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규마저 거부당하는 빛의 가호. 그 빛이 사라지고 200미터의 평평하고 깨끗한 바닥이 나타난다. 바닥에 떨어진

과자부스러기를 치우고 난 뒤 같다. 그 평지위에 나탈과 갑옷이 서있다. 그리고 좀 더 앞쪽 바닥에 구멍이 뚫려있다.

"이거야 원, 참 목숨 한 번 질기구만. 이렇게 되면 빨리 죽여준다는 말을 한 내 마음에 상처가 생긴다고."

구멍에서 로아와 무트가 올라온다. 공격이 오기직전 결계의 범위가 지상에만 적용하는 것을 보고 재빨리 바닥을 뚫어 숨었다. 하지만 그외의 다른 것들은 지키지 못했다. 이번 공격으로 몇명이나 희생되었는지 아니면 모두 먼곳으로 대피했을 수도 있다.

"바닥까지 파괴하면 내가 서있을 곳이 없거든. 그런데 그것때문에 더 귀찮게 되버렸군."

로아와 무트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본다.

"어떤 의미로는 싸우기엔 가장 좋지만 엄폐물이 없다는 게 좀 걸리네. 희생자는 없었으면 좋겠군."

"걱정마. 이쪽으로 오는 길에 대피하는 사람들을 봤으니까. 우선은 눈앞의 적에게만 집중해."

좋아 하고 무트는 검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준다. 그리고 나탈을 향해 공격을 시작한다. 검을 휘두르자 빛의 칼날이

나타나 악마를 향해 날아갔다. 악마는 검을 휘둘러 칼날을 튕겨낸다. 무트와 악마의 거리는 순식간에 제로가 되었다.

악마는 무트가 공격할 것을 예상하고 검을 미리 휘둘렀지만 이미 무트는 그 자리에 없었다. 진로를 바꿔 옆으로 이동한

다음 악마의 뒤로 이동했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천사와 나탈. 그들에게 검을 휘두르는 무트. 나탈은 소용없다는 듯이

결계를 펼친다.

그러나 공격이 오지 않는다. 무트는 공격을 멈추고 또 진로를 바꿔 나탈에게서 멀어졌다.

'뭘 노리는 거지?'

적이 멀어지자 결계를 푼 나탈. 악마는 로아가 쏘는 염동력을 막고 있다. 무트는 살짝 미소를 띤다. 영문을 모르는 나탈의

뒤로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검은 인간이 나타난다.

"엇!!!"

그 검은 주먹을 보고 천사의 결계를 급하게 친 나탈. 주먹은 결계에 부딪혔고 얼마나 힘이 강했는지 결계와 함께 천사와

나탈이 있는 곳이 뒤로 밀렸다. 결계는 바닥의 속까지 범위가 미치기 때문에 땅이 둥그렇게 갈라지며 같이 밀렸다.

"역시 스승님이셨군요. 뭔가 시커먼게 와서 피했는데 크크."

빌 테거가 목을 뚜둑 꺾으며 팔의 상태를 확인하듯이 어깨를 푼다.

"넌 나중에 천천히 귀여워해주마. 그런데 설마 이 공격마저 막을 줄이야. 짧은 순간이었지만 레벨4까지 해방했는데."

"헤에. 역시 이 도시는 재미있구만. 니플하임은 관광에만 투자해서 무지 재미없었거든. 재미있어 여기. 여러의미로 말이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탈은 약간 초조해졌다. 빨리 죽이겠다고 했는데 아직까지 싸움이 길어지고 있었다. 이곳의 능력자와는

비교도 안되지만 니플하임이 능력자들을 혼자서 괴멸시킨 나탈이지만 지금은 이 3명에게 시간이 끌리고 있었다.

세사람은 자세를 바로잡고 전투에 임할 준비를 한다. 나탈은 악마의 칼을 한 사람에게 조준했다.

"역시 하나하나 죽여버려야겠어. 한꺼번에 죽이면 좋겠지만 지금은 그럴수도 없겠군."

노리는 것은 방금 온 빌 테거. 그에겐 자신을 보호할 결계가 없다. 그리고 다른 두사람과 떨어져 있어서 누가 도와줄 수도

없다.

"붉은 십자가는 죄인을 꿰뚫는 심판의 창."

붉은 십자가의 창이 빌을 향해 똑바로 날아간다. 쾅 하는 굉음과 함께 빌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탈은 거기에서 시선을

떼고 무트를 향해 선다. 무트는 뚜둑뚜둑 이를 간다. 나탈은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곧 너희도 따라가게 해주지. 다른 주민들과 함께 말이야."

"빌어먹을.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도시를 파괴하는게 너에게 무슨 이득이 있다고 그러는 거야?!!!"

"아아. 별 이유는 없어. 그냥 부탁받았거든. 할일도 없었는데 재미있을 것 같아서 그냥 해주는 거야. 이래봬도 '신'이거든.

다른 '신'이 부탁하는데 냉정히 거절할 수도 없고 내가 그러자고 생각한 이상 그러는 거지."

'…신….'

"그렇단 말은 좀 전의 나탈은 이럴 맘이 없었다고 생각해도 되겠지? 그 녀석은 아무리봐도 이런 짓을 허락할 거란 생각은 안

들어."

"그딴 녀석에게 선택권이란 없어. 이 내가 주도권을 쥐고 있지. 그런 약한 녀석의 의견은 무시하는게 돕는 거야. 너무

무르거든."

그렇다. 무른 것이다. 나탈은 생각한다. 예전에 자신이 태어난 것을. 지금의 나탈이 처음부터 존재한 것은 아니다. 예전의

나탈은 소심하고 울보에다 남과 대화를 잘 하지 못하는 그런 소년이었다. 그런 나탈은 자주 괴롭힘을 당했고 슬퍼했다.

나탈은 자신의 약함에 분해했다. 처음으로 강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들에게 복수하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의 나탈이 태어났다. 나탈이 능력에 눈을 떳을 때 소심한 나탈은 그 능력을 다룰만한 그릇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능력은 뒤에 태어난 나탈만이 쓸 수 있었다. 그리고 나탈은 복수했다.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에게.

그런 자신을 도와주지 않은 마을에 복수했다. 피의 심판. 정신을 차린 나탈 앞에는 피를 흘린 체 쓰러져있는 마을 사람들

뿐. 나탈의 안에 있던 나탈은 생각했다.

'더 이상 널 슬프게 하지 않아. 더러운 일은 내가 전부 하겠어. 널 울리는 녀석들은 내가 전부 죽여주겠어.'

"이제 정말 끝이다. 장난은 여기까지야."

악마와 천사가 나탈의 옆에 선다. 무트는 검을 쥐고 자세를 다잡았다. 악마는 무트의 뒤로 공간을 찢고 나타난다.

내려쳐지는 붉은 검을 피하고 무트는 빛의 칼날을 날리며 거리를 둔다. 로아는 악마에게 염동력을 썼다.

하지만 그보다 빨리 천사가 악마의 옆에 나타나 결계를 펼쳤다. 그리곤 다시 나탈에게로 공간을 이동해 갔다.

무트는 악마와 계속해서 검을 부딪힌다. 그 광경을 로아는 보고 생각했다.

'방금 내 공격을 막기 위해 천사는 나탈에게서 떨어졌어. 그것을 한번만 더 유도한다면.'

로아는 주위를 살펴보고 결심을 굳혔다. 실패하면 자신이 위험해 질 것이다. 로아의 의도를 적이 알아채면 로아를 먼저

처리하려고 할 것이다. 기회는 한 번뿐. 로아는 다시 악마의 발을 묶기 위해 염동력을 쓴다. 이번에도 천사가 공간을

뚫고 악마를 지킨다.

"지금이야!!!"

로아가 보고 있는 곳에 땅을 뚫고 빌이 나타난다. 나탈을 향해 곧장 주먹을 내지르는 빌. 그러나 나탈은 옆으로 피해 빌의

배에 무릎을 꽂아 넣고 얼굴을 후려친다. 그리고 빌에게서 거리를 두듯이 뒤로 뛴다. 자신의 공격에 빌이 타격을 입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작전이 실패해 혀를 차는 로아. 그런 로아를 향해 악마와 싸우는 무트가 소리친다.

"로아, 뒤!!!!!!!"

그 말과 함께 로아의 뒤에 검은 그림자가 나타난다. 천사. 아무리 방어의 천사라도 방어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아까

천사와 싸운 로아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그 주먹에 맞기만 해도 로아의 몸은 이곳저곳이 부서질 것이다. 천사의 주먹이

로아의 얼굴을 노리고 날아왔다.

그러나 공격은 닿지 않는다. 바로 로아의 코앞에서 멈추었다. 악마역시 마찬가지로 공격을 멈추고 몸을 약간 떠는 듯 했다.

로아와 무트가 나탈을 향해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는 뜻밖에 인물이 있었다.

폰이었다. 폰은 오른손에 바람을 둘러서 공기의 칼을 만들어 나탈의 배를 찔렀다. 입가에서 피를 흘리는 나탈이 폰을 보고

말한다.

"어째서, 네, 네놈이 살아있는 거지?"

"적의 생사조차 확인하지 않고 길을 떠난 네 불찰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군. 내 능력은 바람을 다루는 풍술사. 공격이

오기 직전에 주위에 바람의 막을 만들었어. 물론 그 공격을 막진 못했지만 상처의 깊이는 최대한으로 줄일 수 있었지."

폰의 몸에는 피에 물든 붕대가 감겨있었다. 급하게 지혈을 했지만 지금 공격을 위해 무리하게 움직여 상처가 다시 벌어졌다.

"젠, 장. 빌어먹을 녀석이!"

나탈은 정신을 집중해 다시 천사를 움직인다. 천사는 공간을 이동해 나탈의 곁에 나타나고 폰은 빌의 옆까지 날아가 빌을

부축한다.

"헤헤. 역시 살아있을 줄 알았다. 날쌘돌이인 네가 그렇게 쉽게 죽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거든."

"네, 사부. 아직 죽을 수는 없으니까요."

"지금이 기회야. 모두 힘내자구!!"

무트의 한마디에 로아와 폰과 빌이 나탈을 둘러싸며 선다. 그러나 나탈은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웃는다.

"흐흐흐흐, 이거이거. 피가 끓는 군. 이런 적은 처음이야. 아 정말 못참겠군. 다 죽여버리겠어!!!!!!!!!!!"

악마와 천사가 나탈을 둘러싸고 빛을 낸다. 이윽고 몸의 형체가 작은 구의 빛이 된 악마와 천사는 나탈의 몸으로 들어가

융합했다. 눈부신 빛과 함께 갑옷을 입은 나탈이 나타났다. 천사와 악마의 갑옷이 섞인 육중하지만 날카롭고, 가늘지만

굵은 갑옷의 나탈이 양손에 붉은 검을 들고 서있다.

"파티를 마칠 시간이다 빌어먹을 자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