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대로 내 소설이 출판사로 넘어갔다는 글을 올리자마자 엄청난 덧글과 메일들이 쏟아졌다. 좋게 보는 사람도 있지만 안 좋게 보이는 이가 훨씬 많았다. 대한민국에서 무료가 유료로 바뀐다는 것은 그런 의미였다. 영화도 만화도 모든 것들을 공짜로 다운 받을 수 있는 나라에서 갑자기 책으로 낼 거라고 말한다면 누가 좋아할까. 물론 일을 하고 있고, 문화생활에 돈을 투자하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 개념인들만이 나에게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하지만 말했지만 그 수는 소수에 불가했다.

‘휴, 예상은 했지만…….’

사실 출판사에서도 썩 내켜하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인기가 있는데 굳이 책으로 낼 필요가 있느냐가 그들의 반응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 나에게 선택권이란 없다. 평소처럼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적었다가는 목숨이 몇 개라도 모자를 거다. 내가 상대하려는 단체가 바로 그런 단체다.

‘겁먹지 말고……. 이왕하기로 한 거…….’

기분이 조금 꿀꿀하긴 하지만 그 만큼 내 소설을 기대하고 있던 이 많기 때문에 그러리라고 합리화시켰다.

‘좋아, 일단…….’

나는 곧장 컴퓨터 앞에 앉았다. 정보수집이 먼저였다.

‘이걸 또 봐야하다니…….’

보다가 만 동영상을 다시 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 가진 정보는 이게 전부니까 말이다. 방금 전처럼 갑작스러운 장면에 구토를 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담담하게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래, 고어물 영화라고 생각하자.’

그렇게 천천히 재생버튼을 눌렀다. 역시나 역겨운 장면들은 차마 볼 수 없어 마우스 클릭질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얼마나 넘겼을까.

‘의외로 영상이 기네.’

거의 15분 정도 되는 영상이었는데 그 중에 14분이 살육하는 장면이었다. 그래서 영상이 거의 끝날 때까지 그냥 꺼버릴까란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마지막 1분이 내가 주의 깊게 살핀 부분이었다.

‘웬 자막?’

마치 영화가 끝나고 올라오는 자막처럼 검은 화면이 하얀 글씨들이 위로 올라갔다. 하지만 웃긴 건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배우나 감독에 대한 글이 전혀 없었다. 그것만 봐도 이것이 실화였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직접 찍은 영상에 배우가 어디 있고, 감독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그러던 중 정지버튼을 누르게 만드는 이름들이 있었다.

조달자 - 김훈, 강여원, 성미리.

‘조달자라니?’

가만 먼저 떠오른 의문.

‘혹시 내가 생각하는 그 조달자?’

살아있는 사람을 납치해서 데려오는 역할을 하는 건가.
그 때 문득 살인마의 집의 대화 내용이 떠올랐다. 여자들의 대화에서 들은 이름은 싸이코 살인마 영웅이라는 자와 훈이라고 불렸던 사내였다. 외자인지 아니면 이름의 끝만 부르는 건지 알 순 없지만 여자 2명에 남자 한 명의 조합은 그 조달자라는 역할뿐이었다.

‘역시 그들이겠지?’

이어폰 너머로 들었던 그들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 너도 죽고 싶은 거야? -
- 우리 회전님께서는 너 같은 패배자도 상대해주시겠지. -

‘난 패배자가 아니야.’

거칠게 고개를 흔들며 환청을 털어냈다.

‘얼마 만에 환청이지.’

과거 3일 동안 밤새며 글을 적었을 때 환청을 들은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 만큼 피곤하단 건가.’

조금 더 조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지금 정신 상태로는 뭘 해도 안 될 것 같았다. 너무 지친다. 구토도 하고, 미친 듯이 뛰기도 했고……. 사람이 죽는 걸 귀로 생생히 듣기까지 했으니……. 몸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이미 한계점이었다.

‘일단……. 쉬자.’

나는 그제야 내가 알몸인 것을 깨닫고, 주변에 있는 옷가지를 주섬주섬 입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녀석들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눈을 살며시 감는 순간 의식이 콘센트 뽑듯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그 후 일어난 건 오후 2시쯤이었다. 휴대전호가 나를 깨운 것도 시끄러운 소음이 나를 깨운 것도 아니다. 그냥 천천히 눈이 떠졌다. 원래 잠에서 갓 깨어나면 비몽사몽 해야 하는데 오늘은 평소와 달랐다. 일어나자마자 바로 녀석들에 대한 생각으로 깨어났다.

‘먼저, 그 집부터 다시 가봐야겠지.’

그리 생각하면서 슬그머니 창문을 바라보았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장마가 시작될 모양이었다.
어제 저녁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은 탓에 몸에 기운이 없었다. 사실 식욕은 없었지만 별 수 없이 뭔가를 먹어야만 했다. 라면을 끓일까 생각했지만 식욕이 거의 없는 상태라서 그냥 라면을 부셔서 입에 쑤셔 넣었다. 허기만 가시기만 하면 되니까.
그리고는 어제 입었던 택배 복장을 살폈다. 역시나 아직 마르지 않았다. 마르기는커녕 물걸레처럼 축축하기만 했다.

‘하긴 거길 또 갈 생각을 했겠냐고.’

영상만으로는 그 종교에 대해서 얻을 수 있는 건 아무래도 한정적이니 어쩔 수가 없었다. 일단 하려고 마음먹었으니 겁먹고 물러서는 건 사양이었다. 내 일생일대의 도전이 될 테니까.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느냐 아니면 흔해빠진 늙은 아저씨가 되느냐. 그 결과가 바로 지금 나의 손에 달렸다.

‘그래, 문호야. 할 수 있어.’

주먹을 강하게 쥐며 마지막 남은 라면 조각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는 옷장에 섰다. 택배 복장을 입지 못하니 어떤 복장을 입어야할까……. 잠시 고민하던 나는 정장을 선택했다. 마치 판촉을 하던 영업사원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그리고 과거 돈이 없어서 잠깐 했던 우유 판촉이 떠올랐다.

‘좋아. 마침 전단지 종이도 조금 남아있네.’

우유 판촉을 하다가 실수로 무단 침입한 역할을 생각해놓고는 생각할 것 없이 바로 그 집으로 향했다.

“아, 맞다. 비오지.”

바로 나가려던 나는 발걸음을 돌려 우산 꽂이에 있는 여러 우산 중에 큰 우산을 쥐었다. 작은 우산보다 큰 우산이 무기로서 도움이 되리라고 무의식적으로 판단했던 모양이다.
장마라서 그런지 얇은 수중기 커튼이 세상을 덮고 있는 듯 했다. 피부가 건조한 사람들에게는 썩 나쁜 날씨가 아니었다. 바로 나처럼 말이다.

‘마음 굳게 먹자.’

어제보다 훨씬 나아진 몸뚱이를 이끌고 나는 곧장 그 허름한 아파트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