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를 처음 만난건 12년 3월 2일.

3월 1일은 빨간날이니깐 거르고 다음 날 동아리방에서 잉여처럼 누워있는데

방문을 열고 여자친구가 들어왔다.

여자가 귀한 동아리였지만 난 별로 관심 없었고

그냥 내 지갑을 갉아먹는 후배들 중 한 명이였다.

그러다 동아리 공연을 준비하면서 도와주는 과정에서

반하게 되었고, 그 후 장장 5개월 동안 열렬한 구애와 각종 사건사고 끝에

7월 24일 우리는 사귀게 되었다.

여자친구는 1학년, 나는 4학년으로 능력자니 도둑놈이니 소리도 많이 들었지만

그래도 나는 행복했고, 소박한 연애를 한 것 같다.

나는 ROTC라서 졸업 후에 군대를 가게 됐는데

내가 기차를 타고 보병학교로 갈 때, 기차역에 남은 여자친구가 펑펑 운다면서

내 동기의 여자친구가 전화로 알려줘서, 그 일로 여자친구를 엄청 놀렸던 기억이 난다.

나는 요새 태양의 후예로 한창 시끄러웠던 특전사를 갔는데

내가 갔던 부대는 운 좋게도 서울에 위치하고 있어서

전북 익산 같은 촌 구석 보다는 여건이 좋아서 여자친구를 자주 만날 수 있었고

여기저기 서울구경을 다니면서 재밌게 놀았다.

내가 연애고자라 보통 노는걸 여자친구가 다 알아봤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많이 미안하다.

그리고 평화유지군으로 레바논으로 파병을 가게 됐을 때

여자친구가 위험한거 아니냐며 엄청 걱정을 했다.

나는 파병을 위해 레바논으로, 여자친구는 워킹홀리데이로 호주로 떠났고

우리는 그렇게 1000km가 넘는 거리에서 인터넷 전화와 이메일, 페북 메신저로 연락하며

애틋하게 연애를 이어 나갔다.

파병을 복귀한 8월, 전역을 1년도 채 안남기고 만난 우리는

서로를 대견스럽고 자랑스럽게 여겼고, 우리 꼭 결혼하자며 약속했다.

한 달간의 파병휴가는 너무나 짧았다.

10월달에 낙하산을 타다가 발목 인대가 터져서 목발을 짚고 여자친구를 만나러 갔는데

지하철역에서 나를 보자마자 여자친구는 울어버렸다.

다친 것도 미안한데 울어버리니까 마음이 너무 아팠다.

2016년 6월 마침내 전역을 하고, 너무도 하고 싶었던 음악을 하기 위해서

여러가지로 많이 설쳤다.

음악으로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가는 것이 내가 음악을 하는 것을 반대하는

여자친구를 이해시키고 납득시킬만한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알바를 하고 집에 돌아와서 해가 질때까지

방음부스 안에서 연습을 했다.

여자친구가 일을 마칠 시간이면, 지친 몸을 이끌고 자전거로 여자친구를 데리러 갔다.

그 때마다 몇개씩 초콜렛이나,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것을 사갔는데

우리가 참 고달픈 연애를 하고있지만, 행복했다고 생각했다.

근데, 나만 그랬나보다.

9월 21일, 여자친구가 영어로 누군가와 끊임없이 카톡을 하길래

여자친구 몰래 카톡을 확인했다.

남자였고, 외국인이였고, 서로를 달링이나 허니 같은 애칭으로 부르며

보고싶다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였다.

여자친구는 옆에서 곤히 자고 있었고

나는 방음부스에 들어가서 한참을 울고는 다시 여자친구 옆으로와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여자친구에게 김치볶음밥을 해주고 무언가 할 말이 없는지 물어보자.

표정이 굳는다.

카톡을 다 봤다고 했더니 미안하다고 한다.

나는 괜찮다고, 내가 모자라서 이런 일이 생긴것 아니냐고, 서로 좀 더 사랑하고 아끼자고 했다.

여자친구의 얼굴이 굳었다.

미안하다고, 우린 이제 끝내야 될 때인것 같다고 했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였다.

나는 여자친구를 보내지 않으려고 졸렬하게 행동했고

입에 담지 못할 욕까지 하며 죽여버리겠다고 협박도 했다.

남는 건 후회 뿐이였다.

함께 있던 집, 함께 걷던 거리, 여자친구를 기다리던 벤치.

눈에 띄는 곳 중에서 여자친구와의 추억이 깃들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음악을 함께 하기로한 동생들과의 약속도 저버린 채.

나는 서울로 도망을 갔다.

이 후로 일이 어찌어찌 되어서

나는 온전한 내 삶을 찾았고, 여자친구도 자신의 삶을 살고 있겠지만

아직도 그 친구가 많이 그립다.

하지만 욕심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