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구요?"

"그래. 그 아이가 어릴적, 막 다섯살이 되던해에 정신적으로 감당하지못할 트라우마가 생겼던 모양이야. 아주끔찍했더래"

"그게뭔데요?"

"나도 구체적인건 잘 모르겠지만.. 눈앞에서 부모가 살해당하는것을 봐버렸대."

".....와.."

"잔인하지. 불쌍하기도 하고. 그 어린 꼬맹이가 무슨죄가있다고... 뭐 지금까지도 견뎌내기 힘든모양이야. 그 일이있은후로 그 누구에게도 입을열지않는대."

"아이는 어디있는데요?"

"늙은할머니께서 도맡아 키우고 계신모양이야. 여기 할머니댁 주소 있으니 이따가 시간비면 한번 찾아가봐. 꽤나 위태로워보여.. 서둘러야할거야."




그렇게, 주소가 적혀져있는 작은종이쪼가리를 들고 산골짜기를 지나 약 30분정도를 걷고 헤매니 어느 낡아비틀어진 작은나무집이 저 멀리 보이기시작했다.

애당초 '이런 깊은숲속에 있을거면 이런주소따위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을텐데..' 하고 생각을 해보기도 하지만

뭐 정신적으로 휴양이 필요한 손녀를위해 이런 깊은숲속에 들어온것도 할머니의 사랑가득한 배려일수도있다.

그렇게 머지않아 현관문처럼생긴 낡은문앞에 도착해 살며시 노크를 했다.

'똑.똑.'

"저기요?"

'똑.똑.'

"아무도안계신가요..?"

문 건너편을향해 말해보았지만 아무런대답도 들리지않았다. 정말로, 쥐죽은듯이 고요했다.

'내가 온다는 연락을 못받으셨나?'

다시한번 '똑.똑.' 하고 노크를 해보았지만 아무런 반응이없는건 여전했다.

'하아.....'

그렇게 결국. 문옆에 쪼그려앉아서는 할머니가 돌아오실때까지 기다리기로했다.

챙겨온 가방에 있던 생수를 벌컥벌컥하고 들이키곤 습한날씨덕분에 자꾸맺히는 땀을 소매로 닦아내며 먹구름가득한 하늘을 쳐다보고있을때

저 멀리 할머니꼐서 머리에 짐을이고 천천히 걸어오고 계셨다.

"할머니?!"

곧장 일어나 달려가서는 머리위에있던 분홍모포로 돌돌 싸매어진 짐을 받아내고 말했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전에 연락하셨었죠? 도움을 드리려고 찾아왔습니다. 문앞에앉아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제서야 할머니는 '아 맞다 그랬지.' 하는 표정을 지으시더니 이내 활짝 웃으시며 말했다.

"어휴.. 이거 미안해서 어떡해요. 나이가 들다보니 자꾸만 깜빡깜빡 잊어버리는게.. 미안해요.청년."

"아니에요, 할머니. 그다지 오랫동안 기다린것도 아니니까요. 괜찮아요. 어서 들어가죠."

"그래도, 먼저 안에 들어가서 기다리고 계시지 그랬어요. 문은 항상 잠궈두지않고 열려있는데."

"암만그래도 아무도없는 남의집에 혼자들어가 있을수는 없죠. 아, 그런데......"

아..아아아.... 이제야 생각났다. 내 딴에는 할머니와 아이가 함께 외출을 했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혼자계셨다. 그럼 아이는..

"그럼 전에 말씀하셨던 그 아이는요..? 같이 외출했던게 아닌가요?"

"아니요. 그 아이는 지금까지 줄곧 바깥으로 나온적이 없어요. 항상 집안에만 있었죠."

"아까 노크했을때는......."

할머니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문앞에 다가가 손으로 밀자 문이 끼이익- 하는 소리를내며 열렸다.

집안은 불빛하나없이 어두웠다. 하지만 실루엣은 확실히 볼수있었다.

창틀곁에 있었다. 창틀곁 의자위에 앉아서는 오로지 창밖만을 바라보고있는 긴흑발의 소녀가.

그저 초점없는,생기없는 눈으로 아무런생각도없이 아무런감정도없이 그저 창밖만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