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 우리는 진심으로 해장국을 먹고 있었다.

“여기 순댓국에 들깨 좀 더 주세요!”

소림 청년은 아주 공손하게 말하면서도, 왼손 검지에 ‘혈염지（血炎指）’ 내공을 몰아넣고 있었다. 들깨통이 안 열려서다.

“이게… 너무 세게 닫았네.”

철제 들깨통이 폭☆발했다.

주인 아저씨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야이씨 또 무공 썼냐? 정파라고 다인 줄 알아?! 여기 마라탕집이랑 공동인데 냄새 섞인다고!”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역시 이 집은 화산파 본진이었다.

“화산파… 아직 안 망했네?”

“조용히 해. 임대료 밀려서 요즘 나 혼자 도장 관리하는데, 마라탕 사장님이 내 사형이야.”

"진짜 사형이요?"

"형이면서 스승이야. 그러니까 사형."

복잡한 무공 서열 관계를 듣던 내 천마신공이 속에서 울렁거렸다.

그때였다.

딸랑–
문이 열리며, 정장을 입은 여인이 들어왔다. 그 눈빛, 그 자세… 무림 고수다.

"어라, 혹시 진상 손님?"

아니었다.

그 여인이 무심히 말한다.

“여기… 천마, 계십니까?”

순간 정적. 소림 청년은 소스 툭 흘리고, 화산파 사형은 육수 끓이던 국자를 떨어뜨렸고, 나는… 숟가락을 떨어뜨렸다.

탕.

그 소리가 이렇게 쎌 줄은 몰랐다.

“내가 천마다.”

내가 말했다.

왜냐면 그때 천마신공이 또 체해서, 장이 뒤틀리고 있었거든.

“아뇨. 그쪽 말고요. 진짜 천마요.”

“…그럼 나 말고 누가 있는데?”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내 얼굴을 스캔했다.
그리고 아주 정중하게 말했다.

“천마, 서울지부장님. 청와대에서 연락 왔습니다.”

"...씨익."

내가 웃었다.

그날 이후, 나는 서울시 무림담당 공무원으로 채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