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다.

부드러운 살결은 인간의 것이 맞건만, 시리도록 차갑다.

생기도, 온기도 사라진 오직 차가움만이 그득한 그녀의 살결은 내 손끝을 시리게 만든다. 건조한 살결을 건조하게 쓰다듬으며 건조하게 속삭였다.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늦가을의 황량한 바람처럼 무미하게 흘러나온 내 말에 그녀는 형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마주친 그녀의 눈동자에는 그 시절 나를 바라보았던 따스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당신도 참.”

그녀가 살포시 웃으며 부끄러운 듯 다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고운 곡선을 그리며 올라가는 입꼬리와 달리 목소리는 뙤약볕에 타들어가는 사막처럼 딱딱하기 그지없다.

그녀에게 사랑이란 필요 없으면 그냥 버려버리는, 그런 소모품에 불과하겠지.

그녀를 쓰다듬던 건조한 손길이 나의 체념에 응하듯 멈췄다. 그래, 이제 와서 사랑을 찾는 것도 참 웃긴 일이야. 자조적인 혼잣말에 괜스레 웃음이 나온다. 허망한 웃음이.

“눈이 내리네요.”

아득히 먼 곳에서 들려오는 듯한 그녀의 음성에 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말대로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창끝에 위태로이 걸린 하늘을 쳐다보며 원망해본다. 겨울의 생명이 살아 숨 쉬며 저리도 내리고 있건만, 왜 그녀에겐 생명을 내려주지 않냐고, 부질없는 원망을 해본다.

“하.”

하지 않아도 될 원망에, 하지 않아도 될 한숨이 나온다.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멍하니 눈꽃을 응시하는 그녀의 뒤에 섰다. 딱딱하게 경직되어 있는 그녀의 어깨를 풀어주고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그런 나의 손길이 괜찮은지 그녀가 손을 올려 나의 팔을 가볍게 쓰다듬는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옆으로 숙여 내 팔에 기댄다.

그래, 사람의 관계란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하는 법이야.

만족스러운 미소가 입가에 걸리고,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따스한 시선으로 그녀의 정수리를 내려다보았다.

규칙적이며 인위적인 모공들의 나열이 눈에 들어온다.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듯 정확한 거리를 두고 나열되어 있는 모공들. 그 새까만 모공들을 보고 있자니 너울대던 마음이 복잡해져왔다.

하, 좀 자연스럽게 심을 수는 없는 거야?

난 그녀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뚜드득. 수십 개의 머리카락이 내 손가락 사이를 잡초처럼 삐져나왔지만, 그녀는 상체를 살랑살랑 흔들며 감상에 젖어있다.

아니, 젖어있는 척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