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주위에는 경계를 서는 병사가 몇 명 있었다. 핏방울이 난잡하게 흩어져 있었다.
시체의 주위에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구경을 하고 있었고, 아직 어린 아이들은 그것이 사람인지조차 모르고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몇몇 어른들은 그런 애들을 잡아다가 시체를 보지 못하게 눈을 가리게 했다.

“쯧쯧. 이거 아주 심각하군.”

멀리서 다가오던 부관이 시체를 보면서 중얼거린 말이었다.
뒤에서 따라오던 영주도 그 시체를 보자 자연스럽게 인상이 구겨졌다.
칼을 어찌나 세게 후려친 것인지 알지 못할 만큼 이지러진 살덩이가 옷과 함께 찢겨져 바닥에 굴렀다. 머리통은 칼자국으로 피가 거꾸로 솟구쳐 성한 머리칼이 없을 정도였다.

“이 작자가 정말 카메오 길드의 수장이라는 바름이 맞는 것인지 알 수 없겠습니다.”

부관이 옆에 있던 영주에게 말했다.

몇몇 사람들은 그런 영주를 알아보고 급히 고개를 숙였다. 영주는 한 손을 들어 고개 숙인 것을 받아 주었다. 그러나 곧 다시 시체에 신경이 쏠렸다.

본래 어떤 때에 싸움이 일어날지 모르는 세상이라, 영주들 가운데서는 돼지 목을 베개해서 사람을 죽이는 것에 무감각해지게 만들곤 했었다. 어린 영주도 돼지 목을 몇 번 자르는 것을 했지만, 참혹하게 나앉은 주검에게 그런 면역은 쓸모없는 것이었다.

“끔직 하네요.”

어린 영주가 부관에게 말했다. 오로지 느낄 만한 것은 그런 끔찍함과 어떻게 이리 만들었을까를 떠올리게 만드는 호기심이다. 그러나 이 시체 앞에서 공포를 느끼지 않고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유족（遺族）은 병사들의 제지에도 만류하고 다가서서 울었다.
울음소리가 거리에서 울려 시체를 향한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때마침 병사 몇 명이 사람을 데리고 왔다.

“증언에 의하면, 저 시체에 해를 가한 작자들이라고 합니다.”

계중에 맨 앞에 선 사람이 말했다.
부관은 그 말을 들어 영주에게 고스란히 전달했다. 영주는 그들을 감옥으로 까지 잘 보내라고 말했다.
그때 유족（遺族）이 길가에 있던 돌을 들어 힘껏 던지려고 했다.
말이 새어 유족에게도 들린 모양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시체 옆에 있던 병사가 우연히 보고 곧장 막아냈다.
유족（遺族）인 그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던 어느 어른이 말했다.

“지금 이자들에게 돌을 던지면 그쪽도 죄를 범하게 되오. 살인의 죄가 가볍지는 않소. 그것을 재판하기 전에는 아무런 상해를 가하지 못하오. 화를 삭이시오.”

아무래도 그 어른은 이런 일에 대해서 제법 아는 투였다. 그러나 유족（遺族）의 얼굴에는 아직 거리의 사람들처럼 득시글한 분노가 비췄다. 부관은 영주에게 말했다.

“제가 이번 일을 자세히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영주님은 성에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이번 일은 척 봐도 일이 심상치 않은 걸요. 손이 필요하진 않나요?”
“아닙니다. 병사들을 시키면 될 일이니 큰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재판은 저도 자리해야 하는 일이니만큼 어느 정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요.”

영주는 한쪽 손으로 더듬더듬 옷자락을 짓누르고 있었다. 부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부관은 조금이나마 영주가 성장한 느낌을 받아 그리 나쁘지 않았다. 좀 떨리는 눈치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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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 무렵이 되었을 때, 부관은 이미 자기 방에서 일에 대한 처리를 종이에 휘갈겨 쓰고 있었다.
메이 길드에서 발견한 바름의 편지를 보면, 모남을 죽인 것은 바름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이때 바름을 죽인 메이 길드 사람들의 처벌은 어찌해야 하는 것인지 짤막하게 적었다.
또다시 이런 일이 계속 발생하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올바르게 이어나갈 수 있는지를 옆에 붙였다. 또한 사건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종이에 또 덧붙였다.
그 생각을 하고보니 부관은 간단하게 길드를 없애버리면 된다고 여겼다.

애초에 모남과 바름의 사건은 길드끼리의 갈등이 수장에게서 드러난 것이었다. 길드를 없앤다면 이런 갈등조차 생길 일이 없으니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고, 부관은 그렇게 생각하고 아래에 ‘길드 해체’를 썼다.
때를 맞추어 부관의 방에 똑똑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십니까?”
“집사입니다.”

집사는 부관과 눈을 마주하며 편지를 두 통 꺼내었다.

“좀 어수선한 새에 얘기를 해도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편지는 이미 누군가 뜯어놓은 흔적이 있었다.

“오늘 도착한 것입니다. 그런데 내용이 저번과 똑같이 보내 줄 수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부관은 두 손을 깍지하고, 그 위에 자신의 턱을 받쳐놓으며 여린 시름을 냈다. 우려하던 대로 아무도 나서지 않은 것이었다. 집사는 괜히 한 말인가 싶어,

“죄송합니다. 괜히 했나봅니다. 사건이 해결된 다음에야 했어야 하는 말인데......”
“아닙니다. 결론은 얼추 났으니까요.”

그러면서 사뭇 밝은 얼굴을 했다. 집사는 마음에 두지 말라는 의미로 받아들여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집사는 문을 닫고 사라졌고, 부관은 자신이 쓴 ‘길드 해체’를 다시 한 번 봤다. 이때쯤 해서 문이 다시 한 번 열렸다. 집사가 아직 할 말이 더 남은 것인가 싶었던 부관의 생각과 다르게 영주가 찾아왔다.

영주는 부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힐끗 눈빛이 종이를 향했다. 영주는 눈살을 찌푸렸다.

부관은 자기 앞에 놓인 글귀가 많이 휘갈겨 쓰여 보기 어려워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영주는 그런 부관의 생각과는 다른 말로 물었다.

“이게 참으로 옳은 일인가요?”

“예?”
“이건 그렇게 슬기롭다고 생각되지 않아서요."
“어떤 점에서 말입니까?”
“길드란 걸 없애버리면, 그 자리를 대신할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얘기니까요.”

영주의 말에 부관은 잠시 그럴 듯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지만 그리 신경을 쓸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꼭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길드가 없다고 해서 그리 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유야무야 세월이 흐르면 흐지부지 정리되지 않겠습니까? 스스로 알아서 다른 걸 찾을 겁니다.”

그러자 영주는 의아하다는 기색으로 말했다.

“그렇지만, 길드가 사라진다는 것은 좋지 못한다고 생각 되어서요. 여태까지 있었던 집단 하나를 해체하면 그것을 관리하기가 어렵지 않나요?”

부관은 또 영주의 말을 들으니, 이렇게 생각할 줄도 아는구나 싶어 마음속으로 대견히 여겼다.

“걱정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행동하는 것이지 결코 우리가 행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길드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로지 그들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굳이 관리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직접 만들고 그들이 직접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러자 영주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다시 한 마디를 했다.

“애초에 우리가 길드를 관리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아요.”
“네?”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알고 미리 다독거린다든가 하는 방법으로 행동했더라면 좀 더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게 아니었을까요? 가령 서로 붙을 일이 있다면 중재해준다든지 하는 식으로요.”

부관은 이런 생각까지는 안 했었다. 잠시 손으로 턱을 받치다가, 짧은 새에 말했다.

“그들만의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 될 일을 괜히 멋대로 행동하다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나름대로 조사를 해보니까, 원래 서로 경쟁을 하는 사이였는데 급작스레 한 쪽으로 정세가 기울어져서 나타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자 영주는 헛기침을 슬쩍 내면서 말했다.

“그렇게 따지자면 우리는 결국 언젠가 다 죽게 되어서, 굳이 살기 위해서 밥을 먹거나 지식을 쌓는 것은 쓸모없어 지겠죠. 지금 이것만 봐도 그래요. 길드도 해치우지 않고 내버려둔다면 이 일은 자연스럽게 해결 되는 일이 되겠죠?.”

부관은 영주의 생각이 보기보다 대견스러워 머리라도 쓰다듬고 싶었다.
스스로도 길드를 해체하고 나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만 생각했고, 시간이 지나면 이런 일은 사람들 사이에서 잊게 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자신이 생각 못한 것을 생각해서 말해주는 건 좋은 점이었다.

“어떤 방법이 가장 좋다고 보십니까? 영주께선.”

부관이 이번엔 영주에게 물어봤다.

“우리가 길드에 어느 정도 관여한다면, 그렇게 하면 문제가 있어도 어떻게 할지 대처할 때 편하지 않을까요?”

부관은 영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언가 부족한 느낌을 받았다.

“단순히 그렇게 되었을 때.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는 곳에서 어떤 싸움이 일어날 생각도 하셔야 합니다. 어두운 거래도 분명 있습니다.”

영주는 그 말을 들으면서 잠시 머리를 또 숙였다. 말을 천천히 하면서 생각난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내일 까지 제가 한 번 생각해보고.......아, 재판은 그냥저냥 지나갈 것 같아요.”
“네?”

부관은 영주의 말에 한 번 되물어 봤다.

걱정하던 눈치였던 재판이 그냥저냥 지나간다는 것은 내색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설렁설렁 행동한다는 뜻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저도 나름 돌아다녀봤어요. 영주처럼 옷을 입고 돌아다니면 말을 잘 들어주지 않아서 낡은 옷을 입고 묻고 다녔어요. 사람들 생각이 다 엇비슷하더라고요. ‘모남을 죽인 것은 바름이니 그 죗값을 받았다’고요. ‘너무 심한 벌을 주는 건 좀 아니지 않겠느냐’고 덧붙이더라고요. 그런 쪽에서는 허술하게 해도 될 것 같아서요.”

부관은 그 말을 들어보니 나름 대견했으나, 어수룩해서 악용하기 좋은 사람처럼 느껴져서 말했다.

“그런 말에 너무 휘둘리면 오히려 곤란해지실 것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영지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은 백성인 걸요.”

하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런 얼굴을 하는 영주의 모습은 전형적인 이상향이 아니었기에 말을 더했다.

“웃음을 삼가셔야 합니다.”

영주는 그 말에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방을 나서기 전에 몇 마디를 했다.

“낮에 있었던 말은 새가 듣고 밤에 있었던 말은 쥐가 듣는다죠? 혹시나 싶으니까 기록을 해두지 말아주세요.”

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부관은 철없던 사람이 이렇게 바뀌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한 눈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