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오두막집 （집 앞 / 저녁）

해가져 어둑해진 하늘을 바탕으로 옅은 노을이 환상적으로 색칠되어 있다. 길쭉하게 세워져 있는 솟대 위에 앉아 쉬고 있는 나무새들.

구마 일행이 대문 앞에 서 있다. 대문 처마 밑에는 금줄이 걸려있고, 담 너머로 사당같이 생긴 건물이 보인다.

대문 가운데 3태극 문양이 있는 곳을 주먹으로 힘껏 두드리는 구마. 안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다.

           아라                           아무도 없나 봐.

           구마                           비켜봐. 부수고 들어가자.

구마 기압소리와 함께 힘껏 발길질을 하려는 찰라, 문이 열리고 어떤 노파가 얼굴을 내민다. 깜짝 놀라 뒤로 넘어지는 구마.

           노파                           누가 남의 집 앞에서 소란이야?

대문 앞에 지팡이를 든 한 노파가 서 있다.

백발의 머리에 회색 저고리를 입었고, 귀에는 옥 귀걸이를 하고 있다.

나이든 노파이지만 자세가 꼿꼿하고 눈빛이 반짝이는 것이 예사로운 사람 같지는 않다.

           구마                           （독백） 뭐야……? 노인네 혼자 사는 건가?

           어머니                        （난처한 표정으로 애써 웃으며） 저…… 그게……

구마                                     （자신 만만한 표정으로） 어머니, 조금이라도 말주변이 좋은 제가 이야기해 볼게요.

（노파 쪽으로 다가가 진지한 표정으로） 지금 저 윗마을에서는 전쟁이 나서 잔인한 범족 놈들이 난리를 치고 있습니다. 이런 산골짜기에 어르신 혼자서는 너무 위험해 보이는 군요. （노파의 어깨를 양손으로 감싸며） 이 곰족 최고의 전사가 하룻밤 묵으면서 지켜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느끼한 웃음을 지으며 방백） 나의 필살기인 훈훈한 미소로 결정타를……

노파                           （무시하는 표정으로 뒤돌아 문을 닫으며） 거지는 안받네.

더럽고 지친 얼굴이 마치 거지같은 구마가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구마                                     이…… 이놈의 할망구가…… （주먹을 불끈 쥐며） 그렇다면 완력을 쓸 수 밖에……

어머니                        그만둬 구마야!

멈칫 하여 어머니를 돌아보는 구마. 그 앞에 노파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전히 뒤돌아 서 있다.

어머니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며） 정말 죄송합니다. 제 아들의 무례함을 용서해주세요.

여전히 뒤돌아 보지 않고 듣고만 있는 노파.

어머니                                  전쟁 통에 고향이 불타 갈 데가 없어요.

（부상당한 팔을 잡고 힘들어하는 마루를 보며） 아이의 부상도 점점 심해지고 있고…… 하룻밤만 신세를 지게 해주시면 안될까요?

노파가 고개를 돌려 일행을 한번 훑어본다. 일행 중 피를 흘리며 지쳐 쓰러지기 직전의 마루가 눈에 들어온다.

노파                           흠…… 들어오시게.

#15. 오두막집 （안 / 밤 > 아침）

별다른 가구가 없고 가운데 좌상만 두 개가 있고 한쪽에 침상이 하나 놓여져 있다.

마루가 침상에 누워있고 노파가 약초로 치료 중이다. 가족들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침상 주위에 서서 지켜보고 있다. 마루, 눈을 감은 채 땀을 흘리며 신음한다. 옆에 걱정스럽게 두 손을 모은 채 지켜보고 있는 아라. 노파가 약초를 환부에 바르자 곧 상처가 감쪽같이 아문다.

어머니                        （놀라워하며） 오……! 피가…… 상처가 아물었어!

아라                           （방긋 웃으며） 정말 다행이야!

마루                           （벌떡 일어나 앉아 알통을 자랑하며） 이제 하나도 안 아파!

가족들이 모두 마루를 매만지며 기뻐한다.

노파가 조용히 좌상으로 가서 앉아 차를 따른다.

어머니가 노파 옆으로 다가간다.

어머니                                  （머리 숙여 인사하며） 잠자리도 주시고 아들 치료까지…… 너무 감사합니다.

노파가 차를 한잔 더 따른다. 차 따르는 소리가 조로록. 김이 모락모락.

노파                           （찻잔을 건네며） 자…… 차나 한잔 하시게.

어느새 옆에 와 있는 구마가 날름 차를 마신다.

구마                                     （씩씩한 목소리로） 고맙습니다! （이내 의자에 털썩 앉으며） 근데 할머니 구시에요?

*구시: 무녀, 무당, 주술사 등을 뜻하는 옛말

노파                           왜? 복채라도 챙겨주게?

구마                                     （비꼬는 표정으로） 그지라매요? 그지한테 뭘 바래요?

（문득 뭔가 생각난 듯） 참…… 남쪽으로 얼마나 가야 마을이 나오는지 혹시 아세요?

어머니                                  남쪽에는 아직 전쟁의 손길이 닿지 않은 마을들이 있다고 들었어요……

구마                                     （희망찬 표정으로） 맞아요! 우린 그곳으로 가서 평화롭게 살려고 해요.

노파                                     （오랜 지혜가 가득 담긴 듯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똑바로 바라보며） 참 순진한 양반들이로세…… 사람이 모여 사는 곳에 다툼 없는 곳이 어디 있나? 서로 빼앗고 빼앗기고…… 지배하고 지배당하고…… 그게 인간의 본성인 것을……

말없이 굳은 표정으로 노파를 바라보는 두 사람. 잠시 어색한 시간이 흐른다.

구마                                     （팔짱을 끼고 거드름을 피우며） 거참 부정적인 생각으로 꽉 막히셨네…… 할머니는 그렇게 살다 가세요 그럼. 우린 꼭 행복하게 살고 말 테니까……

노파                                     희망을 못 버리는 것 역시 인간의 본성이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기도 하고. 인생을 흥미롭게 만들어 주거든.

（찻잔을 들며） 의지가 가상하니 내 하나 알려주지. （차를 한잔 마시고） 여기서 가까운 곳에 피난민들이 모여 사는 난민촌이 있네. 그곳에 가서 도움을 요청해 보게. 아무 연고도 없는 남쪽나라로 무작정 가는 것 보다야 훨씬 나을 거야.

구마                                     （눈을 치켜 뜨며） 설마 도적놈들에게 팔아 넘긴다던가…… 그런 속셈은 아니겠죠?

어머니                        （창피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썩소를 보이며） 구마야. 그만~

구마                                     （진지한 표정으로 어머니의 귀에 속삭이며） 세상이 험해서 어머니, 아무나 막 믿으면 안돼요. 우리 어머니는 너무 순진해서 문제라니까

노파                                     （초롱불 쪽으로 걸어가며） 전쟁 통에 많이 놀랬나 보군 사람을 그리 못 믿는 걸 보면

연꽃 모양의 초롱불 잔의 불빛이 노파의 얼굴을 비춘다.

노파                                     한숨 푹 자고 나면 기분이 좀 나아질 거야. （입김을 불어 불을 끄며） 이제 좀 쉬게.

깊은 밤하늘 보름달 양 옆으로 북두칠성과 남두육성이 보인다.

밤하늘이 서서히 밝아짐.

먼 산 너머 일출의 햇살이 매화나무로 둘러 쌓인 오두막을 환하게 비춘다. 버드나무와 솟대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있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구마의 얼굴을 비춘다. 구마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깬다. 침상에서 어머니와 마루, 아라가 서로 얽혀서 자고 있는 모습이 평화스럽다. 가족들이 자는 모습을 보며 미소 짓는 구마. 시원하게 기지개를 쫙 피는 구마가 협탁에 놓여있는 쪽지를 발견한다. 쪽지를 펴서 보는 구마.

쪽지내용                                난민촌에서 내 이야기를 하면 의심 없이 받아줄 걸세, 나중에 또 보게 될 걸세. 몸조심 하게

구마                                     （독백） 거 참…… 이상한 할머니야……

（가족들을 향해 박수를 치며） 자~자! 모두 일어나세요! 아침이 밝았습니다!

기지개를 피며 일어나는 가족들.

#16. 오두막집 （밖 / 아침）

구마, 어머니, 마루 오두막집 앞에 모여 서 있고, 뒤에 아라가 하품과 기지개를 하며 걸어 나온다.

구마                           그런데, 저런 정체불명의 노인 말을 믿어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어머니                        어쩔 수 없지…… 선택의 여지가 없잖니……?

           마루                           （아팠던 팔을 불끈 들어 올리며） 이렇게 치료도 해주고……

           아라                           나쁜 할머니는 아닌 것 같아~

구마                                     （허리에 양손을 언고 먼산을 바라보며） 좋아! 결정했다! 목적지는 난민촌!

언덕 위에 있는 오두막집에서 나와 낮은 산길을 내려오는 구마 일행이 멀리 보인다.

괜찮게 읽으셨다면 네이버 웹소설 버전도 함 보시고 추천좀 부탁드립니다. 추천이 너무 없으니 챙피하네요. ^^;

http://novel.naver.com/challenge/detail.nhn?novelId=577720&volumeNo=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