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 쓰레기가 식탁에 있지?"

나는 퇴근 후 식탁에 놓인 투명 플라스틱 상자를 보고, 혼자 중얼거린다. 얼마 뒤 도어록에서 소리가 난다.

[띠리링]

첫째다.
"아빠! 학교에서 애벌레 가져왔어, 이거 봐봐"
"아, 애벌레구나. 아빠는 뭔 쓰레긴가 했지"
아들 말에 나는 머쓱해진다.

나는 자세히 투명한 상자를 본다. 쓰레기인 줄 알았던 배춧잎 사이에 조그만 꼬물이가 움직인다. 밝고 이쁜 초록색의 꼬물이. 구더기라면 징그럽겠지만, 꼬물이는 귀여웠다. 초록색 유니폼을 입은 긴 밥알 같다.

나는 조심스럽게 관찰을 한다.
[꼬물꼬물-]
안간힘을 쓰며 플라스틱 상자 벽을 타고 위로 올라간다.
[꼬물꼬물-]
이 작은 것에 뭐라고 애정이 간다.

"아들, 이건 무슨 크면 머가 돼?"
"배추흰나비"

[배추흰나비]
나는 핸드폰으로 검색해 본다. 지금까지 키우다 죽은 버들붕어, 베타 생각난다. 사육 방법을 공부한다. 다행히 키우기 쉽다고 하니 안심이 된다.

다음 날 퇴근 후 꼬물이를 보았다. 어라? 꼬물이가 커졌다.
‘하루 사이에 금방 크네’
[띠리링]
오늘도 어김없는 도어록 소리. 놀이터에서 놀다온 첫째다.

”아빠! 아빠! 선생님이 한 마리 더 줬어!”
“아 그래? 가만히 보자. 아 다른 애벌레였구나"

자세히 보니 좀 더 덩치가 큰 다른 꼬물이다.
두 마리의 애벌레가 안간힘을 쓰는 게 귀엽다. 그래. 꼬물이는 며칠 뒤에 번데기가 되고, 흰나비가 되어서 하늘을 휠 휠 날것이다. 아직은 미약하나마 꼬물꼬물 될 뿐이지만 말이다. 다음날, 결국 일이 터졌다.

”아빠! 아빠! 애벌레들이 다 사라졌어”
“어? 그럴 리가”

나는 플라스틱 사육 통을 자세히 보았다. 천장에 미세하게 공간이 열렸다. 그 틈으로 꼬물이들이 탈출했다.

’본능적으로 도망친 건가?‘

최근에 러닝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느려도 시간이 더해지면 멀리 간다. 그 말은 탈출한지 오래되어 꼬물이를 찾을 수 없다는 말이다. 작아서 찾기도 어렵고, 꼬물이 자신도 어디로 갈지도 모른다. 그녀석들은 본능에 맞춰서 도망, 아니, 움직인다. 그걸 내가 어떻게 찾아?

아이들과 아일랜드 식탁을 뒤져본다. 무의미한 행동. 우리는 찾기를 포기한다. 영화 쇼생크 탈출처럼, 꼬물이는 하늘을 향해 없던 팔도 펼치면서 자유를 만낏하겠지.

꼬물이를 보니 내 아이들 같다. 아이들은 위험한지 모르고 하고 싶은 것이 많다. 꼬물이도 마찬가지다. 탈출하면 죽을 수도 있음을 몰랐겠지. 알았다면 그것이 애벌레 인가? 마찬가지다. 알고 있으면 그건 [아이] 가 아니라 [어른] 이지.

꼬물이는 어두운 곳에서 죽어가고 있을 것이다. 아니, 이미 죽었을 지도 모른다. 플라스틱 사육 통을 제대로 막았다면 꼬물이는 지금 꼬물대고 있겠지. 꼬물이가 작은 만큼 상실감도 작다. 첫째도 크게 마음을 쓰지 않는다. 그렇게 꼬물이는 잊혀 간다.

아이들이 크면, 집은 꼬물이 플라스틱사육장 처럼 느껴지겠지. 나가고 싶을꺼야. 꼬물이같이 작은 틈을 찾아서 [독립]아니 [탈출] 하겠지.
다만, 준비없이 본능에 따라간 꼬물이와 다르게, 아이들은 번데기가 되고 멋진 두날개를 맞이하여 세상을 멋지게 날길 바랄뿐이다.

나는 희망한다. 꼬물이가 죽지 않고 흰나비가 되기를. 죽음이 아닌 번데기가 되길 바란다. 새하얀 날갯짓을 하면서 거실에서 날고 있기를. 그리고 나에게 다가와 말한다.

“창문을 열어주세요”

나는 기쁨 마음으로 창문을 열어줄 것이다.
사육장 플라스틱통보다 더 큰 문으로, 세상으로 나아가는 창문을. 나는 최대한 경쾌하게 열것이다. 꼬물이가 아름다운 하늘을 휠 휠 날아갔으면 한다.

그랬으면 좋겠다.

R.I.P 꼬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