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
"깼냐."
"나 잤어?"
"어."

언제부터 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창밖을 보니 꽤 많이 어둑어둑해졌다. 상당히 많이 잔 것 같다. 길게 기지개를 켜고 몸을 일으킨다. 동생은 컴퓨터 앞에서 인터넷을 하고 있었는데 사뭇 표정이 진지하다. 동생 옆으로 가서 앉는다.

"뭐 좀 찾은거 있어?"
"응. 일단 생존자들만 모인 카페나 블로그가 많이 생겼어. 여기에 다 가입해서 정보를 공유하고 있지."
"잘됐네."

잘된 일일까. 아까의 일은 꿈이 아니었다. 지독한 현실이었다. 제길..

"하지만 문제가 있어."
"문제라니?"
"뭔가가 개입하고 있는듯 해. 카페나 블로그들이 2시간도 못 넘기고 사라지거나 폐쇄되가고 있어."
"..언론이 차단하는건가?"
"그래서 사람들이 카페를 가입할 때 사는 곳을 꼭 적게 되어있어. 이 근처에 사는 사람들도 몇몇 가입했더라. 실제로 보진 못했지만 나중에 연락을 할 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겠지."

인터넷을 마음대로 조종하고 통신사도 마음대로 부린다.. 윗대가리들 밖에 생각나지 않는데.. 이번 일과 윗대가리들이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는 건가?

"밥이나 먹자."
".."

살기 위해서는 밥은 꼭 챙겨먹어야겠지. 동생과 나는 아무말 없이 묵묵히 밥을 먹기 시작한다. 평소에도 밥 먹을 때는 서로 아무말이 없었지만 오늘만큼은 다르다. 이 무거운 침묵이 우리를 더 답답하게 만든다. 인정할 수 없는 현실.. 영화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들이 왜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동생이 우물거리며 말한다.

"밤에 녀석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한대."
"...."
"한가지 분명한건 괴물 녀석들이 남에 집에 못 들어온다는거야."
"그러고보니.. 아까 그 괴물도.."
"응. 왜 그런지 이유는 모르겠어. 하지만 밤엔 절대 나가면 안된대."
"그 카페 되게 유용하구만. 조금이나마 정보도 얻고."
"일단 고층 건물에 사는 사람들은 안전하다고 보면 돼. 위험한건 우리 같이 지상과 가까운 건물이나 1층에 사는 사람들이나 지하에 사는 사람들이겠지."

무거운 분위기를 깨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는 동생 모습에 왠지 모르게 서글퍼진다. 그래도 이 현실은 변하지 않을텐데 말이야. 영양가 없는 잡담을 나누는데 벨이 울린다. 나와 동생은 약속이라도 한듯 화들짝 놀라고는 인터폰 쪽으로 다가갔다.

부모님이 왔을지도 모르는 기대감에 인터폰을 보았지만 예상과는 다른 한 여자가 서있었다. 우린 실망감을 감추지 않고서 무심히 인터폰을 바라보았다. 여자는 우리가 안에 있는 것을 알기라도 한듯 벨을 두세번 연달아 누른다.

띵동. 띵동. 띵동.

오싹. 소름이 돋는다. 동생도 마찬가지인지 이를 악물고 인터폰을 보기만한다. 덜덜. 몸이 떨린다. 제기랄.. 나란 인간은 이렇게 나약한건가. 이윽고 여자는 인터폰에 달린 조그만 카메라에 얼굴을 가까이 들이댄다. 평범한.. 지극히 평범한 여자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거기 있는거 다 알아."

마치 옆에서 속삭이기라도 하듯 여자의 목소리가 생생히 인터폰 스피커로 들린다.

"미친.."

동생은 애써 무시하려고 한듯 인터폰을 꺼버린다. 하지만 벨을 계속 울렸고 나는 부들거리는 손으로 인터폰에 연결된 전선을 뽑아버렸다. 그제서야 조용해진 거실. 하지만 인간의 호기심이라는 것이 무서우리만큼 강하다. 나는 거실 큰 창문으로 다가가 살짝 커튼을 쳐낸 다음에 철문이 있는 곳을 보았다. 밝은 가로등 아래에서 묵묵히 서있는 여자.

"저 여자도 괴물이겠지?"
"어. 보지도 마."
"미치겠다. 저렇게 멀쩡한 여자가 괴물이라니. 대체 어떻게 살아야하지?"
"절망적으로 생각하지마. 우리 같은 사람들도 많으니까 일단 옥상으로 올라가서 밤에 녀석들이 어떻게 활동하는지 보자."

동생은 무서우리만큼 침착했다. 어릴적에도 그랬다. 손이 깊게 베였어도 울기는커녕 묵묵히 피를 지혈하는 동생. 차 사고가 날 뻔해도 놀라울만큼의 반사신경으로 그것을 피해낸 동생. 어린아이가 해낼 수가 없었던 일들을 동생은 자연스럽게 해냈었다. 그래, 어릴적에 동생은 나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하아.."

머리를 휘젓고 동생을 따라 걸음을 옮긴다. 우리 집이 좋은 이유는 바로 이 옥상 때문인데 다른 집들에 비해 옥상의 면적이 넓었고 다른 곳을 훤히 잘 볼수가 있다. 야경 또한 좋아서 가끔 가족끼리 모여 앉아 바베큐 파티도 하곤 했었다. 이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역시.."

낮에 비해 어두운 도로를 활보하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다. 믿기 힘들 정도의 수가 돌아다닌다. 낮에는 대체 어디에 있던 거지?

"이게 다 괴물들이라는 건가?"
"생각보다 심각한데 이렇게 많을 줄이야."

우리는 덤덤하게 사람들을 응시했다. 낮에 털복숭이 괴물과는 다르게 평범한 모습으로 돌아다니는 사람들. 특별히 목적지가 있어 보이진 않았다. 대부분 그 자리에서 왔다 갔다를 반복할 뿐이었다.

왈왈!

어디선가 개가 짖는 소리가 난다. 사람들은 그 소리에 일시적으로 반응했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우루루 달려가기 시작한다.

왈! 왈!

소리만 들어도 개가 사력을 다해 도망가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

"크아아!"
"크우!"

깨갱. 깽. 낑.

개는 애처로운 비명을 흘리고는 더이상 소리를 내지 못했다. 우리는 멍하니 서있었다. '밖에 나가면 안된다.' 라는 사고가 머릿속에 깊게 박혀들기 시작했다.

"아.. 저 미친.."

동생에 목소리에 난 고개를 돌렸다.

"...."

인터폰에서 우리에게 얘기를 했던 그 여자가 아직도 현관문 앞에 서있었다. 특별한 행동도 없이 그저 묵묵히 서있기만 할뿐이었다.

"계속 저렇게 서있으면 저 여자를 죽여야될지도 몰라."
"하아.."
"근데 약점을 모르니까.."
"카페에 올라온 거 없었어?"
"없지. 정상인이라면 누가 저런 괴물이랑 싸우고 싶어하겠냐?"

주머니를 뒤적거려 담배를 문다.

"나도."

동생에게 한개비를 건네주고 우리는 가만히 서서 담배를 태운다. 조금이라도 마음의 안정을 얻고 싶었다. 그때였다.

툭.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와 동생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고 거기에는 동그랗게 말은 이불이 놓여져 있었다. 뭐지? 나와 동생은 조심스럽게 이불에 말린 실들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안에는 군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P9XK 소형 무전기가 있었다.

무전기를 집어든 동생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걸 던진 무언가가 있다면 우리와 같은 처지의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사람도 우리만큼 답답하고 괴로운 상황이라는 것도 짐작이 갔다.

치지직. 치직.

[아. 들리는가?]

무전기에서 나오는 정상인의 목소리에 왠지 모르게 기뻤다. 동생은 침착하게 무전기를 켜고 말했다.

[예. 누구시죠?]
[자네 옆 고층 건물에 사는 사람이라네. 자네처럼 창가에서 녀석들 동태를 살피는 도중에 우연찮게 둘을 발견하고 이걸 건넨거야. 솔직히 거기로 떨어질지 반신반의했지만 그래도 잘가서 다행이군.]
[우리 같은 생존자가 있다는게 놀랍네요.]
[아직 많아. 그들 모두 대부분 이런식으로 통신을 하지.]
[하지만 이건 군용이잖아요? 흔히 볼 수 있는게 아닌데.]
[내가 통신쪽에 있는 장교일세. 이런 일이 생길 줄 알고 미리 준비해두었지.]

미리 준비를 해두었다? 군에서는 뭔가를 알고 있었군. 내 눈빛을 읽었는지 동생이 고개를 끄덕인다.

[군에선 이 사실을 알고 있었나요?]
[사고사례를 통해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

사고사례라면.. 자대 근처에 일어나는 일이나 자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모아 보고서 형식으로 만들어 모든 자대에게 돌리는 것을 말한다. 그럼 최초의 발견 역시 자대 근처인가?

[그럼 이거 기밀사항아니에요?]
[기밀은 얼어죽을. 다 죽게 생겼는데 기밀을 따질 처지인가? 일단 지금은 푹 쉬게 내일 아침에 다시 연락하지.]
[예. 알겠습니다.]

통신을 마친 동생은 이불을 잘 챙기고 옥상에서 내려갔다. 나는 아직까지 서있는 여자를 한번 보고는 내려갔다. 동생은 한숨을 쉬고는 식탁위에 무전기를 내려 놓고는 내게 말했다.

"나 먼저 잔다."
"응."

아까 낮잠 덕인지 잠이 오질 않는다. 동생 방문이 닫힌걸 보고 난후에 컴퓨터 앞에 앉아 이것저것 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은 역시 아까와 같은 화면이다. 다른게 있다면 실시간 검색란이 완전히 뒤바뀐 것? 동생과 마찬가지로 카페 검색이나 블로그 검색을 통해 여러단어를 검색한다.

역시나 나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와도 엉뚱한 것들만 나오고 내가 찾는 것들을 나오지 않는다. 이렇게까지 차단이 완벽하다면 정말 무서울정도다. 실험을 하는건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아니야. 지금이 어느 때인데.. 그럴리가 없어.

띠리링.

"흡."

헛바람을 들이키며 스마트폰을 바라본다. 분명 통신불량 상태였는데? 신기하고 불안한 마음을 애써 추수리며 액정을 바라본다. '마카오톡에 새로운 메세지가 있습니다.' 뭐지? 분명 통신불량상태였잖아. 조심스레 톡 내용을 확인한다.

（지금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