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마음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영영 감염자들에게 포위되어 갇혀있을 것 같던 집에서 빠져나가 안전한 곳으로 갈 수 있다니.
나는 뺨을 때리고 꼬집어 보았지만 진짜였다. 이것은 현실이었다.
누나와 진석이, 그리고 당황했지만 준호도 기뻐했다.

"알겠다. 잘 부탁하지."

김 원사가 그 사이에 재빨리 무전으로 얘기를 했다.

"감염자들이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되요, 단 1초라도 아껴야 살 수 있어요."

"그래서, 사령부는 어떻게 하기로 했대요?"

"근처에 큰 공원 있잖습니까. 그곳의 축구 코트에 군용 수송기를 보내서
우리들을 안전하게 수송할 생각이라 합니다."

"그렇군요."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김 원사는 재빨리 군장을 챙기고 갈 채비를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감염자들은 몰려오고 있어요, 지금이 4시 40분이고, 9월이니 곧 해가 질 거에요.
빨리 이동해야 합니다."

우리는 곧장 짐을 챙기고 집을 떠났다.
아쉬움이 있었지만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탕!"

"끼야아아악!"

이것으로 6마리 째, 우리는 접근하는 감염자들을 사살하면서 공원의 축구 코트로 향하고 있었다.

-축구 코트, 40m-

근처의 표지판을 보니, 겨우 40m 남았다. 슬슬 코트가 보였고, 자연스레 발걸음이 빨라졌다.

"두두두두두"

코트에 발을 들이니, 이제 막 착륙을 한 군용 수송기가 요란한 굉음을 내고 있었다.

"빨리 타세요! 몰려오는 감염자들이 이제 코앞이라고요!"

헬리콥터 조종사가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감염자들이 소리지르는 끔찍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우선 준호와 누나를 태우고, 진석이, 김 원사와 함께 탔다.

"자, 그럼 출발합니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굉음을 내며 수송기는 이륙했다. 생각해 보니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확실한 건
집에 갇혀있는 것 보다는 훨씬 낫다는 것이다.


그렇게 비행을 하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기체가 흔들렸다.

"젠장!!!"

그와 동시에 조종사의 욕설이 들렸고, 기체가 심하게 흔들리면서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거 왜 이래요?"

"죄송합니다. 제가 기체 조종을 잘 못해서 이런 실수를..."

"쿠궁!!!"




눈을 떠 보니 바깥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어느 새 정신을 잃었는지, 추락 직전에는 저녁노을이 보였건만 지금은 아니었다.

"우음... 여긴 어디지?"

몸을 움직이려고 해 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추락할 때 심하게 다친 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야말로 참혹했다.

진석이 녀석과 준호, 그리고 김 원사는 기절한 듯 보였고, 외상도 그리 심하지는 않았다. 보였다. 조종사도 양호했다.

하지만 누나는 그렇지 않았다.

"누나....!"

내가 아무리 불러 보아도, 흔들어 깨워 보아도 누나는 일어나지 않았다.


몇 십분을 누나의 시체를 들고 울고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감염자들은 언제 올 지 모르고, 지금 깨어 있는건 나 뿐인데, 그런 내가 이렇게 질질 짜고 있어서야
아무것도 안 된다는 생각을 말이다.

"야, 김진석! 김 원사님!"

나는 진석이와 김 원사를 흔들어 깨웠고, 조종사와 준호도 깨우려고 했지만 준호는 상처도
거의 없이 곤히 자고 있어서 깨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조종사도 빨리 일어나고!"


"우음...뭐냐..."

"깜빡 잠이 든 모양이군요."

잠시 후 모두들 깨어났다.

다들 뭔가 말을 꺼내려고 했지만, 싸늘한 누나의 시체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누나만 빼고...다들 멀쩡하죠?"

"그래."

"네."

나는 곧장 조종사에게 가서 멱살을 잡고 주먹을 한 대 날렸다.

"어... 왜 이러십니까?"

"닥쳐! 너 때문에 사람이 죽고 다쳤다고! 너의 그 실수 하나 때문에 다들 그렇게 됬는데
그런 말이 나와?"

내가 K-5를 조종사에게 겨누고 당장이라도 쏠 듯한 모션을 취하자,
진석이와 김 원사가 급히 말렸다.

"이런다고 죽은 누나가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래!"

"누나가 살아 돌아오든 말든, 누나를 죽인 건 이 자식이야!"

"탕, 탕!"


그 때는, 나도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이성을 잃고 방아쇠를 당겼고, 하나는 급격한 흥분 상태인 채로 쏴서 빗나갔지만,
하나는 어깨에 그대로 명중했다.

"끄아아앜!"

조종사가 심하게 괴로운 듯 어깨를 잡고 쓰러졌다.

"하..하..."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나를 향해 진석이는 주먹을 날렸다.

"미친놈아! 니가 지금 뭔 짓을 했는지 알아?"

그렇게, 필름은 끊겼다.



"...음?"

나는 부드러운 침대에 누워서 자고 있었고, 그 옆에는 우리 일행과 처음 보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하음~"

"아직 일어날 때가 아니야"

내가 기지개를 펴자, 아직은 이른 아침이라면서 할아버지가 나를 강제로 침대에 드러눕히셨다.

"（이건 어릴 때나 당해보던 건데... 쩝...）"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저기, 할아버지?"

"왜 그래?"

"아니... 왜 우리가 여기 있는지부터 설명해주셨으면 하는데요?"

"저기 부사관 양반이 자네들의 일행을 이끌고 이 곳을 찾아와서는, 잠잘 곳이 없다고 하길래
예전에 쓰던 낡은 침대들을 준비했지. 자네들은 그대로 뻗쳐서 잤고,"

"아..."

"그런데 여기는 어디죠?"

"어디긴 어디야, 충북 제천이지."

"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안전한 군사시설로 가던 중에 수송기가 추락해서 이 근처에 떨어졌다고 하더군."

"그랬구나..."

내가 잠시 뒤를 돌아보았을 때, 어깨에 총을 맞은 조종사가 보였다.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어깨를 확인해 보니, 상처는 깔끔하게 바늘로 꿰매져 있었고,
머리맡에는 K-5 탄환이 있었다.

"그 친구는 심하게 다쳤길래 내가 옛날 실력 좀 발휘해 봤지. 홀홀홀"

아무튼 이 할아버지, 보통 사람이 아니다.

잠깐,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충북은 감염자들이 제일 적은 지역 중 하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