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서른이 다가오는데 아직 직업이 없다.

알바를 하고는 있지만
같이 일하는 직원이 동갑이라 그런지
이따금씩 가슴 한편이 콕 찔릴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늘 생각했다.
"난 내가 쓴 글로 밥 빌어먹고 살 거야!"

그렇게 글을 쓴 지 몇 년인데도
완결을 내본 것이 하나도 없다.

어느 날 번뜩 아이디어가 떠올라
미친 듯이 메모했다.
그런데 막상 이를 글로 풀어 쓰려니
몇 줄 가다 막혔다.

시작과 결말 밖에 없는 구상.
그 사이는 그저 캐릭터들의 대화만 오간
말 그대로 그저 그런 대화록이었다.

소재가 떠오를 때마다 새 공책을 폈다.
그 공책을 빼곡히 채울 만큼 완벽하고
치밀하게 구상하자는 생각에서였다.

그냥 얼토당토 않는 헛짓이었다.

책꽂이 한편에는 제목만 있고
한 장 넘기면 아무것도 없는 공책들이
아무렇게나 쌓여있다.

내가 처음 글을 썼을 때 누군가 칭찬해주었다.
그 누군가는 그냥 한 말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그 두근거림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완전히 모르는 사람에게서 받은 그 기쁨은
아직도 내 마음 속에서 또 다른 심장으로 뛰고 있다.

그렇게 뛴 게 이제 15년 정도 지났다.
그러나 나의 글심장은 예전처럼 활기차게 뛰지 않는다.

난 게으른 건가?
혹은 절박하지 않은 건가?
아니면 재능이 없는 건가?

글심장으로 쉬는 꿈은 그냥 철없는 어른의 헛꿈인 건가?

나도, 그리고 나의 세계도 조금씩 어둡게 시들어져 간다.





---
매번 어중간하고 끝에 도달해본 적 없는 당신에게,
상상만 하고 정작 실행하지 않는 너에게,
꿈만 꾸고서 그리지 않는 나에게 이 글을 보낼게.

이 글은 너에게 분명 흑역사다.
두고두고 놀림감이 될 글이다.
그럼에도 너는 꿈을 이루고자 일부러 여기에 썼다.
그러니 절대 지우지 마라.
이것마저 여느 때와 같이 지운다면
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이 글을 본다면 넌 끝난 거다.

겸손하고
겸허하게
겸달하라.

그 마음가짐으로 가상의 독자를 만들었다.
생각 속에 거울을 만들고 거기에 비춰냈기에
너 스스로도 참으로 어리석은 망상이라 했다.






























너의 ‘완결’을 볼 수 있을까?
아니라면 일단 글을 다 쓰고 나서 다시 찾아와.






























아무도 안 봤을 수도 있지. 그래서 완결은?
다시 쓰러 가.































너는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아마추어야.
그래도 글 쓸 때만큼은 프로의 마음가짐으로 쓴다고 한 거.
잊지 않았지?































막혔다느니 안 써진다느니 피곤하다느니 별별 핑계를 대며
하루, 혹은 이틀, 아니면 꽤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았지?
너는 그 핑계를 대지 않으려고 일부러 글을 2개로 시작했어.
이게 안 써지면 저거를,
저게 안 써지면 이거를,
이렇게라도 쓴다고 했었잖아?































설마 이것도 저것도 안 써진다고 ‘또’ 다른 걸 쓰기 시작한 건 아니지?
네가 왜 아직도 글을 온전히 못 쓰고 있는 건지 잊었어?
느려도 괜찮아. 괜찮으니까 네 두 발에 또 사족을 달지 마. 제발.
그러니까 그건 버려.































이번에는 진짜라고? 정말로 괜찮은 소재, 참신한 아이디어라고?
너는 아직도 상상 속에만 머물러 있구나?
너의 소재 노트가 왜 있는 건데? 제발. 부탁이야.
너는 양측이 절벽인 큰 길을 그렸어.
아직 다다르지도 않았으면서 옆으로 떨어지려는
그런 바보 같은 짓은 하지 말아줘.































방황할 수도 있을 거야. 이해해.
그래도 너의 길에서 벗어나면 안 돼.































이거 쓰다~ 저거 쓰다~
이제는 뚝심 있게 하나만 쓸 때도 되지 않았어?































폰글쓰기 / 손글쓰기 / 본글쓰기
네가 정한 철칙이야.































잘 하고 있니?































잘 쓰고 있어?































쓰긴 하지?































여기서만큼은 스크롤을 내리다가 외면해도 돼.
당장에 이곳을 끄고 벗어나도 돼.
그건 오히려 네가 상기했다는 뜻이 되니까.
하지만 네가 쓰는 글을 외면하진 마.
아무 생각 없이 스크롤을 내리진 말아줘.































제발.































일단 쓰기 시작해. 그냥 써 봐.
한 문장이라도, 한 단어라도, 한 글자여도 좋아.
대충 쓰면 오히려 네가 못 배길걸?































또 설정에만 머무르고 있지?
설정놀음은 글이 아니야.
너는 상상을 녹여 글을 빚으려 하는 거지,
글조각을 깎아 늘여놓으려는 게 아니야.































일기는 또 안 쓰고 있지?
정말로 아무것도 써지지 않을 때는 일기장을 펴.
너는 이미 1년가량 일기를 안 쓴 적도 있어.































어떻게든 되겠지?
아니야. 이제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돼.
어떻게든 써야 해.































글벼락을 기대하지 마. 제발.
네가 너의 영감을 왜 굳이 글벼락이라고 칭하는지 잊었어?
일단 쓰는 게 중요해.































네가 쓰는 소설을 왜 글이라고 칭하는지 잊은 건 아니지?
완결을 해야 비로소 너 스스로가 소설이라 부를 거라 했잖아.
나의 ‘작품’이라고 너 스스로가 소리 내 말한다고 했어.































다짐했잖아?
“나는 소설을 쓸 것이다.”가 아니라
“나는 소설을 쓰고 있다.”라 말할 거라고.































내가 해줬던 인터뷰 기억나?
“소설을 쓰려면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할까요?”
“소설을 쓰려면 ○ ○○ ○○○ ○○ 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설마 빈칸 띄어쓰기 틀리게 배치한 걸로 잊은 건 아니지?































퇴고는 맨 마지막에 해.
쓰다가 고치고 쓰다가 고치고 번복하는
너의 그 버릇은 이제 제발 버려.































또 생각이 튄다고, 정리가 안 된다고 끙끙 앓고 있지?
메모해. 그리고 정리해. 그러고 나서 계속 써.
그냥 손 놓고 있지 마.































힘들지? 힘들 거야. 힘들겠지.
근데 너는 뭐라고 했었지?
‘힘들다’가 아닌 ‘힘들었다’고. 웃을 거라고 하지 않았어?































나는, 너는 여기까지야.
이젠 더 이상 안 돼.





















































포기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