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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판게에 쓸때는 최대한 스포 안하고 볼만하다 혹은 재밌다 정도의 평만 남기려고 하는데, 어차피 윈터러는 웬만하면 다 읽었을테니 생각나는거 다 써야겠다.
고1때쯤 데모닉을 읽었을 거다.
그때 내가 파스텔톤이라는 단어를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이후에 난 항상 룬의 아이들에 대해 파스텔톤 같은 글이라는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부드러운 문체가 룬아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그 파스텔톤은 오히려 단점으로 다가왔다. 시적인 묘사는 이런 걸 별로 거슬려하지 않는 나한테도 과장되게 느껴졌고, 그래서 초반에 예프넨의 죽음이 오히려 별 감흥이 없었다. 너무 비극적이고 희생적이며 고귀한 죽음으로 포장하려다보니 나한테는 작위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감성을 더하기 위해 종종 등장하는 노랫말도 그냥 그랬다. 물론 노래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다보니 노래하는 장면이 나올 수밖에 없고, 노래하는 장면을 표현하기에는 가사를 직접 쓰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는 건 이해한다. 그리고 노래가사가 마이너스 요소는 아니었다. 하지만 플러스 요소라고 느껴질 정도도 아니었다. 솔직히 웹연재였으면 분량때운다고 욕먹었을거다.
또다른 단점은 악역의 밋밋함이었다. 질보단 양으로 승부하려는건지 악역이 꽤 여러명 등장하는데, 나열하자면 블라도, 야나카, 백작, 칸 선제후, 헥토르, 에키넨, 질레보, 섭정, 섭정 동생, 리리오네다. 그런데 이들이 악행을 저지르는 동기를 차례로 나열하면 질투 및 탐욕, 탐욕, 탐욕, 탐욕, 질투, 질투, 질투, 질투, 질투, 질투다. 양산형 악당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지극히 단순한 동기부여다. 물론 뭐 세분화하자면 질투의 유형을 나눌 수는 있겠지만 그다지 인상 깊은 악역이 아니라는 점에는 모두 동의할 것이다. 심지어 탐욕이 동기인 악역들의 경우, 윈터바텀 킷에 그렇게까지 집착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물론 그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인 건 맞지만, 그 사실을 이 악역들이 안다는 내용은 전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악역들은 윈터러의 진짜 가치를 모르는 것처럼 행동한다.
다 읽고 보면 결국 이 소설은 보리스가 악당을 물리치는 이야기가 아니라 성장을 이루어내는 소설이고, 악당은 성장과정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시련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악역을 축소해서 표현한 건가 싶은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럴만한게 악역들중에 죽는 사람은 질레트 하나고, 심지어 얘도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보리스가 직접 죽인게 아니었을 거다. 나머지 악역들 중에도 죽음에 버금가는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는 건 블라도 하나뿐이다. （역시 보리스에 의한 것이 아니다.）
마음에 든 점도 있었다. 우선 세계관이 있다. 작가가 직접 짰는지 원래 게임에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역마다 각각의 문화와 정치체제, 경제적 수준이 있고 그게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는 점이 좋았다. 마법에 대한 설정도 마음에 들었다. 태양의 탑을 읽으면서도 느낀 거지만 마법에 대한 세세한 설정을 설명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전민희 특유의 문체와 어우러져 더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감탄했던 부분이면서 다 읽고 나서도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보리스와 나우플리온 사이의 대화다. 이후 대화도 괜찮지만 처음 렘므 국경 안에서 만났을 때 머머리드립치면서 나눈 대화가 가장 인상깊었다. 내 글이 이랬으면 좋겠다 하고 항상 생각해왔던 게 그 몇 마디 대화 안에 담겨 있었다고 해야 하나. 세련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보리스와 나우플리온 사이의 관계가 '훈훈한 사제지간'이다보니 좆같아지기가 참 쉬운데, 평소에 투닥거리는 대사나 월넛일 때 했던 말들 때문에 정말로 훈훈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훈훈한 관계를 잘 표현해 놓으니까 나우플리온이 거짓말해서 보리스를 섬에서 내보내는 장면에서는 존나 흔한 신파극인데도 감동받을 수밖에 없었다.
보리스와 이솔렛에 대해서는, 책 보면서 풋풋한 연애에 이렇게 설렜던 건 초등학교 5학년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물론 연애경험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기 때문에 별로 대단한 얘기는 아니다. 나우플리온이랑 약혼했던 얘기를 하고 난 뒤에는 서로 피하는 게 이해가 안 가서 이입하기 힘들었지만, 어쨌든 그 전까지는 설렜다. 난 감정선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안쓰지만, 이 둘의 연애감정은 가장 가늘고 섬세한 선으로 표현된 게 아닐까 싶었다.
인물 간의 관계를 이렇게까지 표현할 수 있는 걸 보면 전민희 작가는 대학시절에 핵인싸였을 것이다. 스스로가 자발적 아싸라고 주장하는 누군가에게는 심리학과를 박사 과정까지 수료한다고 해도 불가능한 일일 테니까.
여담
표지는 컨셉은 마음에 들었는데 그림은 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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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1 [2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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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아파트 |
인싸가 되어야 인물관계를 잘 묘사할 수 있다는 슬픈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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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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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파닭 |
세계관 작가가 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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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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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갤러 |
아싸야 말로 인간관계를 잘 표현할수 있지. 관찰을 통해 말이야. feat 하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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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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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1 [2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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