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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신가!
내 본명은 밝히지 않겠다. 내 활동명은 전묘대. '전투 묘사의 대가' 라는 뜻이다. 만화, 영화, 애니메이션, 동영상까지, 묘사의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오직 글로써 묘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른 모든 전묘가（전투묘사가）들을 제치고 이 분야 탑에 오를 수 있었다. 어째서일까? 남들은 억측과 예상들을 집어넣어 묘사하지만 나는 오로지 있었던 일 그대로 묘사하기 때문이다. 오직 진실을 기반으로 한 나의 묘사 때문에 많은 이들의 내가 쓴 배틀 레전즈를 읽는다. 백문이 불여일견. 오늘은 내가 묘사했던 배틀레전드를 하나 보여주려한다.
#1. 안드로이드 VS 괴우주생물
우주 : 페이탄 분기 평행 우주 1013번
시기 : 우주력 21,911 년도
장소 : 발탄 은하계 전투 콜로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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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은 영양분을 섭취한다. 입과 같은 기관으로 다른 생명을 분해하여 에너지를 얻는다. 식탐에 대한 잘못된 설계는 불필요한 영양까지 입안으로 밀어 넣게 만들어, 배설이라는 행위가 필요하게 만들었다.
동물들은 다른 생명체를 먹는다. 그것들은 먹으면서도 먹히지 않기 위해 진화한다. 그 중 일부의 선택된 종들만이 지능을 높이고, 사회화를 이루는 것이 가장 안전하게 먹으면서 먹히지 않는 것임을 깨닫는다. 이 지능 종들은 사회를 이루면서도 그들 안에 내재한 원초적 폭력성을 결코 잊지 못한다. 사회는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유전자는 알고 있는 것이다. 사회가 붕괴 될 때, 그들은 그 폭력성이 다시 필요해질 것이다.
콜로세움을 가득 찬 우주인들의 함성이 들린다. 우주의 수많은 지능 생명체 중에서 어떤 개체가 가장 강한가에 대한 질문은 그들의 유전자에 새겨진 내제적 폭력성을 충족시켜줄 충분한 오락이 되어준다. 강해져야 한다는 강박감과 먹히면 안 된다는 공포감의 충돌이 해소되는 창구이다.
전사들이 부딪힌다. 무기를 휘두르고 막고 피한다.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구경꾼들은 열광한다. 그 치열한 전투가 이루어지는 콜로세움 한 편에, 도저히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나무 한 그루가 있다. 그 몰골은 참담하다. 칼과 도끼 자국, 총탄 자국에 구멍이 생겼고, 그 구멍들을 스스로 수복해간 흔적들이 남아있다.
식물은 뿌리를 이용하여, 주변의 원소들을 흡수한다. 그것들을 재료로 필요한 기관을 만들어 낸다. 그 외에는 태양 빛으로 부터 에너지를 흡수한다. 영양분의 흡수는 배설물을 배출해야 하는 만큼 과하지 않다.
또한 식물들은 불모지에서 태어나는 것을 꺼리지 않는 개척자이다. 아무리 척박한 환경에서라도, 시도한다. 자라기를 거부하지 않는다. 씨앗은 아무리 얇은 바위틈 안에 빠지더라도 그 틈새로 뿌리를 내리고, 그 틈새로 이파리를 내민다. 그리고 마침내 그 바위들을 비집고 밀어낸다.
당연히, 식물들도 경쟁한다. 더 멀리 퍼진 뿌리를 가진 개체가 더 넓은 땅의 영양을 흡수하고, 더 높이 솟은 개체가 더 많은 일조권을 가진다. 주위의 다른 식물들을 말려서 죽이고, 햇빛을 가려서 죽인다. 그리고 그 영양을 흡수한다. 그러나 그 대상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여 자신에게 해를 끼칠 경우에 제한 된다. 생존을 위협하지 않는 대상에 대해서, 배제보다 공존을 선호한다.
아주 오래전, 경기가 없는 비시즌 기간의 어느 한산한 날, 이름 모를 미지의 행성을 탐험했던 모험가의 옷자락에 묻어 있던 한 식물의 씨앗이 바람을 타고 날아가 이 콜로세움 안에 자리를 잡았다. 그 식물은 콜로세움의 긴 역사 동안이나, 그곳에 쌓여오고 파묻혀 온 거름들, 피와 뼛조각과 신체 일부 같은 것들을 양분으로 자리를 잡는다.
시즌이 시작되고, 경기장 안에서 싹을 핀 작은 나무를 본 우주인들은, 불모지의 개척자이자, 공존의 상징인 이 식물에 이름을 붙여준다.
'희망'
콜로세움의 전사들은 전투 중에도 '희망'이 다치지 않게 존중해주었다. 최대한 멀리서 전투를 하고, '희망' 앞에서는 넓은 범위의 공격을 하지 않는 등, 그 나무를 해치지 않게 전투를 한다. 하지만 희망이 태어난 자리는 결코 안전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전투는 쌓여가고 희망은 상처 입는다.
'희망'은 버텨냈다. 도저히 재생할 수 없을 것이라 여긴 순간에도, '희망'은 새잎을 만들어내어 태양 빛을 받아낸다. 가지들이 잘려나가면 스스로 뿌리를 잘라내어 괴사시킨다. 생존에 적합한 뿌리만큼 가지를 뻗고, 가지 만큼 뿌리를 줄인다. 콜로세움 주최 측은 나름 명물이 되어버려, 이제는 아예 콜로세움의 마스코트가 되어 버린 '희망'을 그 자리에 두기로 했었다.
삼백년이 지났다.
'희망'은 너무 크게 자라버렸다. 경기장의 1/5을 차지한다. 그러자 슬슬, '희망'을 제거해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희망의 가지와 잎에 가려서 경기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자리가 생겨버린 것이다. 콜로세움의 입장권은 비쌌고, 시합을 제대로 관람하지 못하는 우주인들의 연이은 불만을 제기한다. 환불과 보상을 요구한다. 마케팅의 효과보다 관중을 잃는 손실이 더 커지기 시작할 때쯤 콜로세움의 주최측은 '희망'을 어떻게 제거할 것인지 회의에 들어갔다.
희망을 옮겨 심는 의견은 기각되었다. 뿌리가 이미 전체 콜로세움을 덮어버렸다. 아예 콜로세움의 벽을 허물어버리는 것이 희망을 옮기는 것보다 쉬울 것이다.
희망을 베어버리자는 의견도 기각되었다. 그 어마어마한 두께는 차치하고, 그 단단함이 문제였다. 수백 년간 칼과 창, 돌들을 버텨낸 그 나무의 단단함은 강철을 버텨낸다. 베어내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 공사와 규모는 비시즌 내 완료될 것 같지 않다. 베어져 버린 희망의 모습은 콜로세움의 이미지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희망을 불태우는 것으로 의견이 모인다. 이 방법은 '희망'을 좋아하던 팬들에게도 변명이 된다. 고의가 아니다. 방화범이나 담뱃재, 낙뢰 때문이다 등, 적당한 이유를 붙이기로 했다.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송구하다. 그러나 나무는 원래 불에 타는 법이다. 그렇게 결정되었다.
시즌이 끝나고 챔피언이 희망을 배경으로 세워진 단상에 올라 트럼피를 들어 올린다. 플래시들이 터진다. 희망의 마지막 모습을 기록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비시즌의 어느 한적한 날, '희망'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붙는다.
워낙에 큰 나무였기에 그 나무는 하루 종일 탔다. 주최측의 적절한 통제로 나무는 불이 붙고도 한참 후, 그러니까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소각이 진행되고 나서야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300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불에 타 사라지는 '희망'을 애도했다.
나무가 거의 다 타버리고 재만 남게 되어서야 주최측에서는 진화를 시작했다. '희망'의 불탄 조각들과 찌꺼기들을 해체하고 수거할 작업자들이 투입된다.
가장 두꺼워서 가장 불에 늦게 타버린 '희망'의 줄기에는 아직 완전히 타버리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그 부분을 직접 제거하기 위해, 한 작업자가 엔진톱을 들어 다가갔다. 엔진톱에 시동을 건다. 그가 마지막 희망의 가장 두꺼운 줄기에 톱을 갖다 대려고 한다.
뿌각
갑자기 나타난 철퇴가 작업자의 머리를 내려친다. 머리가 몸통에 박힌다. 그가 들고 있던 시동걸린 엔진톱은 땅바닥에 떨어졌다. 앵앵거리며 제자리를 맴돈다.
앵앵앵앵
푸달탁탁
갈칼가갈
엔진의 시끄러운 소리와 쇠톱과 땅바닥의 불쾌한 마찰음이 섞인다. 콜로세움 안의 작업자들, 구경꾼들, 그리고 기자들의 시선이 그 불쾌한 소리를 향한다. 하지만 그들의 시선이 멈추는 곳은 엔진톱이 아니라, 그 옆에 서있는 괴생명체였다.
그것은 두 개의 팔과 머리가 달린 몸 그리고 그 몸을 지탱하는 두 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모습이지만, 전혀 외설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 생물의 피부가 가죽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것은 은빛으로 빛나는 강철과 같았다. 그러나, 곤충과 같이 외골격의 생물체도 아니다. 그 은빛의 강철피부는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 모든 부분이 꿈틀거렸고, 뒤틀려 올라가고 내려가기도 한다. 끓는 물을 촬영한 후, 저속으로 재생하는 것과 같이 움직인다. 그리고 그런 모든 움직임 속에서도 그 피부는 확실히 단단해 보인다.
오른팔에는 철퇴가 들려 있다. 철퇴의 손잡이는 나뭇가지로 연결되어 그것의 등과 연결되어 있다. 갓난 아기의 탯줄이 그 모와 연결 되어 있듯, 그 철퇴는 그것과 연결되어 있다. 아까 휘둘린 철퇴가 그것의 등에서 뽑아져 나왔다고 주장하는 듯 하다. 철퇴가 휘둘러진 것을 보지 못한 자들도 , 그 옆에 나뒹구는 머리 없는 작업의 시체를 보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괴생명체가 오른팔을 등 뒤로 넘긴다. 철퇴는 연결되어 있던 나무줄기를 따라 그의 등에 흡수되며 사라졌다. 철퇴가 들어가고 나서, 다른 것이 뽑혀져 나온다. 이번엔 그냥 긴 작대기 였다. 뽑혀진 작대기 역시 그의 등과 가느다란게 연결되어 있다. 작대기의 끝에는 살랑 거리는 끈이 연결되어 있다. 그 괴생명체가 오른손으로 그끈의 끝을 잡아 작대기의 반대편 끝과 연결하는 것을 보았을 때, 주변의 우주인들은 그것이 활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활을 만들어 낸 괴생명체는 자신의 옆구리를 잡고 쥐어 짜며 꼬집어 뽑아 버린다. 갑작스런 자해같지만, 그의 손에는 길다란 두번째 작대기, 살이 뽑혀져 나온다. 괴생명체는 그 살을 활의 시위에 얹는다. 순식간에 시위가 당겨졌다.
팽
'희망' 해체 작업의 총관리 감독자의 머리에 구멍이 생겼다.
콜로세움의 시설 정비 관리자이자 펜쏮 성인, 션쿠는 그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이다. 그는 관리감독자의 머리에 구멍이 생길 때, 바로 옆에 서 있었다. 그는 그 구멍이 생긴 후에, 자신을 향해 바람이 분 것 같다고 증언했다.
경기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모든 우주인들이 도망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활도 계속 쏘아진다.
팽
소리 한 번에 반드시 하나 이상의 우주인들이 쓰러진다. 그 정확도도 무섭지만 연사력이 공포스럽다. 보통 활은 시위에 살이 얹히고, 당겨진 후, 조준과 집중을 거쳐, 타이밍이 계산되어진 다음, 놓아지는 과정 후에나 비로소 발사되는 법이다. 그러나 이 괴물이 활을 발사하는 데는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전부 축약된다. 시위가 당겨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조준은 오차 없이 단번에 이루어진다. 시위는 당겨지자마자 놓아진다. 쏜 살은 오차 없이 우주인들에게 바람구멍을 만들어낸다.
팽 팽
콜로세움 전투장안에는 총 8개의 입구가 있다. 그러나 현재 열려 있는 출구는 하나 뿐이다. 우주인들이 그 출구를 향해 도망친다. 그러나 살은 빗나가는 법 없이 그들을 공격했다.
가장 출구에 가까운 우주인들을 먼저 저격한다. 따라서 출구를 향해 달리는 자들은 가장 선두의 우주인의 등에 구멍이 뚫리는 것을 보게 된다. 앞서가는 우주인들이 순차적으로 죽어나가자, 몇몇 우주인들이 도망가길 멈춘다. 출구에 가까워질 수록 더 빨리 죽게 될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그 괴물을 향해 되돌아가기 시작한다. 멀리 있는 순서대로 죽는 다면, 더 가까워져야 좀 더 오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순간적 판단이다.
그 장면들은 생방송으로 송출되고 있었다. 불타는 희망을 취재하러 왔다가 졸지에 목숨을 걸고 괴물을 취재하게 된 리포터가 죽기 직전에 남긴 한마디는 그 괴물의 이름이 되었다.
"희망이 사라진 이곳에 절망이 나타났습니다."
그 멘트를 마지막으로 리포터의 머리에 구멍이 뚫린다. 그제서야 생중계가 멈췄다.
'절망'은 활을 다시 등 뒤로 넣었다. 그리고 다른 것을 꺼내들었다. 그것은 검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검을 한 손에 든 그것은 다리를 움직여 걷기 시작한다.
활이 사라지자, 우주인들은 다시 방향을 바꾸고 출구를 향해 뛰기 시작한다. 다시 그것과 멀어지고자 한다. 그러나 '절망' 은 더 빠르게 다가왔다. 도움닫기 없이 한 걸음으로 10미터를 이동했다. 그리고 두 번째 걸음으로는 20m 정도를 더 이동했다. 그리고 3번째 걸음으로 약 30m를 더 이동했다. 단 세 걸음으로 60m정도의 보폭과 속도였다. 그리고 네번째 걸음을 걸으면서 그는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우주인들은 종이장보다 더 가볍고 쉽게 절단되기 시작한다. 그 곳은 지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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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은 많은 매체에서 상당히 저평가 되어 묘사 된다. 총알을 막는 방탄 유리나 방탄조끼들이 나오기도 하며, 두꺼운 피부와 근육으로 총알을 버티는 동물들도 보여준다. 총에 맞고도 죽거나 불구가 되지 않는 주인공들을 보면 총은 그렇게 까지 강한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총은 전우주에 존재했던 모든 재래식 무기들 중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총알이 작은 이유는 그 크기만으로도 충분히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총알을 버티는 상대가 있다면, 그래서 파괴력이 부족하다 느껴진다면 좀 더 큰 구경의 총을 사용하면 된다. 6 mm 가 부족하면, 12 mm로 늘려라. 12mm가 부족하면, 20 mm 로 늘려보아라. 전 우주를 통 틀어, 머리에 20mm 를 맞고 버틸 수 있는 고지능생명은 없다. 다시 말하지만, 우주에 작은 구경의 총들이 많은 이유는 그 정도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아스팔트로 지어 올린 건물의 기둥 속 철골까지 수 초만에 산산조각내어 무너뜨리는 화력을 보유한 25 MM 벌컨이 장착 된 대 괴수용 안드로이드 '블라추함'을 콜로세움에 보내는 것에 대해, 성단 경찰 관계자들은 '과잉 진압'이라 언급한 것은 수긍할 법한 표현이었다.
'절망'은 한 명의 펜쏮 성인을 제외하고, 모든 우주인들을 학살한 후에 자신이 처음 나타난 그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이 고개를 들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블라추함'이 콜로세움 안으로 들어갔을 때였다.
'블라추함'은 자신의 사정거리안에 '절망'이 들어오자마자, 총알 세례를 퍼부었다. 처음에는 '절망'이 고전하는 듯 했다. 그가 등에서 뽑아낸 방패는 25 mm 의 발칸을 버텨내지 못하고 순식간에 파괴 되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세 번째 방패도 모두 파괴 된다. 그러나 그가 뽑아낸 방패가 파괴되었을 뿐, 그의 몸에 총알이 닿았다는 것은 아니다.
4번째의 방패가 만들어졌다. '블라추함'은 또 다시 새로 만들어진 방패를 향해 총알을 난사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절망'은 오목하게 휘어진 모양의 방패를 만들었다. 옆면으로 세운 방패는 탄환들을 정면으로 받아내지 않고 측면으로 빗겨서 받아낸다. 그 기괴하게 긴 굴곡면에 총알이 미끄럼틀을 타고 휘어지듯이 총알듯이 빗겨나간다. 그러나 분당 7200발의 총탄을 전부 빗겨나가게 할 수는 없다. 방패는 또다시 파괴되었다.
블라추함이 단순히 팔칸포만 발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무한궤도를 가진 이 안드로이드의 차체는 절망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 듯 이동한다. 발칸포가 장착되어있는 상체는 마치 탱크의 포탑이 고개를 돌려 조준하듯이, '절망'을 향하고 있다.
'절망'은 방패가 부서질 때마다, 엄청난 각력으로 스프린트하며 도망친다. 단 두 세 걸음 만으로도 60 - 70m 씩 이동하는 것 같다. 그 엄청난 속도는 '블라추함'이 그 상체를 회전하며 따라잡을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발칸 발사에 틈이 생기자마자 '절망'은 다섯번째 방패를 만들었다. 더 단단하고, 더 크고, 더 길며, 더 괴이한 곡선면을 가지고 있는 방패였다. 그리고 그 방패는 드디어 분당 7200 발이나 쏟아지는 총알세례의 대부분을 막아내면서 버텨낸다.
시간은 '절망'의 편이다. 25 MM라는 어마어마한 총알 두께는 장탄수의 한계를 가져온다. 블라추함은 6800 발의 장탄수만을 가지고 있었다. 분당 7200 발의 제원으로 표기되지만, 1분 동안 발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것이 총화기가 우주의 역사 속 재래식 무기로 분류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블라추함'은 장탄수가 떨어지기 전에 승부를 봐야했다. 내장된 승률 계산 프로그램의 확률이 점점 낮아진다. 남은 탄환의 수가 2000발 아래로 떨어진다. 99%였던 승률은 어느새 75% 까지 떨어졌다. '블라추함'은 자신의 대 괴수전 파트너이자 저격용 안드로이드인 '루벤출'에게 신호를 보냈다.
'루벤출'은 전투가 시작되자 마자, 콜로세움 관중석 제일 높은 곳에 자리를 잡고있었다. '블라추함'이 시선을 분산시키고 최적의 각도를 만들어 주면, '루벤출'의 최신식 저격용 레이져 광선포가 목표물을 향해 발사될 것이다. 그의 충전식 광선포는 진작에 완충되어 발사만을 기다리고 있다.
'블라추함'이 이동한다. 총알의 방향에 맞추어 '절망'은 방패의 방향을 돌린다. 그리고 '루벤출'에게 절망을 저격할 최적의 각도가 열린다. '루벤출'은 안드로이드 답게, 한 치의 망설임이나, 손떨림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절망은 자신의 등에서 솟아난 거대한 기형 방패를 잡고 버티기 위해, 최소한 2개의 지지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미 4번이나 부서져버린 방패들을 바탕으로 가장 강인한 탄소 섬유 구성을 조합했다. 그리고 그 조합을 유지한 채로 가장 두껍고 커다란 방패를 만들었다. 그러고 나서야 방패가 총탄을 막아낼 수 있었다. 방패의 그 무게와 크기 때문에 방패를 들고 이동할 수는 없다. 양 팔 모두를 잡고 버티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저 멀리 콜로세움 관객석 위에 자리잡은 존재를 인지했을 때에도 특별히 반응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발칸포의 유도에 따라 자세를 바꾸어 움직이던 '절망'은 깨닫는다. 어느 순간 자신의 신체가 활짝 열린 채로 그 관중석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절망은 몸의 핵을 보호한다.
안드로이드인 루벤출은 자신에게 설치되어 있는 프로그램의 디폴트 설정을 따른다. 그 설정의 첫번째 조준 목표는 머리이다. 일반적인 지능종들을 사살하기 위해서는 머리를 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머리에는 눈, 귀와 같은 감각기관이 몰려 있고 그 감각기관의 정보를 수용하는 뇌는 당연히 그들과 같이 자리잡고 있다. 눈과 뇌가 멀면 장님이 될 확률만 높아질 뿐이다. 그래서 뇌는 보통 머리에 있다.
번쩍.
엄청난 에너지가 방출되어 선이 된다. 쏘아진다는 표현이 어색하다. 그냥 에너지체로 이루어진 직선이 있었다가 없어졌다. 그리고 그 한 쪽 끝에 있던 '절망'의 머리가 삭제된다. 그 직선은 '절망'의 머리를 삭제하고도 지면을 계속 파고 들어가 수십미터의 구멍을 만들었다.
명중이다. '루벤출'은 목표의 죽음이 확인될 때까지 조준을 유지한다. 머리가 없어져도 움직이는 적들은 있다. 그리고 혹시 모를 두 번째 발사를 위해 충전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의 승률 계산 프로그램은 이미 '승리'라는 글자를 출력하고 있다.
'블라추함'의 발칸이 동작을 멈추었다. 장탄수를 모두 소비했기 때문이다. 역시, 승률 계산 프로그램은 '승리' 라는 글자를 깜빡이며 출력한다. 그는 주무기를 발칸에서 화염방사기로 전환한다.
그러나 두 안드로이드는 상황을 오해하고 있었다. '절망'의 뇌는 머리에 있지 않다. 핵에 있다. 훼손된 신체를 빠르게 수복할 수 있는 이 생명체는 감각기관과 뇌가 가깝게 있어야 하는 방향으로 진화하지 않았다.
머리가 사라진 절망은 자신의 핵이 무사하다는 것에 안도했다. 그러나 저격수가 자신의 머리가 아니라, 핵을 노렸다면? 이라는 의문 속에서 공포의 감정도 느꼈다. 그는 공포의 감정을 자신의 핵에 새긴다. 300년간 온갖 전투들을 관전하며 축적된 그의 전투력에 지금의 실전 경험과 죽음을 넘나드는 감각이 더해진다.
'절망'은 머리를 수복하기 시작한다.
루벤출은 조준경으로 다시 생겨나는 절망의 머리를 확인했다. 안드로이드인 그는 놀라기 보다는, 프로그램 로직에 따라 다음 행동을 취한다. 머리가 급소가 아니라면 몸통인 법. 루벤출은 담담히, 로직에 따라 다음 표적인 몸통을 조준하고 발사했다.
'절망'은 이 두 번째 저격의 명중을 허용하면서도, 첫번째와는 다르게 행동했다. 처음의 머리 공격은 '절망'이 경험한 첫 번째 치명상이었다. 어떻게 대응해야하는지 당황하며, 쓰러진 채로 자신의 몸을 점검했고, 특히 핵의 안위만을 걱정했었다. 그리고 그 행동이 가져온 부정적 피드백은 '절망'에게 전략이라는 능력을 일깨우쳐 준다.
그는 이 두 번째 저격은 맞을 각오를 하고 버텨낸다. 핵만 무사하다면, 치명적인 공격을 허용하더라도, 다음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 때부터, 모든 공격을 맞지 않으려던 '절망'의 전투 방식이 변화한다. 즉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한다는 전략적 움직임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절망'의 살은 즉시 회복된다.
눈이 회복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루벤출이 쏜 레일건을 온 몸으로 맞아가면서, '절망'은 루벤출의 위치를 특정했다. 그가 상처입은 광선과 같은 직선상의 위치에 적이 있을것이다. '절망'은 그 각도 그대로 점프했다. 루벤출의 면전에 나타난 '절망'에 절망은 드리웠고 다음계산은 없었다. 루벤출의 머리는 뜯겨졌다. 절망은 손으로 쥐어짜 뜯어낸 안드로이드의 머리를 내팽겨치듯 던져버린다.
홀로 남은 블라추함의 승률 계산 프로그램이 계산을 수정한다. 그리고 곧바로 계산된 승률을 출력한다. 0%. 수십년간, 수많은 우주 대괴수들을 퇴치해 온, 전투형 안드로이드 '블라추함'은 그렇게 은퇴하게 된다. 그리고 발탄 성단 경찰국은 자체적 진압을 포기하고 연합에 도움을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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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VS '블라추함 & 루벤출'은 배틀레전즈 #1,542,678 에 기록된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절망의 강력함이 들어났지만, 그의 정체는 알 수 없었다. 많은 전묘가들이 '절망'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노력했지만 해내지 못했었다.
내가 왜 최고의 전묘가인지 아는가? 나는 그 절망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수 없이 많은 문헌들을 찾아보았다. 1013번째 우주에서 일어났던 그 전투를 직관하기 위해서 나는 무려 120번의 시간여행을 했고, 7번의 평행우주를 이동했었다. 그리고 마침내 '절망'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던 문헌을 발견했다.
[전 우주 미지 생물 백과]의 저자로 알려진 아령 행성인 귀족 탐험가 볼트 엘링턴 자작은 가장 많은 행성을 탐험한 우주인으로 독보적인 기록을 가지고 있다. 아직까지 그 기록을 깬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가 유명한 이유는 그 업적 때문이 아니라, 사망 후 발견된 그의 유언장 때문이다. 그 유언장에 따르면, 그는 "전우주 가장 아름다운 행성"을 목격하고 생환한 유일한 자이다. 그가 뭐라고 남겼었는지, 아래에 그 일기를 첨부한다.
#이하 볼트 엘링턴 자작의 일기에서 발췌
내 인생 최대의 업적으로 꼽아 왔지만, 도저히 밝힐 수 없었던 일화를 이 곳에 기록한다. 또한 내가 왜 내 최대의 업적을 밝힐 수 없었는지도 같이 적는다. 아령 률법에 의해 이 기록은 나의 뜻을 이해하고 발설하지 않을 나의 직계 가족에게만 공개되기를 요구한다.
전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 행성에 도달한 것은 오직 나와 나의 동료들 뿐이었다. 그 당시 나는 그곳의 아름다움에 심취하여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절망했다. 나 때문에 전 우주에 이 곳의 존재가 알려질 것이다. 해적들의 행성먹기, 연합의 자연갈취 등 이 아름다운 별이 훼손될 것이다.
.. 중략..
동료들도 믿을 수 없다. 나는 우선 내 죄책감을 담당하는 *좌뇌 5방구 12지구를 격리했다. 그리고 바로 네비게이터 업데이트를 차단했다. 모든 탐험경비를 내가 대고 있기 때문에, 내 동료들의 네비게이터 계정 소유권도 내가 가지고 있었다. 항상 수동 업데이트만 해왔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다.
*아령행성인은 스스로의 뇌를 지도화 하여, 주소를 붙여 놓고, 제어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음.
… 중략
나의 마지막 동료를 제거하고 얼마 후, 막아두었던 죄책감을 열었다. 그러자 내 뇌 속 전 구역은 순식간에 우울감으로 가득찼다. 그 때의 절망은 자살에 이를 만큼 클 것이 분명했기에, 나는 척수 신경으로의 신호를 미리 끊어놓았다. 충분한 시간이 지나 우울감이 잦아든 이후가 되서야 나는 다시 척수 신경을 연결했다.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그 별을 떠났다.
나는 그 곳의 위치도, 특징도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으려 했지만, 한 지능종만은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생물은 나무에서 태어난다. 그 생물은 주변의 모습과 정확하게 동화되어 태어나기 때문에 너무나도 아름답다. 물가에서 태어난 그것은 물에서 숨을 쉬고 헤엄을 잘 친다. 절벽에 태어난 그 것은 절벽을 빠르게 타고 오른다. 그 생명이 태어나게 되는 나무의 환경이 깃드는 것일까. 나는 그것들을 정령이라고 부른다. 그 별의 모든 것들은 아름다웠기에, 모든 정령들은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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