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를 열면 여기도 김치. 저기도 김치.

누가 김치의 왕국 아니랄까봐 김치스멜이 냉장고 귀퉁이부터 전해지는 것 같다.

냉장고가 미어터지고 김치맛이 안난다며 김치냉장고를 새로 장만하고

오래된 김치부터 차곡차곡 쌓은지 어엿 2년

썰어넣었던 조기도 완전히 석유가 되버리고

시디신 바다맛이 신항로를 개척하느냐만 이게 배추인가 물러터진 오이지인가

토마토로 김치를 담았나 싶은 말랑말랑한 감촉이 느껴진다.

2년이면 우꿀쭈꿀한 완두콩도 반반해진다는

멘델의 말을 의심한 나의 실수였다.

곧 김창철이 다가와 김치냉장고의 빈집이 없으면

이 물러터진 토마치도 결국 뜨거운 양은냄비에 부스러진 두부와

비계가득 돼지고기와 함께 시디신 묵은맛을 잊고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어김없이 이번년도도 김장

배추값이 가장 비싸다는 초겨울에

궂이 가장 비싼 배추를 사서

가장 비싼 마늘에 절인다.

이미 배추김치가 산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친척들 준다. 이웃들 준다. 사촌 팔촌 육촌 이러다 국회의사당까지 배달할 심보다.

다 큰 어른 여섯 들어가도 남을 거대한 목욕조에

거푸집에 시멘트 붓듯 양념장을 들이붓고는

미리 절인 배추들을 데드리프트 한다 생각하며 허리를 불사르며 나르다보면

이쪽에서는 김장. 저쪽에서는 만리장성을 쌓고있다.

들어가지도 않는 조그만 통에 배추 서른개를 쑤셔넣고나면

똑똑똑

어머? 김장하시나봐요? 우리도 이번에 김치를 담궜는데 한번 드셔보시라고

하면서 우리에게 빅엿을 먹일 이웃이 등장한다.

이것은 보이지않는 경쟁

더 많은 김치를 떠념겨야 승리한다. 때마침 우리는 김장중

어머. 방금 담은 김치인데 익기전에 빨리 드세요.

라며 입에 한가득 물려주고 한상자를 건네면 승리다.

때마침 김치냉장고용 락엔락박스를 가지고 있는 우리의 승리는 어쩌면 예견된 일.

양념 가득 먹은 김치는 퍼즐을 맞추듯 네모반듯해져 상자속에 농축되어 있을 것이다.

2차 새계대전에서 독일의 수많은 공돌이들이 갈려갔다고 했던가.

이곳에서는 수많은 며느리들이 갈려들어가고 있다.

며밀레! 며밀레!

추석에 부엌수용소에서 수용되던 며느리들은

얼마나 지났다고 또 다시 거실 한가운데에 신문지를 깔고

죄를 짓었느냥 무릎을 꿇고 노동력을 털리고있다.

이 망할 전통속에서 일년에 네번이나 갈려들어간다니.

어쩌면 지옥불반도의 여자는 행복해도

며느리는 불행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고추 떨어진다던데

내 떨어진 고추가 저기 김치속에 갈려 들어갔나보다.

김치통을 들고 아파트 곳곳을 누비며 빅엿을 건네주려하면

어디로 갔는지 문을 두드려도 아무 말 없고

방금까지 티비 소리가 새어나오던 집에서도 이내 침묵을 유지한다.

차를 타고 사촌에 육촌 팔촌집까지 다 누비고 다녀도

주는 김치보다 받는 김치가 많은 듯 모두가 하나같이 김장

혹여라도 냉장고가 비었을라

냉장고의 비열 강화를 위해

필요하지도 않은 김치로 냉장고를 메꾸고 있는 중이다.

이 많은 김치를 다 먹느냐? 그것도 아니다

조선시대야 뭐 김치에 밥만 먹었을지도 모르지만

수많은 반찬과 심지어는 젓갈과 같이 김치의 일부인 반찬들도 여러개

김치와 김치를 담굴 재료들이 상에 오르곤 한다.

게다가 아침 점심 저녘중에 아침만 먹고

점심은 밖에서 해결하고 저녘도 자주 밖에서 해결하니

이 많은 워리어들은 죄다 애물단지가 되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최후에는 양은냄비에 점점 쫄아들어가며 싱크대로 던져지는 것이다.

한국인은 고혈압?

김치가 원인이 아닐까 싶다.

지옥불반도의 배추젓갈이 없으면 밥을 먹는 것이 아니다

라고 할만큼 어쩌면 밥. 그 이상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소금에 절인 배추가.

기술의 발달인지 어느때건 배추가 나오는데

국가에서 김치를 세금으로 걷는다고 했는지

아니면 이것을 무기로 세계정복을 노리는지

망할 이맘때쯤 되면 전국의 수많은 며느리들이

먹지도 않을 김치때문에 허리가 굽고

억지로 먹은 김치때문에 추운 아침바람을 맞고 뒷목을 잡고 쓰러지곤 한다.

김치는 필요할때 담궈 먹어야 한다.

담굴 필요도 없다. 김치 공장도 있는데?

아무리 손맛이 중요하다지만

그렇게 손맛 좋아하면

이 손맛도 맞아봐라

찰싹!

아무리 손맛이 중요하다지만

어차피 손으로 재배한 쌀을 먹는 것도 아니고

하우스에서 재배한 마늘, 북태평양의 크릴새우, 허리띠 졸라맨 배추

그렇게 손맛 좋아하면

인도사람처럼 손으로 먹지 그랬냐.

신 문물과 기술은 누릴대로 누려놓고

쓸데없는데에서 전통 찾는다고

조상 핑계로 진수성찬을 누리고

그에 갈려가는 우리 어머니들은 생각 안해봤냐?

조상님들도 부엌에서 허리 뿌러져라 일하시는 며느리들 보시면

안타까워 혀를 찰거다.

시어머니는 왜 며느리만 찾나?

장인어른이 매년 4번씩 사위데리고

하루종일 용접한다면

아주 좋은 전통이네

하여튼 망할 제사로 말이 틀어졌지만

전통 고수하며 김장하는것은 시대에 뒤떨어지고

그래 김장 좋지 뭐 가족끼리 모여서 데드리프트도 하고

그런데

망할 욕조에서 하지는 말자

뒤집으면 방공호로도 쓰겠다.

부족하면 그때 만들거나 사거나 김치를 안먹거나 겉절이 만들거나 괸찮다.

남으면 큰일이다.

김치를 들고 우걱우걱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만은

옹이단지처럼 김치를 입안에 가득 머금고 뒷목잡고 쓰러지는 것은

너도 안좋고 나도 안좋고 집앞에 해자를 파는 것마냥 파기도 힘들고 매일 건너기도 힘든

사서 고생을 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 아닌가 싶다.

이번 년도는 그냥 넘어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