이었지만 이런 식이라면 곤란하다. 뭐랄까……. 내가 살인마들의 타켓이 된 불쾌한 기분이었다.
가방에서 펜을 꺼내고 계약서와 함께 그녀에게 건넸다.

‘젠장…….’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기에 재빨리 다른 손으로 그 손을 꾹 잡아 쥐었다. 그 짧은 순간 그녀는 아마 눈치 챘을 거다.

‘변명을 해야…….’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그녀가 먼저 선수 쳤다.

“비 때문에 밖이 많이 추우신가 봐요? 그래서 음료수도 안 드셨구나.”
“아, 아? 아, 네.”

혼자 멋대로 상상하는 그녀 덕에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내가 떨고 있는 걸 보고 태연하게 말을 거는 걸 보면…….’

아마 나를 어떻게 할 속셈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 샌가 다 작성한 그녀에게 계약서를 건네받았다.

“그럼 여기 적으신 대로 1.5L 우유를 일주일에 한 번 배달해드리면 되죠?”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짧게 인사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칫 의심을 살 수도 있을 만큼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고는 아차 싶었다. 하지만 방금 내 예상이 맞았던 모양인지 그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나를 배웅하고 있었다.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현관문을 밀었다.
그리고 나는 자연스럽게 바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물론 주머니에 넣어뒀던 도청기 이어폰을 귀에 꼽은 채로.
방금 계약서를 작성하느라 집중한 그녀 몰래 현관 구석에 있는 화분에 도청기를 숨겨뒀다. 만약 거실이나 안방으로 들어가 버린다면 제대로 들을 수 없겠지만 작은 소리라도 들을 수 있는 것을 감사하기로 했다.

‘저 집에 도청기만 벌써 2개째네.’

슬슬 위험한 수준이라 다음번에는 정말 모두 회수해갈 생각을 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고막 너머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