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저도 뭔가 썰풀이 한번 해보겠읍니다


때는 보자... 4년정도 됐구려, 벌써. 시간 참 빠를세 허허.


고2 봄방학 당시의 일일세.


당시 부산대 앞에는 보우라고 하는 오락실이 있었는데, 각종 리듬게임이 최신 유행에 맞춰 잘 구비되어 있기에 인기가 아주 많았지.

다만 주인장 할배가 별로 장사에는 생각이 없다보니 가게 관리는 전적으로 알바 몫이였는데, 그 알바가 거의 열정페이급으로 시급에 걸맞지 않게 열심히 일을 하다가 곪아 터져 크게 한번 난리가 났던건 머나먼 뒷 이야기.


내가 지하철로도 대략 2시간 가까이 걸리는 부산대 앞까지 꾸역꾸역 기어간건 다름아니라 소정의 이벤트 때문이었다.


봄방학 시즌엔 중대한 이벤트가 하나 끼어있으니, 바로 발렌타인 데이!


그런데 취미로서 리듬게임에 발담그고 있던 나는 모 갤러리에서 신선한 소식을 접하게 됐다.


소식이 뭔고 하니, 발렌타인을 맞이하여, 모 갤러（남성）과 그의 여사친（아쉽게도 짝사랑）이 보우 오락실에서 촼컬릿을 뿌리기로 한것!

방학에도 자율학습이라는 이름의 강제학습에 얽매여 속박당하는 우매하고 어린 영혼들을 위해 그들은 시간을 오후 2시~3시 경으로 지정해주기까지 하는 관대함을 보였었다.

방학의 자습시간이라고 하면 그래도 P.M. 5:00까지는 지속되는게 보통이지만, 봄방학은 기간도 짧고, 춘곤증이니 뭐니 해서 학습효율이 떨어지다보니 1시정도에 마쳐주고 더 공부를 하겠다 싶은 아이들을 위해 도서관을 개방해주는 식으로 학교가 운영되고 있었다.

나야 온나노코의 손길이 담긴 촼컬릿의 온기를 맛보고자 한 바, 부리나케 교복차림으로 뛰어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옷이라도 갈아입고 갔어야 했는데...


그리고 내가 도착했을땐 놀랍게도...


누가 누군지 못알아봐서 어버버 하는 사이에, 촼컬릿의 재고가 모두 소진되어버린거였다. 젠장맞을 솔로 갤러놈들.


예 뭐, 절대 슬프거나 하진 않았다구요.

아마도...


뭐, 대충 마음을 추스리며, 당시에 흥미를 붙이고 있었던 쥬우비트를 열불나게 두드리고, 남는 동전을 그러모아 더 하우스 오브 데드 4에 꼬라박았습니다.


그렇게 마음가는대로, 반사적으로 총질을 하며 사회주의 좀비놈들을 숙청하고 있는데 평소엔 느낄수 없던 뜨거운 시선이 뒤통수에서 느껴지길래 로딩타임에 잠시 뒤를 돌아봤더랍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 아리따운 여성 한분과 떨거지 셋이 쳐다보고 있었어요.

근데 뭐, 병신같게도, 당시의 나는 온나노코의 수제 쫘껄릿 맛은 그리워한 주제에 아리따운 여인이 구경을 하던 말던 게임이 우선이었더랍니다.

당연히 뭐 시발 뭐 하면서 다시 게임에 집중했지요.


그런데 옆으로 아까의 그 떨거지 셋이 슥 지가나는게 보이더이다. 그래서 로딩의 틈을 타 다시 뒤를 돌아봤더니 오잉?

이 아리따운 처자가 친구 하나 없이 혼자 서서 내 플레이를 유심히 지켜보는겁니다.

그리고 제가 한 생각.

'혼자왔나...'

하고 다시 게임을 재개했드래요.


그런데 갑자기 이 처자가 내 옆에 불쑥 서더니 냅다 코인을 박고는 2P 자리에 서는겁니다.


그 여자는 그날 처음 봤는데!


그러더니 능숙한 솜씨로 사회주의 좀비동무에게 납탄을 선사하나 싶었...는데.


폼만 그럴싸했지 명중률이 보정 안받은 콘솔게임기 FPS 타겟팅 마냥 개판인게요.

2P로 플레이할시 전체 피통이 늘어나는 하오데의 게임 특성상, 내가 아무리 잘해도 이래서는 보스전에서 침몰이다, 하고 따악 게이머로서의 직감이 뇌리를 스치더이다.

결국 온게임넷 초고수 열전에 나오는 그네들의 모양새를 흉내내듯이, 보스전에서는 그녀의 컨트롤러를 들어 혼자서 2명의 딜을 보스에게 꼬라박아야 했다 이말입니다.

다행히 지금과 달리, 당시 나는 꽤나 빠릿한 반사신경의 소유자였기에 두개의 초점을 한곳으로 집중시키며 일사불란하게 약점을 흔들어대는 보스를 무리없이 처치하고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갈 수 있었소.


근데 무슨 마음이 들었던겔까, 2스테이지에서도 그 하릴없는 한심한 명중률로 감염성도 없는 좀비 손톱에 사정없이 긁히며 라이프를 갉아내는 플레이에 연심이라도 들었던 걸까, 어쩌다보니 내가 그 처자를 지켜주는 모양새로 플레이하게 되었던겁니다.

아무리 반사신경이 빠릿빠릿해도, 피통도 많고 수도 늘어난 그 좀비떼를 혼자서 상대하는건 무리였지.

결국, 처음엔 라이프면에서도 우세였던 내 라이프가 점점 그 처자와 같아지더니, 떼거지로 다가오는 좀비떼의 물결에 엎어지고, 동시에 밟혀서 같이 비명횡사 해버렸다는게, 회상의 끝이오.


그때 그 아쉬운듯 웃던 그 표정이 참으로 빛났었다, 그것만은 명백히 기억한다.


번호를 안 딴건 사실 아직까지도 후회하고 있는 모양이다.


젠장.


요약
1. 마미쨩
2. 임신시키고
3.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