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들어봤을법한 질문.

'만약 내일 운석이 떨어져 지구가 멸망한다면 넌 어떻게 할거야?'

이윽고 돌아오는 대답.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거야' 혹은 '연인과 죽기전까지 함께해야지' 등등 다소 낯간지러운 소리를 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함께 시간을 보낼 가족도, 연인도 없다. 어두운 성격탓에 친구또한 없다.
공부도 못해, 운동도 못해, 새로운 것에 시도할 배짱도 여유도 없다. 내가 할줄 아는 건 그림을 그리는 것 뿐.


아니다. 생각해 보니 나는 매듭을 제법 잘 묶는 것 같다. 내게서 장점이라곤 전혀 찾아 볼 수 없었지만 겨우 장점이 하나 생긴 듯 했다. 하지만 이제와서 장점이 생긴들 아무 소용 없겠지.


나는 의자 위에 올라가 손수 매듭지은 밧줄을 목에 걸었다. 아마 내 시체를 발견하려면... 다음주 주인 아줌마가 월세를 받으러 올 때 즈음 이려나...?


밧줄을 잘 확인 하고는 아무 망설임도 없이 의자를 발로 찼다.


딱히 아프진 않다. 손발이 저릿저릿 해지며 앞이 하얗게 변한다.
고등학교 때 괴롭히던 애가 내게 기절놀이를 시켰을 때도 이런 기분이였지 아마


"만...에..."


환청까지 들리기 시작한다. 이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만약에 말이야..."


흐릿하게 들리던 목소리가 점점 선명해 진다. 저승사자인가? 사후세계에 관해선 항상 궁금했지만 설마 저승사자가 실제로 존재할 줄이야.
이윽고 내 목을 옥죄고 있던 밧줄의 느낌이 사라지고 온몸이 편안해졌다.


"만약에 말이야, 네가 한달 후에 죽는다면 어떡할래?"


흐릿하던 목소리는 선명하게 내 귓가에 다가왔다. 그 목소리는 남자였으며 굉장히 차분하고 고급스럽게 느껴졌다.
그보다 내가 한달 후에 죽는다니? 나는 지금 이미 죽어있지 않은가.


"대답해"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어이쿠, 미안미안~ 잠깐만 기다려"



고급스럽고 낮게 깔린 목소리였지만, 왠지 모르게 다정하게 느껴지는 그 목소리는 나에게서 서서히 멀어져 갔다.



'스으으으읍'



폐 속으로 공기가 들어오는게 느껴지며 벌떡 일어나 보니 나는 내 방 침대위에 이불을 덮고 앉아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내방 그대로였다. 바뀐게 있다면 내가 묶어논 밧줄이 없어졌다.


"뭐야 이게..."

도저히 꿈이라고 생각 할 수 없을 만큼 나는 생생하게 자살을 준비 했고, 목을 매달았을 때의 그 느낌을 내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뭐긴 뭐야, 꿈인가 보지"


갑작스레 들려온 차분하고 낮게 깔린 중저음의 고급스런 남자 목소리, 화들짝 놀라 침대 옆을 보니 훤칠한 키에 녹색 체크무늬 정장을 입은 말끔한 외모의 중년 아저씨가 서 있었다.



"누구세요...?"


"글쎄, 내가 누굴까?"


훤칠한 중년 아저씨는 자기가 말해놓고도 터무니 없었는지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한바탕 웃고 나서야 그 남자는 입을 열었다.


"만약에 말이야, 네가 한달 후에 죽는다면 어떡할래?"


그는 재킷 안 주머니에는 도저히 들어갈 수 없을 정도의 A4 사이즈의 노트를 꺼내 무언가를 적을 준비를 했다. 그가 사람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저씨는 악마인가요?"


"하아..."


한 숨을 푹 내쉰 그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더니 귀찮다는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 봤다.


"뭐, 니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면 그렇게 생각하도록해. 다만... 내가 지금 바빠서 그러는데 빨리 질문에 대답해 줄래?"



나는 그의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저는 지금 죽을거에요"


"하이고..."


그는 다시한번 한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그래그래, 그렇다면 너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지. 너는 오늘 죽을거야, 대신에 아주 천천히, 수시간에 걸쳐 살가죽이 벗겨지고 뜨거운 불에 달궈지는 고통 속에서 죽게 될거야"


순간 간담이 서늘해 졌다. 나는 꿀꺽하고 침을 한번 삼켰다.



"하지만 말이야... 한달 후에 죽는다면 매우 편안하게, 잠자듯 우아하게 죽을 수 있게 해주지. 어떡할래?"



"왜 당신이 그걸 결정하는거죠?"


나는 지지 않으려 대꾸했다. 순간 그 남자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넌 방금 자살한거야. 그리고 내가 널 살려냈지, 내 능력으로 말이야, 그리고 지금 네 목숨은 내가 관리하고 있는거지"


그의 말과 표정을 보니 장난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애초에 사람이 내뿜는 살기와는 비교도 안되게 소름 끼쳤다.


"왜 그걸 아저씨가 결정하는데요!! 저한테 도데체 왜그러는 거에요!"


나는 등을 벽에 대고 최대한 그와 멀리 떨어지기 위해 발버둥을 치며 울부짖었다.


"아까 네가 나한테 그랬잖아, 악마냐고... 그렇다면 얼추 말이 되지 않을까? 안그래?"

순간 방 바닥이 불길에 휩싸이기 시작했고 열기가 침대 위 까지 올라왔다. 서서히 내 살점들이 익어가고 있는게 느껴졌다.


"으으으아아악!"

너무 고통스럽다. 이런 고통은 태어나서 한번도 느껴본적 없다.
내 살점들이 고기가 되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의식은 여느 때 보다 선명했다.


"그만! 제발 그만요!"


내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절규하자 불길이 멈추고 익었던 내 피부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걱정하지마 환각일 뿐이야, 이건 말이야, 음... 우리같은 존재들의 특권이라고 해야되나?"


말을 마치자 그는 비열하게 웃기 시작했다. 아까의 호탕한 웃음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였다. 나는 금방이라도 오줌을 지릴 것 같았다.



"어때? 지금 당장 죽을거야?"



더이상 생각할것도 없다. 나는 겁쟁이다. 24년을 살면서 단 한번도 용기를 내 본적이 없다.

중학교 소문이 날까 두려워 좋아하는 여자애 한테 고백하지 못했고, 갓 스무살이 됐을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기 일보 직전인 엄마한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그리고 대인관계가 활발하지 못한 나는 대학생활이 두려워 자퇴하고 결국엔 살아갈 용기까지 잃어 자살을 선택하고 말았다.

그래, 내 인생에서 딱 한번 용기를 낸적은 자살할 때 딱 한번 뿐이다.


그런 겁쟁이인 내가 고통스럽게 죽는다는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비록 한달을 더 살아야 하지만 편안하게 죽는다는 것은 생각해 보니 나름대로 괜찮은 것 같기도 하다.



"한달... 후에요..."


나는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아주 작게 대답했다.



"그래! 그럴 줄 알았다니깐~"



그는 다 알고 있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이내 그는 다시 노트를 펼쳐 무언가 적을 준비를 시작했다.



"자자, 다시한번 물어볼게, 만약에 네가 한달후에 죽는다면 어떡할래?"



아주 흔하디 흔한 대답이다.
하지만 난 대답할 수 없었다. 왜일까? 난 왜 자포자기하는 심정임에도 하고싶은게 없는걸까?


"잘... 모르겠어요"


"좋았어 바로그거야!"


그는 무언가 기쁜듯 박수를 탁 쳤다.


"뭐, 네가 범죄를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선 칭찬해 줄게. 참고로 난 너같은 놈들의 머릿속을 전부 들여다 볼 수 있어. 대게 그런놈들은 버킷리스트니 뭐니 말만 번지르르 하게 하곤 머릿속은 시꺼멓지"


확실히 일리는 있다. 나같은 히키코모리에 가족도, 친구도 없는 사람은 더이상 실추될 명예도 없을 뿐더러 시한부 판정을 받는다면 자신을 옥죄고 있던 끈이 풀린거나 마찬가지 겠지.



"옜다, 받아라 니 목숨값"


그는 꽤나 두꺼워보이는 돈뭉치를 내 앞에 던졌다.


"목숨값...이요?"


"뭐, 너는 자살할 작정이였겠지만 내가 특별히 못본 척 해줄게. 어디 한번 한달동안 신나게 즐겨보라구"



"...살고싶어질 만큼 말이야"


왠지 모르게 마지막 말이 섬뜩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