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


부모님은 뿌린 걸 거둬야 한다고 했다. 몇 번의 장례식과 결혼식에서 종종 그런 말들을 듣곤 했다. 그런데 어떡하나. 난 결혼을 못 할 거고, 내 장례식은 치뤄지지 않길 바란다.

나의 실패와 불안이 당신들의 부끄러움이나 절망감이 아니길 바랬다. 마찬가지로 나의 성취가 당신들의 기쁨이 되지 않았으면 했다.

긴 문장이 잘 안 읽힌다. 아마 뇌의 어떤 부분이 고장난 거겠지만 진료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원인이 우울에 있다면 치료받을 생각이 없다.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얻게 될 행복감과, 죽음으로서 겪지 않아도 될 절망감과 우울함들을 저울질하기 시작했다. 내 안에서 그 저울은 늘 한 쪽으로 기울어 있었고 점점 그 생각은 확신이 되어가고 있다. 중요한 건 나니까.

세상에 자살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 어떻게 그들은 그렇게 다 살만할 수 있으며, 만약 그렇다면 이 세상에 적응하지 못 한 나는 도태되는 게 당연하다.

구체적인 시기와 방법이 정해졌다. 남은 일은, 근근이 먹고 살 걱정을 하는 것이지만 먼 미래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사후의 처리를 하는 사람들에게 그리 많은 힘듦이 없었으면 하는 작은 걱정.

남들의 성취는 대단해 보였고, 내가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공부가 제일 쉬웠네, 몸 만드는 게 제일 쉽네 하는 말들은 그 쉬운 공부도 못 하고, 그 쉬운 운동도 못하는 나에 대한 조롱으로 들렸다.

당신 잘못이 아니며 괜찮다는 말들은 병원 진료실 안에서만 둥둥 떠다닐 뿐이었다. 진료실 밖에서의 모든 공간과 상황에선 모두가 날 탓했다. 괜찮지 않았다. 내가 한 말과 행동은 모두 화살이 되어 나를 찔렀고 내 실수와 잘못들은 계속 날 고립시켰다. 진료식 밖의 근로계약서나 급여명세서, 임대차계약서같은 서류들과 내가 사람들에게 듣는 말들은, 적어도 일로써 만난 사람들의 말들은 하나도 친절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업무 외에 만난 사람들은 친절했느냐 하면, 늘 불친절한 사람들은 자주 만날 수밖에 없었고, 내게 친절했던 사람들과의 만남은 충분치 않았다. 위로랍시고 건네는 말들은 신기루였다. 마치 모든 사람이 ‘자살은 나쁜 짓이야’라고 세뇌당한 것 같다. 자살이 왜 나빠? 자살이 내게 행복일지 불행일지 누가 감히 평가할 것인가? 평소엔 나에게 그토록 무관심한 국가와 사회와 사람들이, 알량한 도덕적 우월감같은 걸로 또 내 인생을 재단할 것 아닌가?

하루에 서른여섯명 꼴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고 했다. 이 좁은 땅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도록 사람들은 그 이유도 정확히 모른다. 아니면 알면서 모른 척하는 건가.

나는 무능력한 사람이다. 내 삶은 부러움과 열등감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만족을 몰랐고 행복도 몰랐다. 근데 우울함은 알았다. 내가 삶에서 큰 의미를 찾지 못할 것도 알았다. 나의 안전을 누구로부터도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 나 하나 없다고 신경 쓸 사람 아무도 없다는 것, 내가 바라는 세상은 애저녁에 존재할 수조차 없고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무언가를 실제로 하는 사람들도 없다는 것들은 잘 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나의 죽음이 행복일 수도 있겠다.

다 무슨 의미가 있나.
무엇 때문에 살아 있나.
이토록 약하고 이기적이고 능력없고 무쓸모인 나는
어디에서 답을 찾을 수 있나.

긴 잠에 들고 나면 걱정거리가 하나도 없겠지. 그게 내가 바라던 세상 아닌가. 저는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제 행복을 찾아 떠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