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한 내용입니다.




슬기는 꿈을 가진 여아이입니다.


오늘 아침도 일어나기 싫지만 학교를 가야 합니다.


엄마가 싸 주시는 맛있는 도시락 가방을 왼손에 들고


다른 아이들과 같이 똑같은 마음으로 학교로 향합니다.


그러나 슬기의 손에는 다른 아이들보다 하나 더 필요한 것이 있지요.


바로 흰색 요술 지팡이입니다.


긴 낚싯대처럼 생긴 이 지팡이는 슬기 키보다 훨씬 길지만


접어 다닐 수 있어서 무척 편리하지요.


슬기처럼 시각 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는......



사람들은 이 지팡이를 백장（白杖）이라 불러요.


색깔이 흰 이 지팡이는 바로 슬기 같은 아이들의 상징물이랍니다.

자 학교 갈 준비가 끝났습니다.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아주 능숙한 솜씨로 등교 길에 나섭니다.


매일 다니던 길이라 그런지


정확히 몇 걸음 뒤 어느 방향으로 돌아가는지 정확히 알고 있어요.

아! 이제 건널목을 건너야할 차례이군요.


지금 부턴 귀를 쫑긋 세워야 합니다.


하느님이 제 시력을 가져가신 이후로


제겐 남들보다 훠∼얼씬 더 뛰어난 청력을 주셨어요.


파란불이 되면 차가 뭠춰 서고 사람들은 길 건너길 시작하죠.


사람들이 많든 적든 길을 건너가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파란불을 머리속으로 확인하죠.


이땐 항상 남들보다 늦어요.


누군가 먼저 건너가기를 기다려야 하거든요.


길을 다 건너면 그 다음부터는 차가 들어오지 못하는


`학교 앞 어린이 보호구역'이어서 마음이 많이 놓여요.

친구도 만나고 가벼운 마음으로 학교공부에 충실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언제나 그랬듯이 돌아오는 길은 선생님이 학교 앞까지 나와 계시지요.


인사를 하고 다시 집으로 향합니다.


건널목 건너기 게임은 등교길과 거의 동일해요.


하루가 다갔습니다.


내일은 미술실기가 있는 날입니다.


준비물을 챙겨 잠자리에 듭니다.


아침에 늦잠을 자서 서둘러 학교를 가야 합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며 초조한 마음으로 학교에 갑니다.


학교 앞 보호구역에 다다랐을 때 자동차 경적 소리가 거칠게 들립니다.


이곳은 차가 들어오지 못하는 구역인데.....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눌러댄 자가용 기사아저씨가


마침내 고개를 내밀어 욕을 하는 것 같군요.



" 아니 저새끼 간땡이가 부은거 아냐,


야- 이 새끼야, 뒤에서 비키라면 비켜야 할거 아냐?


죽고싶어 환장했어? 확 갔다 박을까 부다.


에이 아침부터 재수없게시리........카-악 퇘!"






전 한쪽으로 피하며 미안한 마음에 걸음걸이를 더 재촉합니다.


준영이가 나를 본 것 같군요.


아참 준영이는 내 친구인데 대구에서 전학 왔어요.


나와는 반대로 잘 듣지 못해요.



" 아이구, 이건 또 뭐야. 장님 아냐? 세상에! 병신 천국이군, 천국이야."




다행입니다.



이럴 땐 준영이처럼


귀를 막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친구가 다행스럽고 한편 부럽기도 합니다.



사실 나쁜 아저씨가 한 욕은 모두 준영이에게 퍼부은 말이니까요.




오늘 미술시간은 유난히 길군요.


저처럼 앞을 보지 못하는 학생들은 보충학습을 해야하니까요.



벌써 6시입니다.

이제 집에 가야 되요. 더 늦기 전에......


빠른 걸음으로 건널목에 다다랐어요.


빨간불 인지 아직 아무도 건너는 것 같지 않네요.


3분...


5분....



건널목 신호등이 고장이 났나봐요.


차가 다니는 소리도 잘 나지 않고 사람들이 건너는 것 같지도 않아요.


귀를 쫑긋 세웁니다.


간간이 지나가는 차는


건널목 앞 서행도 없이 그냥 달리는 양 바람소리가 거셉니다.


혹시 나 밖에 없나?


생각하지만 사람들의 초조한 발자국 소리가 있음을 다시 확인하고


다시 기다립니다.


점자 시계를 만져보니 .... 15분이나 지났더군요.


6시 30분이 되어갑니다. 이제 해가 져 어둑어둑한 것 같아요.


엄마가 걱정하실 텐데.....


5분....


.........


..............................



무슨 일 일까?




시간이 지나도록 길을 건너지 못하고 있는 슬기는 초조해 합니다.




........




.......



........



분명 옆에 서있는 사람이




길을 건너지 않고 있는 까닭은





옆의 친구도 슬기가



먼저 건너가기만을 기다리는



슬기와 똑같은 처지의 여 아이였기 때문입니다.



written by 불꽃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