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진이가 말한 그때 거기란, 대학생 시절 녀석과 자주 갔던 해장국집 이름이다. 술을 마신 날에는 꼭 그곳에서 해장하곤 했는데 아마 주인집 아주머니의 넉넉함과 그때 거기라는 간판명이 우리를 잡아 끌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거기'는 도장을 기준으로 신라 호텔까지 가는 길의 2/3 정도 지점에 위치한 곳이다. 머리속에 지도를 그려 대충 생각해본 거리이기 때문에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얼추 맞을 것이다.



평소라면 지하철을 타거나 택시를 잡아탔겠지만 지금으로선 어림도 없는 일이다. 키가 꽂혀 있는 차라도 발견한다면 좋겠지만, 그런 요행을 바라는건 사치스럽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결국에는 감염자들을 피해다니며 그곳까지 두 다리로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우씨,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는 거죠?"



옆에서 나를 응시하고 있는 이예린 덕분에 혼자만의 상념에서 깨어났다. 그러고보니 아직 그녀에게 새로운 목적지를 알려주지 않고 있었다.



"우리는 걸어서 1시간 30분쯤 걸리는 곳까지 가야해요. 여기와 신라 호텔의 중간 쯤에 위치한 곳인데 그곳에서 사람들과 만나기로 했어요."



나는 일부러 '그때 거기'의 위치를 가깝게 알려주었다. 압박감을 줄이고, 희망을 주기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었다. 그건 나 스스로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감염자들 때문에 시간이 더 걸리겠네요."



"아마 그럴거예요. 그래도 최대한 조심하면서 가도록 하죠."



그녀는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의 일은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놓은 듯 강한 의지가 돋보였다. 정말 대단한 여자다.



생각해보니 그녀의 말투가 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조금 부드러워졌다고 해야 하나.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가방을 고쳐 메고, 권총의 안전 장치를 풀었다.



"예린씨, 혹시 도장에 뒷문이 있나요? 정문 쪽에는 감염자들이 있거든요."



"창고에 뒤쪽 공터로 통하는 문이 있어요."



"그쪽으로 나가죠."



그녀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창고에는 별다른게 없었다. 고작 부러진 목도 몇 개가 구석에 쌓여있는 정도였다. 창고 안의 창문에는 커튼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자세를 낮추고 뒷문으로 향했다.



고개를 살짝 들어 주위를 살펴보니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안전하다는 표시로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눈이 쌓인 공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시 한번 주위를 확인하고, 뽀드득 소리가 나지 않게 신발을 끌며 조심스럽게 걷자 갈림길이 나왔다. 한쪽은 도로 나가는 길이고, 한쪽은 골목으로 통하는 길이었다.



"골목으로 가죠."



나는 그녀에게 작게 속삭이고는 발걸음을 뗐다. 어디로 가던지 위험한건 매한가지다. 하지만 도로는 탁 트여있기 때문에 감염자들에게 발견될 확률이 매우 높다.



긴장감을 유지한채 방향을 잡으며 걷다보니 주택가의 갈림길이 나왔다. 눈 위에 발자국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걸로 보아 근처에 감염자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한쪽 벽에 등을 붙인채 재빨리 고개를 내밀어 왼쪽 길을 살펴보니 다행이도 감염자는 없었다. 나는 숨을 돌리고 다시 한번 고개를 내밀어 오른쪽 길을 살펴보았다. 있다. 감염자가 있었다. 30m쯤 떨어진 거리에 감염자 한 명이 계속해서 전봇대에 머리를 박으며 걷고 있었다.



'눈이 안 보이는 건가?'



우리가 가야할 방향은 오른쪽이었다. 하지만 감염자가 신경쓰여 지나가기가 꺼림찍했다.



"오른쪽 길로 가야하는데 왼쪽으로 돌아가죠."



"그래요."



나는 그녀에게 동의를 구하고 왼쪽 길로 방향을 잡았다. 조금 돌아가야 하지만 그러는게 안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감염자를 의식하며 한 걸음 앞으로 나가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줄 알았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던 감염자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눈이 안 보이기는 개뿔, 새빨간 두 눈이 이글이글 타오르며 정확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크아아아아!"



감염자는 성난 사자처럼 울부짖으며 나에게 달려왔다.



피슉- 피슉-



나는 당황하여 총을 쐈지만, 한 발은 어깨에 맞았고, 다른 한 발은 빗나갔다. 형편없는 나의 사격 솜씨를 저주하며, 이예린의 손을 낚아챘다.



"에잇, 어쩔 수 없네요! 근처에 감염자들이 소리를 들었을 거예요! 이제부터 정신없이 달려야겠어요!"



"알겠어요!"



우리는 왼쪽 길로 뛰었다. 뒤에서 감염자가 발광하며 쫓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크아아아아!"



"크와아아앙!"



그렇게 50m쯤 뛰었을 때, 또 다시 갈림길이 나왔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우측으로 방향을 꺾었다. 좌측 골목길에서 감염자 둘이 튀어나오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숙여요!"



갑작스러운 그녀의 외침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을 숙였다.



촤아아악-



새빨간 피가 눈 위에 흩뿌려지며, 감염자 하나가 내 옆에 쓰러졌다. 심장이 튀어나올 정도로 깜짝 놀랐다. 좌측만 보고 가다가 바로 앞에 있는 감염자를 못 본 것이다.



"뭐해요! 빨리 일어나요!"



"앗차!"



그녀가 나를 일으켜 세웠고, 우리는 다시 뛰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아!"



바로 등 뒤에서 감염자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잠시 멍 때린 동안에 바짝 쫓아온 것이다.



차가 많이 다니는 골목인지 앞쪽에 도로반사경이 있었다. 거리가 좀 있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바로 뒤에 감염자들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볼 수 있었다. 이대로라면 잡히고 말 것이다.



피슉- 피슉- 피슉-



"크와아아앙!"



급한 김에 손을 뒤로 하여 총을 몇 발 쏘았더니 바로 뒤에 쫓아오던 감염자가 괴성을 지르며 쓰러졌다. 가까운 거리였기에 명중한 모양이다. 그가 쓰러지자 뒤에서 쫓아오던 감염자들이 덩달아 넘어졌다.



"크아아아아아!"



잠깐 숨 돌릴 틈이 없었다. 좌측 골목 끝에서 십수 명의 감염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우측 골목 끝에서도 감염자 몇 명이 뛰어오고 있었고, 뒤쪽의 감염자들도 어느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숫자였다.



"젠장!"



꼼짝없이 포위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침착하자! 침착해!'



순간, 우측으로 10m쯤 떨어진 곳에 주차되어 있는 승용차가 눈에 띄었다.



"예린씨! 저 승용차 위로 올라가요!"



차가 주차되어 있는 쪽의 담벼락이 조금 높아 보이기는 했지만, 달리 선택할 방법이 없었다.



삐이- 삐이- 삐이- 삐이-



그녀와 함께 승용차 위에 올라가자 시끄러운 자동차 경보음이 작동했다.곧 있으면 근처의 다른 감염자들도 몰려올 것이다.



"예린씨! 먼저 넘어가요!"



"하, 하지만!"



"빨리요! 시간 없어요!"



감염자들이 순식간에 승용차 근처로 몰려들었다. 그녀는 먼저 검을 담 너머로 던지고 몸을 날렸다. 나는 그녀가 무사히 담을 넘을 수 있도록 밑에서 떠받들어 밀었다.



"크아아아아!"



감염자들이 승용차에 달라붙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들의 손은 나에게 닿지 않았다.



"지우씨! 빨리 넘어와요!"



그녀가 안전하게 바닥에 착지한 모양인지 애타게 나를 불렀다.



나는 먼저 권총을 담 너머로 던졌다. 그리고는 몸을 날리며 담벼락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아니… 뻗으려고 했다.



미끄덩



"으앗!"



"지, 지우씨! 왜 그래요!"



차 위에도 눈이 쌓여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만 미끄러지고 말았다. 하늘이 도왔는지 천만다행이도 차 밑으로 떨어지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내 신발을 잡으려는 감염자들의 손길을 뿌리치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다시 담벼락을 향해 몸을 날렸고, 무사히 담을 넘을 수 있었다.



"크아아아아아!"



감염자들은 내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분한 모양인지 더 사납게 울부짖었다. 만약 내가 차 밑으로 떨어졌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지우씨,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걱정 말아요."



이예린이 그녀답지 않게 울상을 지었다. 아니, 점점 그녀의 본모습을 찾아가는 건가. 나는 그녀에게 씨익 웃어 보이고는 권총을 주어들었다.



"마당에도 감염자가 있을 수도 있으니 옥상으로 올라가죠."



"네."



마당히 제법 넓은 이 집은 옥상이 있는 2층집이었다. 언제 어디서 감염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므로 일단 옥상으로 가는게 안전하다고 판단했다. 집에 감염자가 있더라도 좁은 계단을 끼고 싸운다면 훨씬 수월할 것이다. 또한 옥상은 현재 상황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에 내린 결정이었다.



삐이- 삐이- 삐이- 삐이-



"크아아아아!"



시끄러운 경보음은 여전히 울렸고, 그에 화답하듯 감염자들 또한 울부짖었다.



옥상에 도착한 우리는 벽에 등을 대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서로 내색은 안했지만 많이 지쳐있는 상황이었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몸을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그녀 또한 추운 모양인지 몸을 웅크린다.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아무 말 없이 감염자들이 떠나가기만을 기다렸다.





-





주변이 어느 정도 조용해졌다. 시끄러운 경보음도 꺼진지 오래다. 핸드폰을 꺼내 시계를 보니 3시 40분 정도였다. 도장을 떠나온지 벌써 2시간이 넘게 지난 것이다.



나는 살며시 몸을 일으켜 바깥 상황을 살펴보았다. 승용차가 있던 삼거리에는 세 명의 감염자만 남아 있었다. 그 많던 감염자들이 순식간에 뿔뿔히 사라진 것이다.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우리가 가야할 방향을 살펴보았다. '그때 거기'는 보이지도 않았다.



"후우……."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옆에 앉아있는 이예린이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웃어 보이며 시선을 돌려 안전한 길을 찾았다.



"예린씨, 이제 출발하죠."



"그래요."



그나마 안전한 길을 눈에 담아둔 나는 그녀를 데리고 집의 뒤뜰로 향했다. 그곳에 장독대가 있는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는 적당한 장독대를 골라 소리가 나지 않게 벽 앞으로 옮겼다. 그녀를 힐끗 보았는데 얼굴에 어떠한 의문도 없어 보였다. 전적으로 나를 믿는 모양이다.



담을 넘어 길가로 나온 우리는 조금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코너를 돌자 감염자 한 명이 눈에 띄었다. 그녀와 나는 눈을 마주쳤다.



"크르?"



감염자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우리는 감염자에게 달려들었다. 내가 감염자의 시선을 끄는 사이 그녀가 감염자의 머리에 검을 찔러넣었다.



털썩



감염자의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이번에는 손쉽게 감염자를 처리했지만 다음 번도 같을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





우리는 조심스럽게 목적지를 향하여 전진했다. 특히 대문이 열려 있는 집을 중심으로 움직였는데, 많은 수의 감염자를 보게 되면 무조건 집으로 도망가 숨어있다가 나오기를 반복했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45분 정도만 더 간다면 '그때 거기'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감염자를 만나지 않을 때의 이야기다. 어두워지면 감염자들의 위치를 파악하기 어려워진다. 쉬어갈 곳이 필요했다.



"예린씨, 더 이상 이동하는건 위험할 것 같아요. 적당히 쉴만한 곳을 찾아보도록 하죠."



그녀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별다른 대꾸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크르르르르르르."



골목길에서 불길한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우리는 잔뜩 긴장한채 전방을 주시했다.



"크르르르… 컹컹!"



잠시 후 모습을 드러낸건 감염자가 아니었다. 그건… 감염된 개였다. 두 눈이 새빨갛게 충열된 개는 망설임없이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서걱-



그녀가 사뿐히 피하며 일도에 개의 머리를 잘라냈다. 환상같은 그녀의 솜씨에 박수라도 쳐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순간.



"크르르르르르……."



"크르르르."



감염된 개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 뒤쪽에서도 서너 마리의 개가 튀어나오며 낮게 으르릉거렸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멀리 저 앞에서도 몇 마리가 뛰어오는게 보인다.



"뛰어요!"



한두 마리면 모를까. 감염자이건 감염견이건 둘이서 여러 마리를 상대할 수는 없었다.



골목길을 통과하려던 우리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도로가로 도망쳤다. 우측의 횡단보도 쪽에서 감염자 두 명이 우리를 발견하고는 뛰어오는게 보였다.



"이쪽으로!"



익숙한 거리가 눈앞에 나왔다. 이대로 30분 정도만 더 간다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텐데……. 아쉽지만 당장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는 도망가며 문이 열려있는 건물이 있는지 좌우를 살폈다.



그나마 다행인건 바닥이 미끄럽기 때문인지 감염견들이 제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과 우리를 쫓는 감염자들이 두 명 뿐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시도 지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우씨! 저쪽으로 가요!"



그녀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있는 2층 짜리 옷가게를 가르켰다. 그곳의 출입문에는 벽돌이 끼어 있었다. 옷가게 주인이 그런건지 누가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에게는 큰 희망이 되었다. 감염자들은 들이댈 줄만 알지 문을 여는 방법 따위는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재빨리 벽돌을 치우고 그녀를 먼저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리고는 나도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아니… 닫으려 했는데 감염견의 머리가 끼어 닫히지 않았다.



피슉-



나는 감염견의 머리에 총알 구멍을 내고, 발로 걷어찼다. 방해물이 사라지자 문이 닫혔다. 하지만 아직 안심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곧 바로 문 위의 잠금 장치를 돌렸고, 그제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강화 유리로 된 문이니 부셔지지는 않을 것이다.



"컹컹! 컹컹컹!"



감염견들이 문 앞에서 짖어댔다. 우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갔다. 창가에서 살며시 밑을 내려다보니 방금 도착했는지 감염자 둘이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우리가 안에 있는건 모르는 모양이었다.



"하아……."



"휴우……."



우리는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이곳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언제까지 쫓겼을지 모르는 일이다. 최악의 경우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살아남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밖은 조용해졌다. 감염자나 감염견이나 한자리에 오래 있는건 아닌 모양이다. 이제야 완전히 안심한 우리는 두 다리 쭉 피고 편히 쉴 수 있었다. 그때였다.



꼬르르륵



누구의 배속에서 나온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꼬르륵 소리였다. 나는 아니니 그녀일 것이다.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자 그녀가 시선을 피한다. 나는 피식 웃으며 가방을 내려놓았다.



"자, 밥 먹읍시다."





-





통조림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옷가지를 주워 모아 잠자리를 만들고 있을 때였다.



지이이이이잉



핸드폰이 울리며 문자가 왔다.



-지우야, 살아있냐……?-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지만 나는 성진이 녀석인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우리가 혹시 전화받지 못할 상황인걸 염려한 모양인지 녀석의 마음이 느껴졌다.



-응, 예린씨랑 같이 있어. 걱정하지마.-



-무사해서 다행이다. 지금 어딘데?-



-여기 무슨 옷가게인데. 2층으로 되어 있어. 이름은 생각이 안난다.-



녀석은 사람들과 의논중인지 답장을 바로 보내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기다리자 문자가 도착했다.



-오늘은 거기서 쉬고 있어라. 내일 아침에 데리러 갈게.-



-알았다. 기다리고 있을게. 너도 쉬어.-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자 실내는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워졌다. 불을 켤 수 있는 상황도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어둠 속에서 하루를 보내야 하는 것이다.



"지우씨, 어디 있어요?"



"저 여깄어요."



나는 다시 핸드폰을 꺼내 불을 살짝 비추어 그녀에게 다가갔다. 너무 붙어 있으면 그녀가 불편해할 것 같아 잠자리를 조금 떨어진 곳에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쪽으로 와요."



"알았어요. 잠시만요."



조금 떨어져 있는 잠자리를（옷가지로 만든） 그녀 옆으로 끌어당겨왔다. 이윽고 그녀가 눕는 소리에 나도 그녀를 마주보며 몸을 눕혔다. 나는 그녀와 나 사이에 핸드폰을 놓아두었고, 버튼을 눌러 화면에 빛이 들어오게끔 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그 모습이 우스웠는지 그녀가 살짝 웃었다.



"왜……."



"네?"



"왜 날 구하러 왔어요?"



"글쎄요."



"위험한 일인줄 알고 있었잖아요."



"제가 위험한 상황이었다면, 예린씨도 와줬을 것 같은데요?"



그녀는 오래도록 말이 없었다. 그녀의 긴 친묵이 긍정을 뜻하는지 부정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좋은 쪽으로 생각했다.



핸드폰 불빛이 들어올 때마다 그녀의 얼굴을 감상했다. 많이 피곤한 모양인지 두 눈이 스르르 감기려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만해요."



그녀가 버튼을 누르는 내 손을 잡았다. 나는 살며시 그녀의 손에 깎지를 끼었다.



갑자기 졸음이 쏟아진다. 오늘 하루는 너무나도 피곤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따스한 손을 꼭 잡은채… 나는 잠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