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그날도 나는 대체로 미쳐 있었다
나는 지금 강남역 근처의 카페에서 아메리카노에 빨대를 꽂은 채, 협객이 되기를 꿈꾸고 있다.

"그쪽, 자리 비었어요?"

"······."

머리카락을 민 청년이 내 맞은편에 앉았다. 저건 무림에서 말하는 ‘삭발한 내공 고수’의 기본 조건이다. 하지만 저 청년은 머리를 밀었을 뿐, 아메리카노에 연유를 두 번 넣고 있었다.

"혹시 소림이세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림은 원래 라떼를 좋아하지 않나요?"

"요즘은 입맛이 좀 변했어요. 유행을 좀 타는 편이라."

나는 그 말을 듣고 커피를 뿜을 뻔했다. 요즘 소림은 트렌드를 탄단다. 무림도 자본주의 앞에서는 휘둘리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 청년이 조용히 내 손목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당신, 천마신공 하죠?"

"······어떻게 알았죠?"

"기운이 비틀렸어요. 그건 천마신공 3장 7절, 오야호천기（五夜呼天氣）의 부작용이죠."

어이가 없었다. 나는 어젯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먹고 체한 것뿐이었다.

"뭔 소리야, 어제 참치마요 먹고 체했어."

"······그것도 가능성 있습니다. 저도 불닭김밥 먹고 장파괴권 폭주한 적 있었거든요."

그 순간, 카페의 유리창이 산산조각 났다. 진짜다.

밖에서는 누가 쿵푸로 전기버스를 세로로 반 갈라버렸다.

"저기, 소림 씨."

"왜요?"

"혹시 오늘 대사 한 줄 없이 죽는 병풍 역할은 아니겠죠?"

"그럴 리가요."

소림 청년은 가방에서 뭘 꺼냈다. 전기충격기였다. 아니, 왜 충격기를 무기로 쓰는가 했더니, 겉에 ‘법보（法寶） 인증’ 마크가 박혀 있었다. 신도시 무림에서는 경찰청 인증 받은 전자기기도 ‘법보’가 되는 모양이다.

그는 허공을 향해 소리쳤다.

"네놈은 천년전, 삼도천계에서 봉인된 자식이냐?!"

"아니, 전 저기··· 롯데리아 알바인데요?"

그 목소리는 전기버스를 반으로 쪼갠 사내였다.

"지각해서 뛰었더니 버스가..."

아무리 봐도 무공과 관련 없는 사고였다.

하지만 이미 카페 유리는 깨졌고, 내 천마신공은 뱃속에서 응어리가 되어 요동치고 있었다. 이럴 땐, 정석대로 행동해야 한다.

"···소림 씨."

"왜요?"

"우리 그냥 저녁이나 먹으러 갈까요?"

"좋아요. 근처에 해장국 맛집 있어요. 아, 근데 그 집 사장님도 낙양검문 출신이라 가게 입구에 검이 꽂혀 있어요."

그렇게 우리는 강남의 밤거리로 나섰다.

천마신공은 배탈에, 소림의 법보는 배터리가 부족해 꺼졌고, 전기버스는 보험 처리가 안 됐으며, 낙양검문 사장은 정수리로 된장의 기운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이게 무림이다.

그리고 무림은, 오늘도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조용히 미쳐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