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불타는 곰족 마을 （새벽）

뻣뻣한 호랑이 수염에 팔 다리에도 호랑이 무늬를 한 사나운 모습의 범족 병사가 마을 주민을 거칠게 걷어찬다. 이내 상투를 잡고는 야만스러운 만곡도로 목을 그어버린다. 이를 집 뒤에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구마의 동생 마루.

마을 여기저기 집들이 불타고…… 압도적인 병력의 범족 병사들이 소수의 곰족 병사들과 주민들을 학살하고 있다. 방화와 시체들로 마을 전체가 아수라장이다.

피 칠갑을 한 범족 병사 한 명이 마루 쪽으로 걸어온다. 얼른 집 뒤로 몸을 숨기는 마루. 범족 병사가 무슨 낌새를 눈치 챘는지 마루가 있는 곳을 의심스럽게 바라온다.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죽은 듯이 숨어 있는 마루 바로 앞까지 병사가 온다.

마루가 숨어있는 집 뒤쪽으로 돌아오는 순간 다른 동료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돌아 서는 범족 병사.

           마루                           （한숨） 휴~

#11. 구마의 집 （안 / 새벽）

재빨리 문을 닫고 빗장을 걸어 잠그는 마루. 어머니와 아라가 놀란 눈으로 쳐다본다.

마루                          （한숨을 몰아 쉬며, 다급한 목소리로） 밖에 온통 범족 놈들이에요! 어서 숨어야 해요!

아라                          （엄마에게 안기며） 무서워 엄마......!

어머니                       （아라를 품에 안으며） 조금만 숨어있으면 우리 병사들이 도우러 올 거야.

쿵! 밖에서 무엇인가 문을 세게 두드린다. 겁에 질린 눈으로 문 쪽을 바라보는 가족들.

쿵! 쿵! 쿵! 점점 강해지는 소리.

           마루                           어서 숨어요!

어머니와 아라는 서둘러 침상 뒤로 숨고, 마루도 숨으려는 찰라 문이 부서지며 범족 병사 한 명이 들어온다. 여러 명을 벤 듯한 칼에서는 피가 뚝뚝 흘러 내린다.

범족병사                      （재미 있겠다는 듯이 웃으며） 곰돌이 한 마리가 숨어있었군.

마루                            （정면을 응시하며 침상 쪽 어머니에게） 제가 시간을 좀 끌어 볼게요…… 거기 가만히 계세요

어머니                        마루야……!

마루                            （싸우려는 자세를 취하며） 곰돌이인지 불곰인지는 두고 보면 알겠지…… 곰의 힘!

마루의 몸이 곰의 기로 빛난다.

           범족병사                      호오……

마루가 범족병사를 향해 힘껏 뛰어오르며 강하게 한방 먹이려는 찰라.

마루보다 덩치가 3배는 되는 범족병사가 손을 뻗어 마루의 목덜미를 터억 잡아버린다.

           마루                           （순간 숨이 막혀 동공이 풀리며） 크윽……

이내 다시 눈을 똑바로 뜨고 이를 악 물며 곰의 기를 모은 손으로 범족 병사의 얼굴을 할퀸다. 의외의 반격에 살짝 당황한 범족병사의 얼굴에 발톱자국이 깊게 패이며 피가 흐른다.

범족병사                      （미소를 띠우며） 호오…… 잔재주도 부릴 줄 아는군…… 좀 더 놀아주고 싶지만 바쁘신 몸이라…… 이제 그만 죽어줘야겠다.

범족병사, 한 손으로는 여전히 마루를 들어 올린 체, 다른 한 손에 쥔 만곡도로 마루를 베려는 찰라.

           어머니                        （다급히 뛰쳐나오며） 안돼! 마루야!

           아라                           엄마......!

하지만 범족병사 꼬리를 가볍게 휘둘러 어머니를 제압한다. 채찍에 맞은 듯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어머니.

마루                           엄마!

범족병사                      어미 곰도 숨어있었군. 세끼부터 손보고 놀아줄 테니 기다리거라.

범족병사가 마루를 얼굴 가까이까지 들어올려 노려보며 미소 짓는다.

마루는 이미 눈이 반쯤 풀린 상황. 만곡도는 마루의 베를 서서히 누르고……

푸욱 하며 뚫리는 소리. 눈을 번쩍 뜨는 마루.

하지만 베를 뚫은 것은 만곡도가 아닌 곰의 기에 싸인 사람의 손. 촤악 하며 범족병사의 몸통이 두 갈래로 갈라지고, 그 뒤로 피칠갑을 한 구마가 서있다.

놀라서 바라보는 어머니, 마루, 아라.

구마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지쳐 보이지만 애써 웃음지으며） 꾸물거릴 틈 없어. 어서 여기서 빠져나가자.

#12. 불타는 곰족 마을 （새벽）

집 밖으로 나온 구마 가족. 마을은 이미 불바다. 범족병사들로 가득하다.

구마 가족 앞으로 5~6명의 험악한 범족 병사들이 막아 선다.

구마                           내가 길을 틀 테니 마루는 어머니를 모시고 뒤따라 와.

마루                           알았어 형

소리를 지르며 달려 드는 범족병사들. 소리를 지르며 달려나가는 구마와 마루. 적을 향한 구마의 손이 곰의 기로 감싸인다.

（시간 흐름） 땅바닥에서 아직 살아 꿈틀대는 몸뚱이를 찌르는 대도.

그 옆으로 강철 부츠를 신은 코끼리처럼 강하고 두꺼운 다리가 보인다.

저 앞으로는 여기저기 불타버린 집들이 보이고 시체들이 널 부러져 있으며, 눈인지 재인지 모르는 가루들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시체로부터 대도를 뽑아 올리는 거한. 무거운 철 갑옷을 입고 허리에는 커다란 호랑이 얼굴 모양의 버클을 차고 있으며, 검은 머리는 사자 같이 사방으로 뻗쳐있다. 이마에는 호랑이처럼 王자 모양의 문양이 있다. 범족 최고의 맹장 바시이다.

           바시                           이제 정리가 다 되었군……

바시 앞으로 말 한 마리가 달려오더니 멈추어 선다. 우사히가 말에서 내린다.

바시                           우사히! （다가오는 우사히를 보며 반갑게） 그쪽도 정리가 다 된 모양이군?

무시하고 지나쳐 버리는 우사히. 범족의 여왕 시우칸모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호피무늬 의자에 기대 앉아 있는 시우칸모의 뒷모습. 머리 위부터 길게 내려진 보라색 베일너머 검고 짓은 머리카락이 비춰 보인다.

우사히                         별동대는 물론이고 뒤쫓아오는 본대도 매복으로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더 이상 공격해오기는 힘들 것입니다.

시우칸모의 보라색 입술이 미소를 띠며 한마디 내뱉는다.

시우칸모                     좋아.

백호 두 마리가 끄는 수레에 기대어 앉아 다리를 꼬고 앉아있는 시우칸모. 각선미가 돋보이도록 옆 트임 된 보라색 민소매 원피스가 요염함을 더해준다.

           시우칸모                     동쪽지역도 이제 거의 점령한 것이나 다름없군. 나는 본국으로 돌아갈 것이니 너희 둘은 잔당들을 처리하고 오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