짭짤하게 먹는 내 입에는 병원 밥의 모든 간이 약간 맹맹하였기에
준비해간 소금을 넉넉히 뿌려서 먹었다.
하루 한끼 먹는 나는 왠만해선 다 맛있게 먹는데 소금간 알맞게 맞춘
비빔밥을 맛있게 먹는 내 모습을 동생은 부러운 눈으로 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그리고 동생은 저녁부터 곧바로 일반식을 먹었다.
이날 오후에는 두 분이 더 들어오셔서 5인실에 4명의 환자와
4명의 보호자 또는 간병인이 생활 하게 됐다.
제일 나이가 많은 할머니는 병실 문 가까운 침대에,
허리 수술을 한 할머니는 바로 내 옆자리에 자리를 잡으셨다.
그리고 이때부터 고문이 시작됐다.
입원 첫날에도 병원에서 숙면할 생각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사람이 많아지니 더더욱 고통스러웠다.
잠이 들라하면 누군가가 침대의 각도를 올리거나 내리는 소리가 나고,
잠이 들라하면 머리맡 미니 냉장고가 위이이이잉 거리며 요란한
소리와 진동을 내거나,
잠이 들라하면 누군가가, 또는 내가 화장실에 가는 소리를 내서
서로의 단잠을 방해 했다.
또 보호자용 침대는 너무 좁아서 잠결에 몸을 살짝 크게 뒤척이면
갑자기 천길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느낌이 일어나서 깜짝 놀라
잠에서 깨게 했고, 옆자리 할머니가 이불을 뒤척이면 오랫동안
때를 밀지 못한 할머니의 몸에서 떨어지는 각질이 하얀 눈가루 처럼
날려서 마스크를 쓰고 잘 수 밖에 없었다.
잠을 잘 못자도 다음날 아침 7시가 되면 어김없이 아침 식사를
시작으로 환자와 보호자, 간병인들의 하루가 시작됐다.
동생과 나는 병원에 있는 동안 되도록이면 핸드폰을 보지 않기로
했다. 염증이 빨리 가라앉을 수 있도록 밥을 먹고 소화를 시키는데에만
집중해서 아직 마무리 하지 않은 부분을 꿰맬 수 있게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병원 생활은 지극히 단순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동생은 아침 밥을 먹고 나는 과일을 깎아줬다.
중간중간 간호사가 해주는 치료를 받고 남는 시간은
대부분 1층에 내려가서 병원내 사람들 모두가 산책로로 활용하고
있는 복도를 뱅글뱅글 돌며 걷기 운동을 했다.
동생 머리를 감겨주고 잠시 누워 휴식을 취하다가 점심은 동생과
함께 먹고 또 1층에 내려가서 걷고, 병실로 돌아와 치료 받고,
잠시 휴식, 동생 저녁 먹을 때 과일 깎아주고 1층에서 걷기,
나는 저녁 때 샤워하고 또 1층에서 걷기, 병실로 돌아와서 치료 받고
취침. （그러나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우리 병실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할머니는 초기 치매증상이 있는데
침대에서 떨어져서 다리가 부러졌다고 한다. 다리 수술 후에
어느 순간 정신이 돌아오셨는지 말을 잘 하기 시작했는데 그 때부터
병실 내 모두가 이전 보다 더한 고통을 느끼게 됐다.
할머니가 제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하면서 화장실에 가서
용변을 보고 싶다고 소리를 지르셨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모두가 함께 있는 공간에서 기저귀를 찬 상태로
대소변을 봐야 한다는 게 너무너무 싫으셨을테지만..
그분을 간호하기 위해 고용된 간병인도 나이 지긋한 할머니셔서
힘이 없으니 치매할머니를 화장실까지 들어서 옮겨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신이 돌아온 치매 할머니는,
'나는 세살 어린애가 아니기 때문에 기저귀에 대소변을 볼 수 없다!'
간병인 할머니는,
'나는 기저귀 갈아주려고 여기에 온 사람이니 나를 믿고 볼일을 봐라'
모두가 간병인 할머니를 마음 속으로 응원하는 상태 였지만
치매 할머니의 실랑이는 밤이고 낮이고 계속 됐다.
뜻대로 안 되니 고성을 지르고, 늙으면 죽어야 한다며 한탄하고,
분에 못이겨 자신을 때리기도 했다.
'차라리 제정신이 아닌 게 더 낫지 않겠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노년에 다리가 부러져 움직이지 못하게 돼서 여러 사람 앞에서
기저귀에 용변을 봐야 하는 일은 한 인간을 처절하게 만들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우면서도 큰 두려움을 느끼게 했는데,
아마도 내 미래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오전에 걷기 운동을 하다가 이제 점심 때가 돼서 병실에
돌아왔을 때 치매 할머니가 참다참다 결국 대변을 보셨는지
병실엔 대변 냄새가 가득했다.
'할머니가 드디어 대변을 보셨구나 다행이다.' 싶은 마음과
장에 오래 정체되어 있던 대변에서 나는 냄새는 꽤 충격적이어서
'윽, 어떻게 점심 먹지? 점심 먹기 싫어졌어. 식사 때는 피해서 대변
보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서로 충돌했다.
'하지만 그게 조절 가능하면 환자가 아니지..' 라는 마음을 일으켜서
불만스런 마음을 곧 잠재웠다. 간병인 할머니는 대신 미안해하시며
창문들을 활짝 열고 페이브리즈를 뿌렸고 냄새는 금새 사라졌다.
어떤 때는 식사 중에 대변 냄새가 병실을 가득 메우기도 했는데
좀 전까지도 맛과 향을 음미하며 먹던 밥이 역겹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무상한것이지' 라는 마음을 일으키니
계속 먹게 됐다. 좋은 냄새와 맛, 식감, 색감을 내는 음식은 입에
들어가면 잘게 부숴지고 식도를 지나 위장, 소장, 대장을 지나면서
색이 변하고 질감이 변하고 냄새가 변하면서 마침내 항문을 통해
밖으로 배출 되는데 이게 바로 음식이 가진 무상함인거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었더니 역겨움이 금새 사라지게 된것이다.
나 뿐만 아니라 병실내 모든 사람들이 준비 된 음식을 모두 다
끝까지 먹었다. 그러나 이후에 치매 할머니는 대변을 보지 않으려고
자주 음식을 거부했는데 그 모습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아마도 내가 몸과 마음을 관찰하지 않았다면 이번에 병원 생활을
했을 때 신경쇠약에 걸려서 동생따라 나도 입원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나는 감각이 예민한 인간이었는데 많이 두루뭉술해진 것.
생활 방식이 다른 인간들이 한 방에 여럿 모여있으면 스트레스는
자연스레 일어날 수 밖에 없고, 거기다 병원은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보니 병실이 마치 고문실 같았다.
그래도 시간이 지날 수록 치매 할머니는 조금씩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시는 것 같았고 난동에 가까운 행동도 많이 잠잠해지셔서
병실내 사람들도 좀 더 잠을 잘 자게 됐다.
어떤 날은 내 옆 자리 할머니께서 내가 식사 때 사과 깎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때부터 사과가 드시고 싶으셨나보다.
본인 딸이 왔을 때 소손소곤 얘기 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어와서
한 개 남아있던 사과를 드렸더니 크게 감격하시며 감사하다고
말씀 하시는 모습에 내가 더 놀랐었고 뿌듯했다.
이후에 엄마와 언니에게 부탁해서 사과를 몇 번 더 받게 됐을 때
옆자리 할머니도 챙겨 드렸는데 그때마다 항상 크게 고마워하셨다.
할머니는 젊었을 때 사과 농사를 짓던 분이셨다고 했다.
내가 두 번째로 사과를 드렸을 때 따님이 자기는 지금 당장
줄게 없다며 미안해 하다가 뭐라도 주고 싶으셨는지
방금 엄마랑 산책하며 줏어온 나뭇잎과 열매를 급하게 선물로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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