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전역을 앞둔 병장시절.

담배연기같은 입김을 내뿜으며 경계근무를 설때였다.

추위보다 더 괴로운건 무심히 멈춰있는 내 시계바늘과 지루함이었고, 이 지루함을 후임에게 맡겨보기로 했다.

"야 재밌는 얘기있냐"

어둠 속이라도 후임의 난처한 기색이 느껴졌다.

아. 이놈 재미없는 놈이네

그 순간. 후임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대답을 듣게되었다.

"친구랑 같은 여자를 사귄적은 있지말입니다."

호오 이새끼 ㅋㅋ 내 근무시간을 때워줄 구세주임은 분명해보였다.

"뭐?ㅋㅋ 더 자세히 얘기해봐 ㅋㅋ"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 녀석은 몇초간 침묵하더니. 피식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녀석의 그 제스처가 나에게는 얼마나 사연깊은 이야기인지 서론을 읊는것만 같았다.

어쨋든 녀석은 입대 1년전을 회상하고 있었고, 장소는 어느 단골술집이다.

대부분 사내놈이 그렇듯이 친구 몇놈과 앉아 안주를 시켜놓고 술집을 이리저리 둘러보고있었다.

정확히는 술집에 있는 여자들을 둘러보고있는거겠지.

그중에 유난히 눈에 띄는 한 그룹이 보였는데, 그쪽 테이블에 앉은 여자들과 자꾸 눈이 마주치는게 아닌가?

녀석은 조용히 티안나게 친구들에게 귀띔을 줬다.

"야. 저쪽 테이블 여자애들이 자꾸 우리 쳐다보는거 같은데?ㅋㅋㅋ"

친구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지만, 친구 중 한명이 벌떡 일어나더니 "정찰하고 옴ㅋ"

이러고선 화장실을 가는척하며 부담스럽게 맞은편 여자일행을 훑어보고는 화장실로 가버렸다.

진짜 똥싸러간건지. 설레발을 오래치는건지. 친구녀석은 5분쯤 뒤에야 화장실에서 돌아왔고 녀석이 꺼낸 한마디는 일행들의 기분을 들뜨게 했다.

"야 개이쁜데?ㅋㅋㅋ"

하지만 일행 중 그나마 현실감각있는 놈이 괜히 설레발치다가 이불킥하지말고 술이나 마시자며 분위기를 진정시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여자일행 중 한명이 이쪽을 바라보며 일어났는데, 순간 일행들사이의 묘한 긴장감을 느낄수있었다.

그 긴장감은 성큼성큼 이쪽 테이블로 다가오는 여자의 구두소리와 함께 고조되었고.

혹시나 ㅡ 역시나 ㅡ 차이나같은 뻔한전개가 아닌것은. 여자구두소리가 하필 우리테이블 앞에 멈추는순간 알수있었다.

"저희랑 합석하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