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나왔어! 어서 밥 줘!”
“당신은 허구언날 밥 타령이야?!”
“뭐야? 이 여편네가!”

터벅터벅 걸어온 집에 여전한 따박따박 잔소리. 정말 미칠 노릇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서 뇌가 툭 하고 튀어나와 나에게 화 좀 내지 말라고 너무 뜨겁다고 야단을 칠 것만 같다. 내가 지금 등산을 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만큼 숨이 너무 가파르다. 흥분제에 취한 듯 억제가 되질 않는다. 침착하자. 침착해야한다. ‘스읍 후우-’ 하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당신, 이혼하고 싶어?”

당장에 오른손이 등 뒤로 치켜 올라갔지만 이내 참았다. 아내가 눈을 찡그리며 몸을 움츠리는 모습에 그만 나도 모르게 동정이 피어올랐다. 그래도 내 아내인데. 그래도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내 아내인데. 세상에 내가 지금 손찌검을 하려고 한 건가?

“나, 나를 때리려고?”
“아니야,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미안해 당신.”
“됐어요. 알아서 밥 먹어요.”

아내는 문으로 ‘쾅’하는 노래를 부르며 방으로 들어갔다. 매일 아침 마다 의례적으로 나오는 TV 속의 애국가처럼, 저 ‘쾅’소리는 의무적으로 들어왔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내가 원한 결혼생활은 이게 아닌데. 언제부터 이렇게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을까.

내가 언제부터 그녀를 사랑하기 시작했던지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어렸을 적의 추억조차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시 천천히 고개를 들어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하늘이 어떻게 생겼더라. 깜빡이는 형광등에 내 모든 기억이 사라져 버릴 것만 같다.

멍청하고 멍한 모습으로 밥을 먹었다. 그래도 배는 고팠다. 우걱우걱 입에다 억지로 밥을 집어넣었다. 처음엔 맛이 없던 아내의 반찬. 너무 극단적인 맛이었지. 아예 짜거나, 아예 싱겁거나. 10년이란 세월을 함께하다보니 이렇게 입맛도 익숙해져 버렸다. 근데 왜 아내와 나의 사이는 익숙하지 못한 걸까.

멍하니 설거지를 했다. 물줄기가 손을 때리는 게 그렇게 차가울 수 없다. ‘고무장갑을 사용하지 않나.’ 주위를 둘러보아도 고무장갑은 보이질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아내의 손을 잡아 본지가 몇 년이더라.

그렇게 다시 똑같은 아침이 시작됐다. 이름 모를 새가 지저귄다. 저 새도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을까. 그래서 저렇게 구원의 지저귐을 하는 것일까. 차라리 나도 새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곳저곳 타인의 시선은 느낄 시간도 없는 찰나의 시간처럼 사람들 사이를 훨훨 시원하게 날아다니고 싶다.

“여보 나왔어.”
“응. 자기, 내가 맛있는 거 했어.”
“정말? 웬일이야?”
“에이, 웬일은!”
“하하. 고마워.”

나도 눈치가 있는 놈이다. 갑자기 아내가 이렇게 살갑게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최대한 손을 천천히 씻었다. 내 손의 균들이 모두 사라지기 전에 경우의 수를 생각해 두자. 그것이 마음의 안정에도 최대한의 여유를 가져다 줄 거야. 여자가 갑자기 돌변하는 데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우리 엄마가 나를 죽이려고 했듯이.

그 날도 이렇게 멋진 밥상 앞에서 엄마와 단둘이 밥을 먹었다. 평소에 해주지도 않던 반찬들이 이상하리만치 상다리가 다 부러져 버릴 정도로 올려져 있었다. 생년 처음 받아본 만찬 앞에서 게걸스럽게 밥을 먹었다. 어린 마음에 누가 뺏어 먹을 까봐 겁이 났다.

두 손은 이미 밥풀 투성이었다. 어찌나 찐득한지 그 꺼림칙함이 느껴질 정도에 다 달랐을 때 ‘아차’ 싶었다. 왜냐면 엄마의 숟가락이 아직도 빛이 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온 머리카락을 밥상에다 집중시킨 채 눈알을 조용히 굴려 엄마를 쳐다보았다. 눈알을 굴리는 소리마저 어찌나 시끄러운지 내 두 귀를 틀어막고 싶었지만 당장의 큰 모션을 취했다간 왠지 큰 봉변을 당할 것만 같았다.

엄마의 표정은 아직도 잊혀 지지가 않는다.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실까. 돌아가신 아빠를 생각하는 걸까. 입을 꾹 다문 채 초점 없이 흐트러진 퀭한 눈동자. 심하게 경련이 일어나고 있는 오른쪽 뺨. 그리고 거침이 없는 황소와 같은 숨소리.

다시 눈알을 밥상에다 떨구기도 전에 손이 먼저 나에게 날아왔다. 하필 목에.

“너 이 씨발 새끼. 지 애비를 꼭 닮아 가지곤! 죽어!”

그 초점 없는 눈동자에 생기가 돋았다. 마치 로또에 당첨된 사람이 당첨된 종이를 들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눈동자에 심지를 킨 것과 똑같다고 해야 하나, 뺏기지 않아야 하니까. 분명 엄마도 생각하고 있을 거다. 내 목숨도 남에게 뺏기기 전에 어서 빨리 자기가 배당금을 챙겨야 한다고.

눈알이 터질 것만 같았다. 손은 어찌나 끈적한지 ‘뭐야 엄마도 손으로 밥을 먹은 거였어?’ 라는 무식한 생각이들 정도였다. 하지만 살아야했다. 살아야 또 다시 이런 진수성찬을 받아먹을 거 아닌가.

올라탄 엄마의 허벅지의 뒤로 뾰족한 무언가가 보였다. 포크였다. 저걸 잡아야해. 하지만 내 팔은 너무 짧았다. 내가 조금만 더 자랐더라면, 몇 년 뒤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저 포크는 지금 내 손아귀에 바로 쥐어졌을 텐데 하는 또 무식한 생각이 들었다. 난 죽는 순간까지도 천하태평이었다.

손가락으로 엄마의 눈을 세게 눌렀다. ‘아악’하는 소리와 함께 엄마가 뒤로 고꾸라졌다. 나는 잽싸게 포크를 집어서 엄마의 얼굴을 찔렀다. 그리고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니 기억이 없다. 곧장 그 악마의 동굴에서 도망쳐 나왔으니까.

“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게탕이네?”
“응. 실력발휘 좀 해봤지.”
“끝내준다 진짜.”

확실히 맛있다. 재수가 없게도 맛이 있다 보니 마음이 약해진다. 반대로 그 날의 악몽이 다시 떠오르기도 한다. 나한테 왜 이러는 걸까. 도대체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런 미운 놈에게만 주는 떡을 나에게 먹이는 걸까.

“우리 그냥…….”

심장이 덜컹했다.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됐어. 속도를 줄일 새도 없이 과속 방지턱을 엄청난 속도로 넘어버렸다. 아니. 아직은 넘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한국 사람이면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하니까. 설마 이혼은 아니겠지.

“왜 말이 없어?”
“…….”
“왜 말이 없냐고?”

이미 아내는 쓰러져 있었다. 나의 오른손에는 후라이팬이 쥐어져 있다. 이성보다 감성이 먼저 몸을 지배해 버렸다. 이런 어처구니가 없는. 포크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멍청한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 아내의 말을 듣지 못했는데, 이렇게 죽으면 안 되는데.

“자기야, 괜찮아?”

코에서 바람이 새질 않는다. 또 다시 숨이 턱턱 막혀온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주먹을 쥔 채 손을 입으로 갖다 대었다. 깊은 생각에 빠졌다. 어떻게 해야 하나. 죽일 생각은 전혀 하질 않았는데. 무의식이 날 이렇게 쉽게 지배해 버리다니.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이 나오질 않는다. 내가 이렇게 짐승만도 못한 놈이었나? 이 곳은 나의 동굴인가?

결국 죽어버렸다. 이렇게 쉽게 사람은 죽는구나. 소파에 앉아 천장을 바라보았다. 정말 저 형광등이 내 기억을 한 번에 쫙 기름때를 빼듯이 없애 주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날 리가 없지.

비는 또 왜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내리는 걸까. 괜시리 슬프기만 하다. 아내의 죽음이 슬픈 건지, 울적해서 슬픈 건지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그냥 사람을 죽이면 이런 기분이구나 싶다.

마당으로 시체를 끌어다 파묻어버렸다. 느긋하게 두 손으로 박수를 치듯 손을 털었다. ‘이쯤이면 되겠지.’ 아내를 파묻은 흙 위로 올라가 점프를 마구했다. 땅을 다져야하니까. 몇 번 뛰다 보니 나도 모르게 신이 났다. 리듬을 타며 점프를 했다. ‘이쯤이면 되겠지.’

이제는 아무리 씻어도 내 손의 균은 사라질 수가 없다. 나의 존재 자체가 균인데, 균 덩어리인데 무슨 균을 어떻게 씻을 수가 있을까.

“자백할까.”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 있던 말이 튀어나왔다. 고개를 뒤로 젖혀 크게 한숨을 쉬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사실 나는 그 악마의 동굴 속에서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이 없으니까.

‘아! 아퍼! 뭐야?’

갑자기 오른쪽 눈이 너무 따갑다. 가위에 눌렸나보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내 몸은 진짜 주인이 따로 있나보다. 말을 정말 지독하게도 듣질 않는다. 죽은 아내가 내 배를 깔고 앉아있다. 다시 눈을 감았다. 환영일거야.

다시 눈이 따가운 걸 보니 환영이 아닌 가보다. 지옥에서 탈출했나? 왜 한 손에는 포크를 쥐고 있는 건데. 네가 뭘 안다고. 그 이야기는 나만 알고 있는 이야기야. 하긴 내 몸은 내 말을 잘 듣지 않으니 나도 모르게 누설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 그만해! 너무 아프다고!’

아내는 더욱더 재빠르게, 강도를 높여가며 나의 눈을 찔러댔다. 점점 감각이 사라져만 간다.

“그러면 못써요!”
“왜요! 집에서 배운 놀이 중이에요!”

눈을 떴다. 선생님이 내 배에 올라탄 동생을 저지하고 있었다. 한창 재밌어질 장면인데. 에이 아쉽다.

“아무리 놀이라도 장난감 포크로 눈을 찌르면 ‘아야’ 하잖아요! 다시는 이러면 안 돼요 알겠죠?”
“피-. 선생님이 뭘 아신다고. 아빠가 해도 된댔어요.”
“알았죠?”
“네…….”

그렇게 우리의 놀이는 끝이 났다.

“박 선생님, 저 자매 말이에요.”
“네.”
“관찰을 좀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요주의 아이들이에요. 아까도 보셨죠.”
“네. 그것 뿐 만아니라 다른 이상한 행동들이 많아요. 다른 아이들과 있을 때는 괜찮은 데 꼭 둘이 저렇게 붙어있으면 이상한 놀이를 하네요. 그것도 아빠한테 배웠다면서요. 주변의 아이들까지 이상해 질까봐 걱정이에요.”
“집에 전화를 해도 안 받으시고, 데리러 오시던 어머니도 갑자기 며칠 전부터 보이질 않는 걸 보면 좀 이상하긴 해요. 아버지가 계시긴 한 걸 까요.”
“저희 반 아이들이 아니니 뭐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죠. 하지만 뭔가 저 집에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틀림없어요.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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