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마술이 직업인 친구 집에 혼자 놀러갔었다.
이 잘생긴 독신 청년은 일류대학교 공대를 자퇴하고 몇 개의
별 직업 같지도 않은 직업들을 전전하다가 그중 가장 희한한 직업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나이가 들다 보니 가끔씩, 돌아가신 아버지가 신장투석만큼 싫어하던
작가가 됐다는 게 불효로 느껴지곤 했다. 그런데 저 마술사 친구를
만나게 된 뒤로는 고맙게도 그런 죄책감이 싹 가셨다.
마술사는 요리를 마술만큼 잘한다. 식사를 마친 나는 음식들이
놓여 있던 낮고 긴 직사각형의 식탁이 식탁이 아니라,
마술공연에 사용하는 관（棺）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순간 공동묘지에서 결혼식을 한 기분이 들었다.
마술사는 좋은 미소를 가졌다. 시 쓰는 것을 배우고 싶다고 하길래
웬만하면 그러지 말라고 했다. 재능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
굳이 왜 그럴까 싶어서였다. 마술사에게 마술 말고 대체 뭐가 더
필요하단 말인가. 요술쟁이에게 요술보다 더한 시가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결핍이 많아 세상을 두리번거리는 짓은 이미 거리에
비둘기들만큼 많은 시인들이면 충분하다. 마술사는 지나가 버린
나의 청춘에 대해 궁금해했다. 나는 단 하루도 어제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견디기 힘든 일들이 많았지만, 꼭 그래서만은 아니다.
과거를 다시 산다는 것은, 물론 그럴 수도 없지만, 설혹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너무 큰 반칙이며, 무엇보다 인생이란 두 번 살 정도로
가치가 있지는 않다. 인생은 극복하는 게 아니라 견디는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임해야 그나마 뭔가를 해낼 수 있고, 해낸 다음에도
교만해지지 않을 수 있다. 무의미하다고 아예 정하고 살아야
불행하지 않을 수 있다. 행복은 덫이고 함정이다.
행복에 중독되면, 행복을 투석하다가 죽게 된다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장래 희망이 '화성이주'라는 자들을 가끔 본다.
어리석은 잘난 척이다.
미친 것들.
지구에 사는 것도 외롭고 짜증나는데. 화성엔 왜 가나.
마술사는 깊은 무표정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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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과 같은 사람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치, 지구에서 사는 것도 고통스러운데 화성은 다를 거라고 생각하나?
화성에 이주 하려면 여러가지 준비하며 분주히 움직여야 하니
목표가 생겨서 활력과 설레임은 줄 수 있겠지.
그런데 지구에서 만족하지 못하면 화성에서도 만족하기 힘들거야.
척박하고 황량한 붉은 화성 보다 푸르른 지구가 낫다.
오늘도 난 지구에서 살아간다.
.... 그렇다고 또 다시 태어나고 싶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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