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인지 그 곳은 어릴때부터 뭔가 마냥 동경의 장소였어. 거기선 행복했고, 걱정없이 매일매일 놀았고... 그래서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꼭 거기서 다시 살아야지 했거든. 무리해서 통장 모아둔거 다 털어서 물가가 싸지도 않은 그 나라에 다시 간것도 그때문이었어 ㅋㅋ 요즘 좀 힘들어서, 거기가면 그냥 다 괜찮고 행복해질 것 같아서.

실제로 비행기에서 내려서 공항버스 타고, 내려서 딱 땅을 밟을때는 너무 행복했다. 늦은시간에 와서 호텔 체크인하고 먹을 것 좀 사서 호텔에서 먹고 잠들면서, 그때까지는 진짜 너무너무 행복하고 좋았어.

근데 딱 그다음날, 내가 살았던 동네로 갔거든? 가서 내가 좋아하던 음식점도 가고 학교구경도 하고 사진도 실컷 찍어야지, 기대감에 부풀어서. 근데 내려보니까 너무 다른거 있지. 동네 구석구석 돌아가는데, 내 뇌가 기억하고 그래서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재생되는 모습이랑 진짜 눈앞에 펼쳐진 모습이 너무 다르더라고. 그냥 근처에서 늘 먹던 국수 먹으면서 에너지 회복하고 다시 힘내서 도서관도 좀 들렀다가 천천히 학교쪽으로 걸어갔어. 사실 내가 그렇게 여유롭게 여행 다닌거 처음이었다 ㅋㅋ 근데 그땐 그냥 동네를 걷는듯한 그 느낌을 느끼고 싶어서, 그렇게 크지 않은 동네였는데도 하루종일 돌아다녔어.

익숙한 골목길을 지나 놀이터에서 커피 뽑고 쉬면서 애기들 나오는거 보는데, 우리 학교는 쌤들이 애들 마중나오거든, 초딩까진.

근데 유치원부터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까지...

어쩌면 한 분도 내가 아는 분이 없더라.

한분쯤은 계실 줄 알았거든. 사실 한국온지도 거의 10년 됐으니까, 다른건 포기해도 쌤들은 계실 줄 알았어 ㅋㅋ 사립학교였으니까. 근데 진짜 어쩜 딱 한분도 없으시더라.

그거보니까 진짜 허탈하고 슬프더라고. 그래서 그냥 나와서 동네빵집이나 가려고했는데, 내가 제일 좋아하던 설탕도넛이랑 깨찰빵 팔던 그 빵집은 부동산이 됐고. 건너편에 새로 빵집 생겼길래 가봤는데, 맛은 어릴때먹던 그 빵집보다 못하더라.

몇개 골랐는데 점점 식욕이 떨어져서, 마지막 빵은 거의 입에 욱여넣고 기계적으로 씹었어 ㅋㅋ 

근데 은근 배부르길래 소화시킬겸 학교 주변 한바퀴 도는데, 내가 맨날 생활하던 구간이라 그런지 변화가 딱 보이더라고. 

오케스트라 처음 들어갈때 배우던 음악학원은 악기점으로 바뀌고, 비올때마다 차마 밑에서 비 피하던 뷰티샵은 학원으로 바뀌고. 어릴땐 그게 그렇게 크고 높아보였거든? 지금보니까 비 맞지 말라고 아예 가게들보다 조금 튀어나오게 지은 천장이, 다 너무 낮더라.

집 사다 뷰티샵 근무하는 예쁜 데스크 언니들이랑 눈마주치면 언니들이 눈웃음지어주고 그랬는데. 그때는 그 언니들이랑 그 데스크가 너무 높게 느껴졌는데. 지금보니까 기껏해야 내 가슴께쯤 오려냐?

여튼 뭔가 허탈하고 씁쓸해서 걸어가는데, 내가 어릴때 너무너무 좋아해서 일주일에 세번은 다니던 가게가 완전히 바뀐거보고 진짜 놀랐다...

예전엔 가격도 분위기도 그냥 편안한 현지식당이었는데, 이젠 메뉴판까지 밖에 내놓고 파스텔톤으로 바뀌었더라고.

아기자기하게 이쁜 메뉴판을 그냥 빤히 보는데, 안에서 직원이 나오더니 드시고 가시라 하더라고.

근데 내 기억 속 그 식당은 안그랬거든.

직원들도 그런 이쁘고 젊은 여성분들이 아니라 퉁명스러운 아주머니에, 하늘색이랑 하얀색이 섞인 알록달록 직원복이 아니라 그냥 검은색에 빨간색으로 테두리만 포인트 들어간 앞치마+검은옷이 국룰이었어.

메뉴판도 영어 별로 없이 직관적으로 음식사진이랑 이름, 가격이 끝이었는데.

이젠 뭔 음식사진도 없이 영어로 된 메뉴 이름에, 두배는 뛴 가격에...

그거보니까 뭔가 허무하더라 그냥.

직원분이 내가 아무말않고 있으니까 뭐 찾으시는 메뉴라도 있으시냐 물어보시길래, 일단은 아니라하고 다시 놀이터로 돌아왔음.

놀이터에 앉아서 쭈욱 둘러보는데, 그냥 다 바뀌었더라고...

엄마가 좋아하던 음식집, 아빠랑 오빠가 좋아한 레스토랑, 내가 좋아한 마사지샵.

다 없어지고 새로 바뀌었더라.

내가 좋아하는 웹툰 중에 그런 구절이 있었거든. '나는 여기 고여있는데 너는 하염없이 흘러가는구나' 였나?

여튼 그건 연인에게 한 얘기긴 하지만 ㅋㅋ 뭔가 느낌이 비슷했어.

내 기억 속 이 나라는 이렇지 않았는데?

내가 행복하게 일상을 누리던 곳은 이렇지 않았는데.

그전까지는 사실 그나라 얘기만 얼핏 들려도 설레고 그랬는데 한순간에 낱설게 느껴지더라.

내가 알던 곳이랑 같은 곳이 맞나? 싶어서.

내가 보고 싶던건 어릴적 내가 사랑한 동네의 풍경인데, 여긴 그냥 위치만 같지 완전 다른 모습이니까 허무하고 쓸쓸하더라고.

그전까지는 그 동네가 이유없이 너무 좋았는데, 한순간에 낯설고 불편해졌어.

이럴거면 차라리 오지 말걸 싶기도 했어 ㅋㅋ

그냥 아, 내 어린시절을 보낸 동네는 그냥 이름만 유지한채로 다른 아이의 추억 속 어린시절로서 기억되고 있구나, 싶은 느낌?

저녁에는 아까 그 식당을 다시 갔는데, 직원이 알은체 하면서 되게 사근사근하게 구시더라.

예전 그 식당은 너무 퉁명스럽게 주문받고 음식주고 돈받고가 끝이었는데, 여긴 완전 친절하고 서비스용 미소까지 지녔구나 싶어서, 진짜 다른곳이구나 싶더라.

그 다음 며칠을 사실 그렇게 기분이 좋지 못해서, 결국 이번 여행은 기대에 비해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어.

그냥 여행하는 내내 여기가 이렇게 시시한 나라였나? 싶더라고. 그전까진 아무 이유없이 사랑했는데, 그만한 나라가 아니더라.

아무튼 뭐든 변하는건 슬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