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7

눈이부시다. 벌써 아침이 됫나보다.
[아...]
어제 생각할 것이 많아 누워서도 한참 잠이 오지 않았는데 어느세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나보다. 어제밤 내가 뭔가 심각한
일이 있었다는 걸 눈치챈 인호는 평소보다 더 소란스럽게 수다를 떨고 하지도 않던 썰렁개그까지 하면서 내 기분을 풀어주려
했었다. 그러면서 나한테 뭔일이 있었는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아마 나 스스로 말할때 까지 기다리는듯 했다.
[짜식...]
지금 생각해보면 꽤 좋은 친구다. 나쁜일이 있으면 항상 제일 먼저 달려오던놈...그리고 항상 내일이라면 발벗고 나서던 놈이었다.
단순히 야참 얻어 먹으로온 내가 미안해졌다.
[이제 일어났냐?]
인호는 나보다 훨씬전에 일어 났었나보다.
[임마 지금 오전 12시가 넘었어. 뭔놈의 잠을 그렇게 오래자냐?]
[으응...정말 많이 잤네. 일단 좀 씻어야겠다.]
[수건은 화장실에 걸어놨어. 세면도구도 다 안에 있고. 점심은 너가사. 이래봐도 난 환자라구.]
[알았어 짜샤]
머리를 감으면서 어제 있었던 일을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내가 이걸 인호에게 말한다면
날 믿을까?
다씻고 우린 병실을 나와 엘레베이터 앞에 섰다. 왼지 모르게 거부감이 든다.
[인호야..나 아무래도 아침운동좀 해야겠다. 난 계단으로 내려갈게. 요즘 맨날 운동하다보니 하루라도 안하면 몸이 근질거려서
크큭..]
[이상한놈. 맘대로 해라 대신 나보다 늦게 도착하기만 해봐~혹시 밥사기 싫어서 도망가는거 아냐? 히히히]
[그럼 난 계단으로간다!]

우린 해장국집에 들어갔다. 어제 술을 마신건 아니지만 둘다 워낙 얼큰한걸 좋아하다보니 둘이 모이면 자주 가곤했다.
[아주머니 여기 뼈해2개요!!]
[네~네~바로나가요]
[인호야...사실 말하고 싶은게 있긴한데...무조건 날 믿어 줄수 있겠어?]
[물론이지 임마 사실 어제부터 물어보고 싶었는데 너가 너무 심각해서 말도 못꺼냈다고. 궁금하니까 빨리말해봐
이 형이 다 해결해줄게!]
역시 듬직한 녀석이다. 말이라도 이렇게 해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내겐 큰 행운이라고 느꼈다. 먼저 난 핸드폰 인터넷으로
접속해 그 괴담을 인호에게 보여주고 내가 있었던 일을 쭉 설명했다.
[...믿을 수 있겠어?]
[미친놈 너 돌앗냐?]
[휴...내가 생각해도 난 정말 미친놈 같아. 근데 정말이라고.]
[너 설마 오늘 아침에 계단으로 간이유가 그것때문인거야? 정말 심각하긴하네..]
그리고 곧바로 음식이 나오고 우린 둘다 배고픈지라 허겁지겁 먹고 인호를 병원까지 바래다 준다음 헤어졌다. 집앞에서 느낀거지만
우리집이 주택이라서 정말 다행이었다. 만약 고층아파트였다면 한동안 힘들게 계단으로 오르락 내리락 할 내모습이 눈에 선햇다.
집에 오자말자 바로 오컬트 사이트에 접속해 게시판을 확인했다. 엘레베이터 괴담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완전히 묻혔고 다시
무당체험 시리즈가 1등자리를 차지했다. 난 맥이 빠졌다. 나를 제외한 사람들은 모두 엘레베이터실험이 실패로 돌아간듯 했다.
그렇다면 내가 본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6/28

평소와 같이 늦게 일어나서 컴퓨터를 키고 인터넷 서핑을 했다. 아직도 엘레베이터경험을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하긴 하지만
이젠 많이 괜찮아 졌다. 특별한 일이라고는 하나없는 평범한 날이었다.

6/29

인호가 오늘 자기도 그 엘레베이터 괴담을 읽어봤다고 하면서 이런 유치한 장난에 넘가냐고 날 놀리는 문자를 보내왔다.
하긴...내가 생각해도 그일이 진짜인지는 햇갈린다.

6/30

오랫만에 고등학교 동창들과 만나 술집에 갔다. 애들여럿이서 만나 몇번 엘레베이터를 탓지만 별로 두려움은 없었다.
애들은 들떠서 밤새도록 달린다고 했지만 난 오늘 속이 별로 않좋아서 집에 일찍돌아왔다. 인호도 조만간에 퇴원한다고 하니
그전에 내일쯤 한번 병문안을 가야겠다. 자기전에 문자 보내놓고 자야겠다.
[우우우웅....]

-빨리와!!심심해

[새끼..답장 참 빨라]

7/1

오늘은 이상하게 아침에 눈이 빨리떠졌다. 평소같으면 자고있을 시간이지만 어쩐지 오늘따라 눈이 빨리떠졌다. 비가와서 그런지
기분이 참 않좋다. 가는 동안 심심해 문자를 보냈다. 우산쓰느라 왼손으로 문자를 보냈더니 꽤 불편했다.


-임마 형이 지금 간다. 근데 먹을거 많음?

항상 병원갈때 마다 느끼는 건데 이 근처 공사장은 기분이 나쁘다. 게다사 지금 짓고 있는 아파트는 꽤 좋은 아파트라고 들었다.
우리집은 저런 아파트에 들어갈만큼 형편이 안됬으므로 이 공사장이 더 싫어지는듯 했다.
[그런데 이놈 자나보네. 아직 답장도 없고. 오랫만에 자는 모습좀 카메라로 찍어야 겠다. 크큭.. 그때 날 어린애 취급한 벌이라구]
병원에 도착해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이젠 더 이상 이 곳이 무섭지가 않았다. 평소때와같이 머리를 만졌다.
10층에 도착하고 내렸는데 낮이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로비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비가와서 다 로비에 모인듯했다.
[똑똑똑...덜컥]
[야임마 형 왓다~~....?]
난 문을 열고 들어갔지만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라?이녀석 어디간거야. 혹시 잘못 들어왓나?]
병실번호를 확인해봤지만 분명히 1021호였다. 방구조 역시 똑같았다. 다만 다른것은 지나치게 방이 깨끗하다는 것이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도 없었던것 처럼.
[개새끼 퇴원했으면 했다고 말해야 할거 아니야 아오]
난 열받은 채로 인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재 거신 전화번호는 사용하지 않는 전화번호이니 확인하시고 다시 전화하시기 바랍니다. 뚜뚜뚜..]
[어라? 모야이거]
사실 이 번호가 안될리가 없다. 요즘세상에 친구번호를 외워서 전화하는 사람이 어디있을까. 폰에 저장되서 맨날 연락하던
번호인데. 난 바로 카운터로 갔다.
[저기 1021에 입원해있던 최인호환자 언제 퇴원 했나요?]
[잠시만요~......죄송합니다. 그런환자 입원한적 없는데요? 전체 환자이름으로 검색해 드릴까요?]
[아뇨..분명한데 어째든 감사합니다.]
난 조금씩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자꾸만 이상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거기 인호네 집이죠? 저 상택인데요~인호 지금 집에 있나요?]
[네? 누구시라고요?]
[인호친구 상택이요! 얼마전에도 놀러갔엇는데..]
[우리집에 인호라는 아이없어요~ 아마 잘못거신듯 한데 혹시 학생이신가요?]
[네?? 분명 아주머니 목소리맞는데 정말 인호 없어요?]
[아니 학생 지금 장난 전화 하는거야? 정말 인호란 학생없으니 다시 번호확인하고 전화해]
[아니 그럴리가..잠시만요 아주머니....뚜뚜뚜......]
대체 뭐야. 뭐냐고. 10년넘게 인호와 나는 서로의 집을 제집 드나들듯이 왔다 갔고 각각의 부모님들도 우리들을 친자식처럼 대해주셨다.
아무리 전화라고 해서 목소리를 못알아 들을리 없었다. 난 내 모든 동창들에게 인호에 대해 문자를 보냈지만 다들 같은 대답이었다.

-뭐 대체 인호가 누구야

-대학친구는 그 쪽애들 한테 물어보라고~

이게 대부분의 평범한 대답들이었다. 어떻게 다들 그렇게 오랫동안 친하게 지냇으면서 인호를 모르는척 할 수 가 있는거지?
대체 뭐냐고. 왜 다들 인호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거지?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것처럼...그런데 왜 나만 인호를 알고있는거야..
왜 나만 기억하고 잇는거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