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침 5시. 멍한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로 언제나처럼 몸이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버렸다.

잠에서 덜 깬 채로 몸을 추스르려다가 순간적으로 꿈에서의 쓰러져있던 사람의 모습이 뇌리에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붉게 물들어가던 내 몸도.

이젠 이런 꿈에도 적응해버린 건가……. 그런 걸 마냥 감상만 하고 있다니 나도 참…….


“그런데…….”


왠지 쓰러져있던 그 사람의 모습이 언젠가 봤던 느낌이다. 물론 이번 사건 때의 피해자들의 모습과 닮아있긴 하지만 더 이전에 봤던, 흐릿한 모습으로 기억에 남아있는 듯한…….


“크윽…….”


갑작스런 두통에 머리가 깨질 것 같다.

그 일을 떠올려선 안 된다고, 더 이상 생각했다간 무언가 부서져버린다고 왠지 모르게 알고 있다.


“커, 하아……. 하…….”


심호흡을 몇 번하니 좀 나아지기에 진정을 되찾는다.


“하, 하아……. 그, 그래, 나중에 생각하자. 나중에……. 지금은 사건에 대한 것만 생각하자. 이게 더 중요하지…….”


그렇게 멍하니 뭐라고 하는지 이해도 하지 못한 채 중얼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 후에도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기에 세면대에서 찬물을 끼얹고 얼굴을 두드려본다. 머리도 여전히 아픈데다 내가 하는 말이 나도 이해되지 않기에 답답하다.

도대체 왜 이런 건지……. 나중에 친구 중 범죄 심리사 녀석한테 상담이라도 받아볼까…….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부엌으로 들어섰다. 어찌되든 식사는 해야 나갈 수 있을 게 아닐까 하는 마음에서다.

우리 집에는 나 외엔 아무도 없기에 쓸쓸하지만 아침식사는 혼자인데, 내가 자립해서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예전부터 가족이 없는 거라 그런지 더욱 기분이 우울한 것 같다.


“돌아 가신지 벌써 20년째인가……. 이제 와서 그런 거에 신경 쓰는 건 좀 그렇지만, 뭐……. 가끔은 이렇게 무거워져 버린 달까…….”


대충 토스트 기에서 튀어나온 식빵을 입에 물고 나갈 채비를 한다.

모처럼 감상에 젖었다가 여유도 뭐고 없을 정도로 출근시간에 빡빡해져 버렸다.

게다가 방금 오늘은 긴급회의가 열린다고 연락이 왔기 때문에 지금 당장 나가지 않으면 요새 듣지 못하긴 했어도 분명 아직도 건재할 터인 팀장님의 불호령이 떨어질 게 분명하다.

조금만 늦었다간 어떤 처사가 될지…….




“오늘 아침에도 그랬지만 습관이란 꽤나 무섭구만…….”


차에 올라타서 시동을 켜고 잠깐 지금까지의 사건수사의 현황을 정리하고 있자니 어느 샌가 도착해버렸다.

물론 출근시간에는 세이프. 그것도 아직 10분! 이나 남았다. 별 것 아니어 보이는 시간이지만 우리 쪽 일을 하다 보면 10분의 소중함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자판기커피라도 한 잔 할 수 있으니…….


“어이~ 박~현~준~!”


한 잔 들이켜고 회의실로 가려는 순간 신 형사가 말을 걸어왔다.


“아, 신 형사. 어젠 술 좀 덜 먹었어?”

“이봐……. 매번 신 형사가 뭐냐? 신 형사가. 이렇게 신. 태. 광. 이라는 빛나는 이름이 계시는구만. 거, 딱딱하게스리…….”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여긴 직장이잖아. 존칭 정도는 격식을 차려서 불러야지 않겠어?”

“에고……. 그렇게 고지식해서야 뭐가 되려고 그래? 어떻게 된 게 팀장님보다 더 심해? 그러니까 분명 누구한테 미움 받아서 그런 악몽이나 꾸는…….

“쓸데없는 얘기라면 됐어. 시간도 없는데 빨리 자리에나 돌아가지. 회의 시작하겠다.”

“야! 내 말 아직 안 끝났다고?”


뒤에서 들려오는 항의를 무시하고 곧장 회의장소로 걷기 시작했다.


“하아……. 저 녀석은 왜 이리 말이 많은지…….”


오늘의 교훈. 쓸데없는 고민상담은 금물. 이라고나 하겠다.

처음에 신 형사 친해진 계기가 바로 고민상담이었다.

사실, 이번 사건 이전엔 단지 동갑내기 라이벌로만 생각해서 대화를 자주하지 않았기에 친분이 없었는데, 사건을 맡고 악몽을 꾸게 된 뒤 신 형사가 사람이야길 잘 들어준다는 소리를 자주 들은 기억이 있어서 내가 상담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물론 상담 자체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꽤나 진지하게 들어줬고 조언도 해 준데다 자신이 잘 아는 정신과 의사 한 명을 소개시켜 주겠다고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결과가 이 모양이어서야…….”


매번 무슨 말을 할 때마다 꿈에 대한 이야길 꺼낸다. 내가 싫어하는 걸 알기 때문일 거다. 하여튼 사람 괴롭히길 좋아하는 녀석이니 말이다.
회의 장소에 다다라 이런저런 생각으로 차있는 머리를 비운다.

벌써 따라왔는지 내 뒤에는 문제의 신. 씨. 도 와있었다.

신 형사와 회의실에 들어서자 이미 모든 팀원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단 두 명. 팀장님과 김 형사를 빼고.


“모두 모이신 것 같긴 한데……. 김 형사랑 팀장님은요?”


자리에 앉으면서 옆자리의 여성팀원 중 한 명인 한지민 형사에게 물어본다. 전에도 말했지만 여성팀원은 단 2명. 신수진 형사와 내 옆의 한지민 형사다. 그 덕에 나는 우선적으로 옆에 앉아있다는 것만으로 주변 동료형사들에게 눈총을 받고 있다.


“글쎄요……. 팀장님은 회의 자료를 복사해 오시느라 그렇다는 것 같고……. 김 형사는 아까부터 연락이 안 된다고 하네요. 아프기라도 한 걸까요?”

“하핫. 한 형사님께서 걱정해 주시는 거 알면 감사해서라도 금방 날아올걸요? 이야……. 왠지 부러운데요? 김 형사.”

“후훗. 박 형사님. 말씀도 참…….”

“노닥거릴 수도 있고……. 자네들은 역시 좋은 때이네. 그렇지 않은가?”


어느 샌가 모두가 이쪽을 바라보는데다가 뒤에 팀장님께서 와 계셨다.


“아, 티, 팀장님……. 죄송…….”

“거, 죄송할 것 까진 없네. 자, 이거나 받게나.”

“아, 네, 네…….”


팀장님께서 건네신 자료에는 벌써 새로운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이번에도 전과 같은 살해 수법인 걸로 보아서 또 그 녀석이다.


“어디 보자……. 피해자의 이름은 김광현. 직업은 형사…….”


피해자의 신상정보에 붙어있는 사진과 이름이 낯설지 않다. 그렇다면…….


“다들 아는 사람은 알 테고……. 지금 들은 사람도 있겠다마는……. 어젯밤, 김 형사가 살해당했다.”


회의실이 술렁인다. 대체 이게 무슨…….


“티, 팀장님. 이게 대체 무슨……. 서, 설마……. 농담이신 거죠? 그렇죠? 에이……. 팀장님도 참…….”

“그, 그래요. 팀장님. 아무리 요새 분위기가 가라앉아있었다고는 해도 어제 회식도 했는데 이제 와서……. 하핫.”


팀장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계신다.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을 거라고 말하는 듯 한 팀장님의 눈빛에 모두 조용해진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어제의 좋지 못하던 김 형사의 표정이 나에게 암시를 준 것만 같아서 마음이 괴롭다.


“다들, 마음은 이해하네만, 이번엔 우리의 동료를 잃은 걸세. 우리가 이렇게 침울해져 있을 시간에 범인은 또 다시 이런 일을 벌일 테지. 일어서게나. 수사를……. 시작해야지.”

“네, 네…….”


다들 아무런 말도 더 하지 못한 채, 수색준비를 시작한다.




대체 왜 김 형사가 네 번째 타깃이 되어버린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