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 아파트 경비실]


“경비실에 보관하라고요? 알겠습니다.”
“304호에 아무도 없나봐요 택배 좀 보관해 주세요.”



“네 주세요.”


파란색 상의에 검정색 하의, 어지럽게 묻어 있는 하얀색 페인트가 그의 검은 바지를 돋보이게 한다. 무궁화 모양이 수놓아져 있는 모자를 쓴 50이 조금 넘어 보이는 경비원이 택배를 받아든다. 푹 눌러쓴 모자 아래로 군데군데 빠진 이를 드러내며 미소를 짓는다. 살인을 예보하듯 그의 미소는 더욱 큰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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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은 범인이 남겨놓은 표식을 한 발치 떨어져 바라본다.
그의 선배가 해결되지 않는 사건이 있을 때 한 발치 떨어져 보라는 의미가 잘못 해석된 그의 행동이었다.


이미 감식반이 도착한 뒤라 이곳저곳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진다. 그 모습을 본 달성은 감식반에게 역정을 낸다.



“저 새끼들은 도움도 안 되면서, 왜 이렇게 방해해?”



달성은 표식을 보며,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사하듯, 한 손은 턱을 바치고 다른 한손은 턱을 바친 손을 지지하기 위해 가슴을 감싼다. 표식의 의미보단 범인이 남겨 놓은 또 다른 흔적을 찾기 위해 한참을 바라보던 그는 수사 노트에 이것저것 메모를 한다.







[Live on]



달성은 되지도 않는 영어에 골머리를 썩는다. 그는 옆에 있던 감식반 한명을 잡아끌더니 저 표식을 읽어보라고 지시한다.


“야 저거 무슨뜻이야.”


“저거요?”


“그래 새끼야”


아까부터 신경에 거슬렸던 감식반. 달성은 그 중 누군가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



“리브-온?”


“내가 장님이냐? 저걸 못 읽게 무슨뜻이냐고”


“계속 살다? 뭐 그런 뜻 아닌가요?”


“계속 살다? 계속 살다?”


달성은 그 단어를 몇 번을 되뇌다. 생각을 정리한 듯 사건 현장을 떠나려 한다. 그때 마침 부하형사에게 지시해 놓은 보고가 들려온다.


“팀장님”

“어 빨리 말해. 없지?”



“네 특별한 게 없습니다. 목격자들 진술 토대로 진행해야 겠는데요.”
“짧은 순간이어서 내심 기대했는데”


“알았다. 또 특별한 사항 있으면 보고하고”


“네 팀장님 들어가세요.”


달성은 CCTV확인결과를 보고 받았다. 당연한 결과라 생각했지만, 그 짧은 순간에 모든 뒤처리를 완벽하게 처리하고 간 범죄자가 궁금해졌다. 범죄자는 분명 막강한 세력을 소유한 실력자 일 것이고, 그 세력과 실력이란 돈이었다. CCTV의 모든 이력을 지울 수 있는 실력자라면, 대한민국에 몇 되지 않는 집단의 우두머리 일 것이다.


달성은 그 길로 예지가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잠시 잊고 있었던 예지의 임신사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그는 고민 중이다. 달성은 예지의 병원 로비의 의자에 앉아 길고 길었던 오늘하루를 끝내고 있다.





[진정한 영웅은 누구인가?]


[경찰 진실을 왜 은폐했나?]


[최달성 팀장 진실을 말하다.]




아침부터 경찰서는 언론사의 취재 차량과 기자로 북적인다. 모두가 서로 앞 다투어 어제의 사건을 쏟아 냈으며, 그들은 또 다른 특종을 얻기 위해 경찰서에서 대기 중이다. 모든 기자들은 최달성 팀장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고, 아직 갈피를 못 잡은 그들은 경찰의 공식 입장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서에서 대기 중이며, 옹기종기 모여 서로의 정보를 교환한다.



“김기자 정말일까?”


“그럼 당연하지 최달성이 어제 대 놓고 얘기 했자너”
“경찰이 해결하게 아니라고”


“경찰도 슬 공식입장 발표할 때가 된 거 같은데”


“그러게 원래 이런 사건은 시간 끌수록 여론만 안 좋아져”


“오늘 한다. 안한다. 내기 걸자”
“점심값 내기다”


“좋아-”







신문을 보고 있던 재희는 어제의 어두운 그림자는 사라지고, 흡족한 표정을 짓는다.
재희를 영웅화한 기사부터, 경찰의 수사 의심, 그리고 최달성의 양심고백을 통해 아직은 경찰내부에서 쓸 만한 이미지, 오늘을 넘기지 않고, 경찰은 공식입장을 발표할 것이다.


경찰이 해결한 게 맞고, 많은 해명을 늘어놓진 않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판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날 신문은 뜬금없는 연쇄살인마가 등장할 것이다. 경찰은 연관 없는 사건 하나를 들고, 이리저리 조합하여 연쇄살인으로 부각시킬 것이고, 그 수사의 지휘는 최달성이 적임자로 지목될 것이다.

“니들 맘대로 하게 둘 순 없지”
“내가 이번에도 진짜를 줄게 히히-”
“대신 내가 아닌 최달성이가 잡아오게 말이야”
“세 명이 시작이다”



재희는 민재에게 지시해 놓은 준비된 자료를 건네받는다.
그리고 간단한 보고를 받는다.



“현재까지 두 명입니다.”
“회장님이 지시하신 데로 계속 추적은 하고 있지만”
“아직 범인이 누군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만 조사하세요.”


“네? 네- 회장님”



“자료는 모두 두고 가세요. 제가 좀 더 보죠”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리고 저...”



‘네 말씀하세요.“



“오늘 여식을 데리고 왔습니다.”



“아- 제가 잊고 있었네요.”


재희는 인터폰을 누르자 상냥한 목소리의 여비서가 받는다.



“네- 회장님”



“오늘 일정 모두 취소하세요.”
“점심식사장소 예약하시고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



재희는 민재에게 미리 점심식사 장소에서 여식과 함께 대기하라고 지시하고, 한마디 덧붙인다.



“몸이 무거울 거 같아 편한 장소로 예약했습니다.”



민재는 재희의 그 말에 다시 두려움이 번져간다.
본인부터 시작해서 가족의 모든 일상을 조사하고 있는 재희. 민재는 재희가 계속해서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재희의 사람 지배 방식은 여러 가지 중 두려움의 지배가 가장 강했다.



민재는 재희를 만나기 전 그의 여식 수진에게 이것저것 일러두었다.
실수해선 안 될 사람이고, 대답은 즉각 하되, 절대 그분이 말하는 도중에 끼어들면 안 되고, 절대 눈을 마주 치지 말라고 당부했다. 수진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그렇게 까지 해야 되나 생각했다. 그룹의 회장님이라 어려운 분 인건 맞지만, 독재가 같은 느낌? 수진은 단순히 그렇게 생각했다.

재희는 약속시간 5분전에 도착한다. 항상 늦지 않는 그, 지독한 냉혈아가 한기를 풍기며 룸으로 들어온다. 민재와 수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재희에게 인사를 건넨다.


“오셨습니까. 회장님”


90도로 인사하는 민재를 보고 수진은 엉겁결에 민재와 똑같이 인사를 한다.


“오셨습니까. 회장님”


재희는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늘하던데로 말없이 본인의 자리에 앉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민재는 여식에게 그제야 앉으라고 표현한다.



“안녕하세요. 강재희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김수진입니다.”


수진은 기업의 회장님이라고 해서, 나이가 많은 중년의 남성을 생각했다. 본인의 아빠와 비슷한 연배라고 생각했으나, 본인의 또래로 보이는 얼굴을 한 재희를 보고 깜짝 놀라며, 조금은 마음 편히 대화를 할 생각을 한다. 아까 민재의 당부는 모두 잊은 채…….


“많이 젊어 보이시네요?”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민재는 수진의 버릇없는 행동에 난감해 하며 경고의 의미로 딸의 이름을 부른다.


“수진아 버릇없이”


“아니에요 전문님 그냥 두세요.”
“제가 소개를 미처 못 했네요”


“가장 궁금해 하는 게 나이인거 같으니 나이부터 말씀드리죠.”
“제 나이는 스물다섯이고, 아시다 시피 직업은 사업가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전 김수진이라고 해요 나이는 회장님과 같아요. 다섯”


민재의 이마에선 땀이 흐르고, 본인의 손수건으로 연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고 있다.
수진의 입에서 폭탄이 터질 때마다, 그의 땀은 더욱 많이 흘러내린다.


왈가닥인 수진, 학창시절 내내 사고 뭉치였고, 최근엔 지지리도 못사는 남자를 데리고 와서 결혼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민재는 극구 반대를 했고, 그의 방식대로 남자를 떼어버렸다. 폭력! 그 둘 사랑의 결실로 남은 것은 수진의 뱃속의 아이였다. 그 후 결혼을 수락하였으나, 남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수진의 아빠 민재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에…….


“아 성격이 많이 밝으시네요? 전무님 따님 같지 않은데요?”


“아- 얘 때문에요”


수진은 자신의 배를 툭툭 치며, 말을 이어간다.


“병원에서 좋은 생각만 하고 많이 웃으래요. 그래야 태아한테 좋다고”
“집에 만날 갇혀서 아빠 감시만 받고 지냈는데, 오늘은 외출을 하자고 하더라고요”
“재미없는 김민재씨께서? 그래서 졸졸 쫓아 나왔는데 회장님을 만날지는 몰랐어요.”



“하하-그렇게 된 거군요?”
“제가 그럼 오늘은 세분한테 점심식사를 대접하는 거네요.”


“하하- 그렇게 되는 건가? 여튼 회장님 감사해요, 김민재씨와 점심 먹게 해조서”


수진은 재희에게 한쪽 눈을 감으며 윙크를 한다. 재희도 즐거운 듯 미소로 짓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민재도 조금씩 편안하게 그 둘의 대화를 지켜본다.



“매일 저녁 늦게 집에와 밥상머리에서 볼일이 없어요.”
“혼자 먹는 밥 항상 맛없거든요, 그래도 우리 튼튼이 생각해서 뭐든지 잘 먹긴 해요”


“튼튼이요?”


“태명이에요 우리 튼튼이”


“아- 그런 것도 하는군요?”


“튼튼아- 튼튼아 이러면 막 발길질도 한데요. 좀 더 크면”
“하긴 남자 분이셔서 잘 모르시겠다.”
“여자에게 엄마가 된다는 건.........축복이에요.....”




재희는 그때 조금이나마 알게되었다.





가족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엄마란 어떤 것인지.


엄마에게 있어 난 어떤 사람이었는지…….


엄마에게 있어……. 난













“축복”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