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지만 너무 억울해서
지금도 연관되는 것을 보거나 들으면
가끔 떠오르는 일

1. 망가진 콘센트

나랑 동생이 자던 작은방
콘센트가 망가져 있었다.
무슨 일일까?

벽지나 장판, 집안 곳곳에
작은 흠도 불같이 화내시던 부친은
망가진 콘센트의 범인으로 나를 지목했다.

근거는 없었다.
불같이 화부터 내는 그 성격은
어린 나로서는 쭈삣쭈삣할 수 밖에 없는 성정이셨다.

거스리는 것을 보고나면
불같이 화를 내고
다른 것을 던지고 뿌수고
모친이든, 우리 형제든
누구를 때려서 분을 밖으로 풀어야 끝나셨는데

작은방에 살고 있는 내가
그 대상이 된 것이다.

나는 힘이 없었지만 고분고분 하지 않았다.
부친이 그른 말을 하면 그르다 대꾸했고,
부친이 술주정으로 모친을 때리면 말리다가 같이 맞았다.

내가 하지 않은 일로 내가 혼나고 맞는데
당연히 나는 그가 보기에 지랄발광하듯
내 결백을 주장했다.

돌아오는 것은 귀싸대기 세례
나는 너무 억울했다.
누가 망가뜨린 걸까?

코드가 꼽혀있었는데 누가 문열다 걸려서 그리 된걸까?
거짓말 하고 대든다고 더 혼나고 맞으면서도
계속 생각했다.

나 아니면 내 동생인가?
실수든 장난이든 그 범인이
내 동생일 수 있다는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진 못했다.
그러면 폭력이 동생을 향할테니까

마흔을 앞두고 있지만
부친의 폭언과 폭행 앞에서는
그것을 제지하지 못 한다는 것에
엄청난 무력감을 느낀다.

2. 누가 친 건가

중학교 교실은 쉬는시간 먼지가 자욱했다.
애들은 뛰고 엉키고 구르고
내성적이고 잘 안 움직이는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되었다.

교무실과 가까워써
쉬는시간이라도 너무 떠들면
혼나거나 단체기합 받을 수도 있는데

힘이 쎄고 구리빛에 일찍 몸이 다부졌던 애가 있었다.
힘이 쎄지만 탈선을 하거나 하는 불량청소년은 아니었고
순박한 느낌의 아이였다. A라고 하자.

단짝이라 할 만큼 친하지는 않았지만
말은 자주 섞는 정도였다.

A는 교실 뒷편에
레슬링 비슷하게 아이들과 엉켜 놀고 있었다.

한반에 50명 가까이 였는데
좁은 교실 뒷편에 15~20명 정도가 엉키고 있었다.

청소도구 때문인지, 게시판 관리 때문인지
그 뒷쪽에 있던 나는 그것을 보았다.

다부진 A가 다른 애과 투닥이며 노는 동안
다른 어떤 손이 쑥 나와서
A의 엉덩이를 찰싹 때리고 도망갔다.

A는 뒤돌아서자 마자
눈이 마주친 바로 뒤의 나에게
뭐라고 따졌다.

난 내가 아니라고
어버버 하며 웃으며 아니라고 했지만

A는 나더러 왜 거짓말을 하느냐며
내 뺨을 후려쳤다.

난 힘이 없으니 되받아치지 못했다.

다시 내가 아니라고 말했으나
믿어주질 않았다.

A는 주사를 맞은 자리를
맞아서 화가 났다고 말하면서도
끝내 나를 거짓말쟁이라고 단정지었다.

그 뒤로 나는 그애와는 말을 섞지 않았다.
그 학년 남은 몇달 내도록

힘쎄고 순박하고 애는 착한 A였는데
그렇게 오해하고 말이 안 통하는 일을 겪고
폭행까지 당하고 나니 오만정 뚝떨이엇다.

.
.

수십년 살아오면서
군대생활이든 사회생활이든
이 국가에서든
나뿐 아니라 누구나
억울한 일들도 많이 겪는다.

삶에 몰아부치는 억울한 일들에 비하면
위의 두 사건은
참 사소한 일들인데
지금도 그 일이 떠오르면
그때 쳐 맞은게 억울한 기분이 선명하다.

억울하거나 힘든일에
충분히 무뎌진 어른과 달리
무뎌지지 못 했던

유리조각처럼 민감했던
어릴 때의 기억이라서 그런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