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의 불빛이 예지의 눈에 쏟아지고 나서야. 예지는 눈을 뜬다. 새 하얀 페인트로 칠해진 천장이 눈에 들어오고, 이곳이 천국이 아닐까? 생각한 듯 자신의 몸을 움직여 본다. 좁은 공간에 장시간 갇혀있어서 인지, 온 몸이 뻐근함과 몸의 상처로 인한 고통을 느끼고 나서야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 병실은 예지 혼자만이 사용하는 단독 병실로,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예지는 재빨리 몸을 일으켜 침대에 앉은 후, 끔찍했던 감금의 시간을 떠 올린 듯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있다.

밖에서 지키고 있던 남형사와 김순경이 들어와 그녀에게 안심하라는 듯, 예지의 손을 잡아 주고, 급히 의료진을 호출한 후, 그녀에게 물 한잔을 건넨다.


“여기 환자가 깨어났어요. 어서 와주세요”
“예지씨 괜찮아요? 지금은 무사해요”
“여기 물 한잔 드세요”


“네- 감사합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형사는 병실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가 달성에게 전화를 건다.


“팀장님 피해자 깨어났습니다.”


남형사가 전화를 하는 사이 급하게 의료진이 예지의 병실로 찾아 들었고, 예지의 이곳저곳에 청진기 갔다 데며 진찰을 했다. 그리곤 하얀색 의사 가운을 입은 의료진의 수장이 말을 한다.


“최예지씨 지금 몸 상태는 나쁘진 않은데....음....정신적 충격이 있으니 최대한 안정을 취하셔야 되요”


의사의 말이 끝난 후 간호사에게 이것저것 업무 지시를 한 후 의료진은 병실 밖으로 나간다. 그리곤 간호사 한 명이 들어와 예지의 팔에 꽂혀있는 링겔관에 주사를 투여하고 사라진다. 예지는 의료진의 진찰이 끝난 후 김순경과 대화를 한다.


“근대 여긴 어디죠?”

“여긴 대성 병원이에요. 예지씨는 어제 구출되었고요”

“아- 그게 꿈이 아니었구나.”

“네?”

“아니요. 하얀 빛이 보이고, 누군가 제 몸을 감싸 주었거든요”
“그래서 전 제가 죽은 줄 알았어요.”

“아- 최팀장님”

“최팀장님?”

“네 금방 오실꺼에요. 예지씨 깨어났다고 연락 넣어놨으니”

“네- 저 좀 어지러워서 그런데 다시 누울게요.”

“네 그러세요.”

김순경은 친절하게 예지를 침대에 눕혀주고, 그녀가 잠들 때까지 곁에 있어 주었다.
그제야 예지는 마음이 편했는지 깊이 잠이 든다.






달성은 브리핑을 마친 후 서장의 부름을 받았으나 무시한 채, 흡연실에서 연실 담배만 피워대고 있었다.


“얼마나 또 까댈까? 아후 그지 같은 내 인생”


달성은 아까 브리핑 장소의 사건으로 어떤 문책이 있을지 생각중이었다. 가벼운 처벌이 아닐 것이고, 그 강도가 어떨지 상상조차 안 되는지 본인의 인생까지 비판을 하고 있다.
그때 예지의 병실을 지키고 있던 남형사에게서 전화가 온다.

“알았다.”


달성은 피해자에게 지금은 안정이 필요할 꺼라 생각해서 인지 바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의 심리 상태를 배제한 채로 강압적인 수사를 진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달성은 먼저 이성재에게 가보기로 한다. 어떤 말도 행동도 할 수 없는 성재에게 바랄 건 없지만, 지금은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고 늘어져야 한다.

이제 이 사건은 전 국민이 진실을 원하고 있는 사건으로 확대 되었고, 달성 또한 본인의 경찰 인생을 걸고 맞서야 하는 중요사건이 되었다. 그는 문책 따윈 잊고, 평소의 습관처럼 휘파람을 불며, 성재에게 발걸음을 옮긴다.


“이성재 상태 어때?”

“아무런 차도가 없습니다.”

“일생기면 바로 보고해, 이번에 얘는 살려라, 유일하게 피의자 중 두 눈이 멀쩡하다.”

그간 다섯 건의 사건 중 이번 피의자 이성재만이 두 눈이 멀쩡했다. 그간 피의자들은 눈마저 볼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어 놨고, 피의자 모두 병실에서 죽었다.
피의자이면서 유일한 목격자 성재. 달성에겐 이번 피의자는 매우 중요하다. 달성은 성재를 짧게 만난 후 성재에게 출발 전 지시해 놓은 예지의 신상정보를 받기 위해 경찰서로 향했다. 그는 사전에 부하형사에게 전화를 걸어 몰래 가지고 나오라고 지시했다.

달성은 지금 경찰서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 못 된다.



“최 팀장님 지금 서 완전 뒤집혔어요.”


“됐고, 신상정보는?”


“여기요 아- 이거 걸리면 큰일 나는데”


“나 간다”


“최팀장님 어디로 가시는 지는 말씀을.....”


부하형사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달성은 차를 출발시킨다. 예지가 있는 병원까지 얼마 걸리지 않는 거리여서 인지 그 곳에 도착 한 후 달성은 차 안에서 이력서가 담겨있는 봉투를 찢고 예지의 신상정보를 확인한다. 그녀의 신상정보가 궁금한 것 보단 조금 더 그녀가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해주기 위한 달성의 나름 배려였다.

그와 동일한 신상정보를 건네받고 뜯어보는 한 명이 더 있다.




“회장님 최예지씨 신상정보입니다.”


재희는 예지의 신상정보를 바라보며, 그녀의 이력사항을 검토한다.

수재중의 수재
대한민국 1%에 해당하는 그녀였다.

그녀의 이력사항은 모두 영어로만 기재되어 있었고, 초/중/고를 미국에서 수료했다.
대학 또한 명문대를 졸업 후 박사학위까지 취득했으며, 프리스턴대학의 부교수로 활동 중 이었다. 그리고 재희의 눈에 띄는 한 단어가 보였다.





criminal psychology doctorate






[범죄심리학 박사]




재희는 상황이 재미있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가 궁금해 졌다. 빠른 시간 내에 직접 만나야 겠다고 생각한 재희는 민재를 손짓으로 부르고, 그의 귀에 작은 소리로 이것저것 지시를 한다.







예지의 이력서를 보고, 고심에 빠진 달성이 머리를 심하게 긁적이다. 포기한 채, 차에서 내려 예지의 신상정보를 들고선, 병실로 향한다.

병실 앞에 있는 남형사에게 신상정보를 건네고 읽어 보라는 듯 재촉한다.


“야 빨리 읽어봐! 무슨 말이냐?”

“글쎄요... 무슨 사람이 다 영어야?”

“으그- 무식한 놈, 됐고, 김순경 오라고 해봐”

“팀장님도 모르면서”

남형사는 투덜대며, 병실 안에 있는 김순경을 부르러 간다. 병실 문 작은 창문으로 김순경 옆에 예지가 곤히 잠들어 있는 모습이 보인다. 정리되어 있지 않은 긴 생머리, 한동안 햇빛을 제대로 보지 못해 아픈 사람처럼 피부가 유독 하얗게 보였고, 사건현장에서 예지를 구덩이에서 꺼내기 위해 달성이 들어도 버겁지 않은 몸을 소유 하고 있는 예지였다. 그녀를 바라보던 달성은 그녀의 말 한마디가 생각났다.



“살려주세요”



달성은 예지가 납치된 순간에 얼마나 살고 싶다고 생각했을 지를 떠올리니, 가슴 한 편이 시큰했다.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달성은 25년 전 그가 처음 해결해야 했던 그 사건과 이 사건이 왠지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달성은 김순경이 나오는 모습을 보고, 그의 생각을 지운 후 출입문을 등지고 돌아선다.

“김순경 영어좀 해?”

“영어요? 갑자기 왜요?”

“이거 이력서 좀 읽어죠봐”

“주세요. 팀장님”

“이름은 최예지, 나이는 29”

“그런 거 말고 중요한 것만 집어서 얘기 해죠”

“네 알겠어요. 팀장님”
“다 읽어보고 대충 요약해서 말씀드릴게요.”

김순경의 눈동자가 이력내용 하나하나를 꼼꼼히 체크하듯, 좌우로 흔들리며 읽어 내려가고 있고, 달성은 어서 답을 달라는 듯 복도를 왔다 갔다 하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취한다. 그리곤 어김없이 성질 급한 본인의 성격을 먼저 표출한다.

“아직 이야? 김순경?”

“팀장님도 참! 대충은 봤어요. 말씀드릴게요.”


“말해봐”


“최예지씨는 미국사람이고, 한국에는 연고가 없네요. 방문목적이 오빠를 찾기 위해서네요.”
“학교는 모두 미국에서 다녔고, 경력이 꽤 화려해요”
“특히 눈에 띄는 이력이 있어요.”


“뭔데?”


“범죄심리학 박사네요”


“범죄심리학 박사?”


“네”


달성은 골똘히 생각을 정리하더니, 동료형사들에게 그만 쉬라고 말하고, 달성은 예지 옆 침대 간이 의자에 앉아 그녀를 바라본다.


달성은 그녀에게 물어볼게 많은 듯, 수사노트에 이것저것 물어볼 것들을 미리 메모해 둔다.
한 참이 지나도 일어날 기색이 없는 그녀를 달성은 차마 깨울 수 없어 그녀의 침대 조그마한 공간에 머리를 숙이고 잠이 든다.


달성은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는 느낌을 받고 벌떡 일어난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정면에서 빤히 쳐다보는 예지를 쳐다보고 나서야 안심이 된 듯 한숨을 내쉰다.


“휴-”


예지는 그런 달성의 모습을 보고, 본인이 잘못한 게 있는지, 어리둥절해 있다.
달성은 예지의 감정을 느꼈는지 괜찮다는 표현을 한다.


“아 죄송해요”
“몇 십 년 동안 이 일을 하다 보니 습관처럼 저도 모르게 이렇게 되네요.”


“아- 네..”


그녀의 표정이 한결 나아진 것 같아 보여 달성은 본인을 소개하려 한다.


“제 소개도 안했네요.”


“알고 있어요. 최팀장님?”


“어떻게 아셨어요?”


“아- 아까 김순경님한테 전해 들었어요”


“어떤걸?”


“제가 꿈속에서 누군가 저를 감싸주셨다고 말씀드렸더니, 그게 최팀장님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아- 직업상 저도 모르게”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제가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요.”


“그래도요 정말 감사해요”


달성은 예지의 칭찬이 어색했는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멋쩍은 듯 수줍은 표정을 짓는다.
달성은 본인의 어수룩한 행동이 부자연스러웠는지 그 분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예지에게 계속 말을 건넨다.


“몸은 좀 괜찮으세요?”


“네- 덕분에요”


달성은 안부를 물으며 자연스레 그녀의 신상에 대해서 캐물으려 한다.


“미국분이시던데?”


“아- 제 소개를 안했네요.”
“신상에 대한 건 묻지 마세요. 지금 제가 다 말씀드릴 테니”
“미국사람 맞고요. 한국은 처음이에요. 미국에서 학교는 다 마쳤고요, 가장 궁금하신 게 제 전공이시죠? 네 보신 데로 범죄심리학 박사에요. 한국 방문 이유는 잃어버린 가족도 찾고, 기회가 되서 현장실습을 위해 방문하게 되었어요.”


“아- 그러셨군요.”


“저- 납...흠”


달성은 쉽게 사건에 대한 내용을 말하지 못하고 있다. 그녀는 대화중에 밝은 모습을 간혹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어두운 표정으로 인해, 꺼내고 싶지 않은 기억을 다시 생각나게 할 수 없어 달성은 본인의 수사노트에 빼곡히 적어놓은 질문은 하나도 물어보지 못하고 있다.

달성은 오늘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하고, 내일 다시 물어볼 생각으로 자리를 털고 일려 나려는 듯 수사 노트를 접어 버린다.


“벌써 가시게요?”


“네 오늘은 좀 편히 쉬세요.”


그녀는 알고 있는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고 나선 달성에게 말을 한다.


“내일 오시면 다 말씀드릴게요. 하루만 추스를 시간을 주세요.”


“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좀 쉬세요.”


달성은 대화를 끝낸 후 그녀를 침대에 다시 눕혀주고 나서 병실을 빠져 나온다.
달성은 기분 좋은 대화를 한 듯, 오늘 하루 있었던 여러 사건은 잠시 잊은 채 마음의 안식을 그녀에게서 얻었다.


달성은 남형사와 김순경에게 전화를 한 후 병원을 빠져 나가려는 순간 주치의를 잠시 만나고 가라는 간호사의 전달로 그녀의 주치의를 만나러 간다.








“사이코패스의 심리와 발병원인?”


“네 회장님 이것 말고도 여럿 있습니다.”


“저게 박사 논문이라는 거죠?”
“재미있는 논문 주제네요”


“.....”


“최예지씨가 작성한 논문 구해 오세요.”
“그리고 최예지씨 오빠 찾아봤나요?”



“네 근대”



“뭐죠?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죠? 가상의 인물”



“어떻게? 아- 네 회장님 누군가 이력을 조작한 거 같습니다.”



“재밌는 여자네- 히히”



“이 여자 빠른 시일 내에 만날 방법 강구하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리고 한 가지 더 아셔야 될게 있습니다.”


“뭐죠?”


재희는 민재의 대답을 듣고 급히 그의 무리들을 이끌고 병원으로 향한다.
평소 즉흥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재희였다. 언제나 이성적으로 판단을 했고, 살인자 앞에서만 그의 본능대로 움직였다. 민재는 그런 재희를 저지하려 했으나, 재희에 특유의 일정한 톤의 말투로 인해 민재는 더 이상 그의 앞을 막을 수 없었다. 그 톤의 의미는 곧 죽음이다. 지금 재희는 본능에 충실한 사이코패스이다.









“뭐라고요?”
“사실입니까?”



“네 저희도 좀 난감합니다.”
“이걸 어떻게 전해야 할지....”


달성은 주치의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사건을 경험하며, 이런 일은 비일비재 하나, 그녀에게만은 일어나지 않길 달성은 바랬다. 그의 25년 전 악몽과도 같았던 그 사건이 반복되고 있다.


“제가 말하죠.”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최예지씨는 지금”













“아이를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