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면 몰려오는 이 피로감도 이젠 지긋지긋하다. 길게 숨을 내뿜어보지만 답답한 가슴은 전혀 풀어지지 않고... 더 묵직해질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한숨을 내쉰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숨을 내쉴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3일전 집을 나간 엄마는 돌아오지 않고 있다. 아버지를 찾아 나가셨는데 입고 나가셨던 청재킷이 떠오른다.

아마 지금 쯤 그걸 입은채 무슨짓을 하고 계실까?

무슨짓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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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눈을 떴다. 공기가 텁텁하다. 목안은 비염으로 인해 온갖 가래와 먼지들로 가득차 있다.

우선 좀 씻어야 할듯 해서 화장실로 들어갔다. 스위치를 누르자 어슴푸레한 적등이 밝혀졌다. 앞에 놓인 큼지막한 거울에는 피곤에 찌든 나의 얼굴이 보였다.

푸석 푸석해진 피부며 헝클어진 머릿결이 거지를 연상시킨다. 신경질이 치밀어 나는 세면대로 시선을 돌렸다.

마찬가지로 지저분한 오물들이 잔뜩 눌러붙어있다.

화장실변기에는 더러운 오줌물이 가득차 있어서 그곳에 소변을 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타일도 마찬가지... 흘러내린 오줌물들로 인해 현기증이 일법한 지린내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토하는 시늉을 하는 것도 이젠 질렸다. 배가 고파 토하는 시늉도 솔직히 말해 할수없었다.

나는 기계적으로 수도꼭지를 돌렸다. 촬촬하며 물이 쏟아지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촤아아아아

두 눈을 부릅뜰 수 밖에 없는 상황이 펼쳐졌다. 개폐된 수도꼭지안에서 물이 촬촬 흘러내렸다. 맙소사... 물이 나오다니... 나오지 않은지가 벌써 5일째인데...

그러나 기쁨도 잠시 나는 다시 시무룩해졌다. 그건 고인물인 듯 했다.

한번에 촤악 쏟아진 물은 순식간에 작은 물방울로 변해버렸다.

자...잠깐 내가 뭐하는 거지? 빨리 마셔야 하는데...

나는 흘러내려가는 물들을 급히 두손으로 쓸어담았다. 지저분한 오물들이 함꼐 딸려나왔지만 그것이 물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감격스러울 뿐이었다.

"후루룩"

미친듯이 손바닥에 고인 물을 빨아들이자 시원한 감각이 온몸을 덮여온다. 얼마만에 느껴보는 상쾌함인가...

예전같으면 사이다 1병을 혼자 다 마셔도 느껴보지 못할 청량감이다. 그런데 그것을 겨우 물한모금으로 느낄수 있다니... 아이러니한 행복이었다.

물은 순식간에 동이 나고 말았다. 고작해봐야 작은 컵 분량도 돼지 않을 양이었으니까... 너무나 아쉬운 마음에 나는 세면기를 꼼꼼히 핧아먹었다.

별의 별 찝찝한 맛이 입안을 잔류하기 시작했다. 급속도로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감도 일기 시작했다.

이 더러운 걸... 미친듯이 마시다니... 거기서도 모자라 더러운 세면대에 붙은 물방울을 핧다니...

나는 손가락을 목구멍에 집어 넣었다. 미친듯이 목구멍을 간질이자 속내부에서 무언가가 치밀어 오른다.

"구웩."

그러나 헛바람만 새어나온다. 극심한 가슴통증과 함께...

너무나 저릿한 고통에 나는 미친듯이 비명을 지른다. 비단 고통스러워서만이 아니라... 이 상황이 원망스러워서 비명을 질렀다.

돌아오지 않는 가족... 배고픔... 미칠듯한 고독... 숨막힘... 어지러움... 갈증...

"씨바알!!!"

미친듯이 욕을 하며 화장실의 거울을 내리갈겼다. 금이가서 손이 쩍쩍갈라질만큼 거울을 내리쳤지만 손은 멀쩡했다.

요즘 거울은 튼튼하게 나온다는 것을 깜빡하고 있었다.

손에서 극심한 통증이 몰려오기 시작한 건 흥분이 조금씩 가라앉아갈 무렵이었다. 마치 수십마리의 개미가 피부속을 뜷고 들어와 손의 뼈를 갉아먹는 느낌이었다.

짜릿하고 따갑고 성가시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그 고통보다도 절망감이 더욱 커서 나는 입을 벌린 채 맥없이 앉아있었다. 화장실 타일위에서 스멀 스멀 올라오는

지린내도 더 이상 신경쓰이지 않았다.

먹은 것도 없는데다 힘까지 써서 그런것일까? 극도의 피로감이 몰려왔다. 뒤를 이어 서글픔이 밀려왔다.

눈물이 북받쳐오르는 순간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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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으응..."

묵직한 몸을 일으키자 온몸에서 신호를 보내온다. 죄다 고통과 빈곤의 신호였다. 근 20일간의 폐쇄생활로 허약해진 몸을 이끌고 나는 화장실에서 나왔다.

기억나는 것은 미친듯이 거울을 치다가 타일위에 널부러진 채 잤다는 것 뿐이었다. 더러운 타일위에서 잤다고 생각해도 지린내가 나지

않아 그닥 실감되지는 않았다. 코라는 게 원래 장신간 노출된 냄새는 맡지 못하는 법이다.

머릿속은 어벙벙했다. 코가 막혀서 입으로 숨을 쉬는게 고작이었던 탓도 있겠지만 탁한 공기탓도 컸다.

나는 좁아터진 방으로 들어가 슬그머니 커텐을 들췄다. 환하게 비쳐들어오는 햇살... 20일만에 처음으로 걷어보는 커텐이다.

불과 10일전만 해도 커텐이 열리기만 하면 요란한 발소리가 들려왔었으니까...

혹시나 이번에도 발소리가 들려올까 겁이 나서 나는 아주 조심스러웠다.

다행히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후우..."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나는 더욱 조심스럽게 커텐안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눈이 엄청난 고통을 호소해왔다. 장시간 어둠에 익숙해져있었던 탓이다. 꾹 참고 밖을 살피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수분이 부족해서 눈물이나 나올까 싶었더니 신기한 노릇이다.

눈물이 걷히면서 눈은 조금 시원해졌다. 그리고 앞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유리창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서서히 조금 더 먼곳의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달라진 게 있을까...


눈부신 하얀 아파트 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더 선명해져가자 그곳에 덕지 덕지 말라붙은 피들이 보였다. 203동...이라는 글자가 보이고 나자 모든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놀이터에 널린 시체들이 보였다. 꼬마아이 하나는 몸을 비틀린 채 미끄럼틀중간에 끼어있었다. 가녀린 몸은 무참히 파헤쳐져 있었다. 훤히 파헤쳐진 가슴사이로 내장

기관까지 보이는 듯 하다. 날카롭게 돋아난 가시처럼 비죽비죽 솟아있는 갈비뼈들은 기괴함을 더했다.... 구토가 치미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보다 더욱 섬뜩한 사실은...

시체처럼 놀이터에 누워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일어서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