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해야 하나? 걱정을 했지만 나의 생각이 별 의미 없다는 사실을 금방 깨달았다. 직장과 도시락 집만 왔다 갔다 하고 취미생활도 거의 없어서 그런지 원룸에 내 물건은 따로 없었다. 옷도 정장과 사복 몇 가지뿐이었다. 나란 놈 보기보다 삭막한 삶을 살고 있었구먼.

“그래서 떠나는 거잖아? 좋게 생각하자.”

혼자 중얼거리면서 우울한 기분을 털어냈다. 그래도 몇 년간 고생해서 들어간 기업이었는데. 남들 다 한다는 토익도 하고 자격증도 따고 학점도 힘들게 관리했는데…….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남자들은 군대를 갔다 오고 나면 공부를 다시 해야 한다. 그것도 처음부터 다시.
역시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하려는 건 그것들을 전부 버리는 거니까.

“지금 후회해서 뭐하겠다는 거야?”

양손으로 뺨을 가볍게 때렸다. 지금부터 난 살인자와 같이 일하게 된다. 이미 추리에 많이 익숙해지고 사람의 생명을 단지 추리의 재료로 밖에 생각 안하는 놈과 말이다. 다른 하찮은 것들을 걱정할 만큼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오히려 무섭다. 지금 이 선택을 후회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흥분되는데?”

분명 무섭긴 하다. 가슴이 쪼그라들 정도로 긴장된다.
하지만 가슴 한편에는 기대감으로 인해 가슴이 두근거렸다. 진짜 탐정의 진짜 추리를 볼 수 있으니까. 나 같은 허접한 녀석의 추리와는 비교도 안 되겠지?
어느 정도의 옷가지를 가방에 쑤셔 넣은 뒤 문 앞에 섰다. 몇 년 동안 생활하면서 그래도 정든 집인데 막상 떠나려고 하니 아쉬운 마음이 발목을 잡았다.
이 곳에서 여자친구와 뒹굴 거리면서 놀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솔직히 긴 연애는 아니었고, 크게 좋아하던 여성도 아니었다. 그녀 역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으니 헤어질 때 문자 한통을 보내고 끝낸 것이겠지.
하지만 그래도 이 아련함이 가슴을 갑갑하게 만들었다.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고 집을 둘러보았다. 익숙한 풍경이다.

“난 진짜 좋아하는 일을 위해 떠나는 거야. 이제 지겨운 라면도 도시락도 집에서 잠만 자는 그런 생활은 싫어.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어. 친구를 팔아치우고 살인자와 같이 일하는 웃기지도 않은 상황이지만……. 그래도 이제야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어……. 그러니까……. 그 동안 고마웠어.”

그렇게 말한 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얼굴이 후끈거렸다.

“내가 애도 아니고 집한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방금 전 떨어지지 않은 발이 쉽게 들렸다.

“고맙다.”

그 후 아무거리낌 없이 원룸 건물 밖으로 나왔다.
상쾌한 바람이 뺨을 훑으며 지나갔고, 맑은 하늘은 좋은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자, 일단 뭘 타고 대구까지 가야 되나?”

이정호 사무소는 대구에 있다. KTX를 타고 간다면 금방 도착하겠지. 어째서 범죄가 많은 서울이 아니라 대구에 사무소를 차렸는지 도착하면 물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