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당이라고 뭔 줄 알지?
조선시대 때 애들 글공부하던 곳 있잖아
아직도 서당이 많이 있거든.
진짜 글공부하는 곳도 있고 탁아소처럼 애들 맡아주는 곳도 있고.

내가 간 곳은 애들 맡아주는 곳이었어.
주로 방학이 피크거든?
애들 미어 터져.
그 때마다 일손이 부족하면 어찌어찌 연락이 오는데
처음 여름방학 때 알바하러 갔을 때가 생각나.

처음 갔으니까 이제 거기 있던 사람들이랑 소개시켜줄 거 아니야
사람이 많지는 않고 아는 선배, 후배랑
첨보는 여자애가 한 명 있었어.
훈장님이랑 예전부터 알던 사이래.
훈장님이 걔보고 나 짐정리하는거 도와주라더라고.

걔 도움 받아서 방 배정 받고 짐 풀면서 잠깐 이야기 나눴어.
일 어떠냐 뭐가 힘드냐
애들 씻기는게 제일 힘들대.
어우 듣는데 벌써 지치는거야.
나 애들이랑 친해지게 많이 도와달라 했어
알았대

이제 뭐 일하는건 별거 없었어
애들 밥 먹이고 간식주고 재우고 청소도 하고
손수건 염색하고
예의범절 가르치고
애들 떠나는 날 노래방 기계 켜서 장기자랑 시키고 그런거 하고

또 들어오는 애들 받고
애들 씻기고 울면 달래고
처음엔 진짜 진이 다 빠졌어.
걔는 노하우 생겨서 애들 잘 다루더라고.
도움 많이 받았어.

며칠 일하니까 일도 슬슬 익숙해지고
나는 남자애니까 이제 잡일도 했거든
고추따러 가고 마당 뛰쳐나온 닭 잡으러 갔었어
걔는 닭 무서워서 도망가고 그랬던 기억 나.

밤마다 훈장님이 홍어에 막걸리 같은 거 가져와서 술 먹자고 하는데 （사모님이 몰래 술먹는다고 개싫어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걔는 많이 안 먹고 나랑 선후배 셋이 주로 먹었어
날마다 그러니까 슬슬 친해졌어.
별 생각은 없었고 그냥 방학 때 한번 볼 거니까 살갑게 지내자 생각하고 편하게 대하면서 지냈던듯.

근데 아무래도 서당이 시골이고
낮에 고생하니까 몸이 힘들잖아.
밤에는 할 일 없어서 심심하기도 하고

그러면 걔한테 자주 가서 남은 일 도와주고 이야기도 많이 했던거 같아.
원래 어디 사냐, 알바 한 돈으로 뭐할거냐 그런거.
지금 생각해보니까 아무 생각 없이 말도 걸고 장난 많이 친 듯.

여름 밤에 벌레 소리 찌르르 들으면서
선풍기 쐬면서 그냥 도란도란 이야기 하는거 있잖아
그러고 놀았거든.

근데 그러다가 걔가 알바 끝나는 날이 됐어.
남은 방학에는 봉사시간 채워야 해서 나간다 하더라고.
그래서 그냥 그렇구나. 잘가. 나중에 누구 껴서 만나자하고 인사했음. （친구로 중간에 아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됐거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보냈는데

그런데 이제 떠나는 날 아침에
한 번도 그런 적 없었는데 내 방에 와서
내 이불 개는거 도와주고 가만히 서있더라고.
나는 기분 좋아서 야 잘가 도와줘서 고마워. 그랬던 듯
그러니까 뭐 걔도 웃으면서 나갔지.

이제 밖으로 배웅해주는데
문 앞까지 배웅했거든. 오전 일이 있어서.
그니까 여기까지 배웅해주는거녜
응 나 일해야돼서 가야돼.
그리고 핸드폰 꺼내서 번호 물어보려고 했는데
선배가 찾는거야. 애들 아침 먹여야 된다고.
그래서 연락처 교환 못 하고 돌아서서 갔거든.

근데 그날 종일
왜 내 이불을 개줬지? 진짜 뭐지? 하고 생각하다가 선배랑 후배한테 말했는데
등신이라고 욕하더라고
ㅋㅋㅋㅋㅋ

한동안
그 이불 개준거랑 웃으면서 가는거
한번씩 떠오르더라
그냥 뭐 그때 그랬지~ 하고 씨익 하고 웃는 그런거 있잖아

여름 밤에 풀벌레 소리 들리면 한번씩 생각나.
지금 보일러실에서 벌레 우는 소리 나길래 생각나서 써 봄. 이제 잡으러 간다. ㅂ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