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곡 아래는 곰족 기마대가 장애물에 가로막혀 우왕좌왕 하고 있다.

별빛 반짝이는 밤하늘. 협곡 위로 활을 든 범족 복병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가운데 조금 전 그 부츠의 주인공이 서 있다. 짙은 청색의 갑옷으로 가슴과 하반신 부분을 보호하고 있으며, 그 사이 복부 부분은 사슬갑옷으로 무장하여 움직임이 편해 보인다. 긴 부츠 위로 보이는 허벅지 부분에는 범족의 특징인 호랑이 무늬가 문신처럼 새겨져 있고 긴 꼬리는 공격성을 띄우며 하늘을 향해 서 있다. 범족 최고의 여전사 우사히다.

우사히                        （곰족을 내려다 보며） 호호…… 역시 걸려들었군 멍청한 곰족 놈들…... 궁수!

더욱 활시위를 당기는 궁수들. 그녀의 입가에서 흘러나오는 한 마디.

           우사히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 조준…… （큰 소리로） 발사!

일제히 활을 쏘는 범족 궁수들. 협곡 위로 밝게 빛나는 별들이 모두 가려질 정도로 화살이 하늘을 뒤덮는다. 장애물 앞에 우왕좌왕 하는 곰족 기마대를 향해 맹렬히 쏟아지는 화살들.

화살 한발이 곰족 장군을 향해 날아간다. 화살은 장군을 살짝 빗나가 옆의 병사를 맞추어 떨어뜨린다. 당황하는 장군과 기마병들.

           병사3                          매…… 매복이다.

말하기가 무섭게 화살에 맞아 떨어진다. 그 바로 뒤로 놀란 표정의 구마 보인다.

계속해서 화살을 쏘아대는 범족 궁수들. 여기저기 화살에 맞아 쓰러지는 곰족 병사들.

장군                           （날아오는 화살을 쳐내며） 대열을 지켜라!

기마병들이 방패를 들어 막으려 하지만 기마병용 작은 방패로는 역부족, 계속 쓰러지는 병사들. 협곡 속에 갇힌 곰족 기마병들은 오도 가도 못하고 화살세례를 받는다.

구마                          （장군에게 날아오는 화살을 하나 쳐내며） 이러다가 전멸하겠어요. 여기서 빠져나가야 합니다!

          우사히                        바위를 굴려라!

사람 키보다 더 길다란 지렛대로 커다란 바위들을 굴리는 범족 병사들. 협곡 위에서 조용히 떨어지기 시작하던 바위들이 점점 요란한 굉음을 내며 집채만한 크기로 뒤덮는다.

엄청난 크기의 바위 하나가 장군 앞을 향해 맹렬히 굴러 내려오고, 놀라서 얼어붙은 장군은 손으로 얼굴을 겨우 가리는 정도의 반응이 고작이다. 축소된 동공으로 바위가 점점 커지는 것이 보인다.

바위는 장군의 바로 앞에 떨이지고, 이에 놀라 날뛰는 말에서 떨어지는 장군.

           구마                           （땅에 내동댕이쳐지는 장군을 돌아보며） 장군!

위에서 이를 내려다 보고 있던 우사히, 화살을 하나 빼어 들어 장군을 겨냥한다. 날아가는 화살. 겨우 일어나 비틀대는 장군. 절대 절명의 순간.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구마가 창으로 화살을 쳐낸다.

구마                           （장군을 일으켜 세우며） 어서 여기서 빠져나가야 합니다.

장군                           （주변에 계속 쏟아지는 화살을 보며） 후퇴…… 후퇴하라!

구마와 장군, 서너 명의 병사들이 창으로 화살을 막으며 뒷걸음질로 서서히 후퇴한다. 몇 발의 화살이 그 앞으로 산발적으로 떨어진다. 협곡 위에서 계속 활을 쏘는 범족 병사들. 우사히가 퇴각하는 곰족 병사들을 말없이 내려다 보고 있다. 구마 분한 표정으로 우사히를 노려 본다.

#9.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숲 （밤）

낮은 야산으로 둘러 싸인 침엽수가 무성한 숲 속. 먼 동이 트려 하고 그 위로 샛별이 반짝인다. 반쯤 무장해제된 10며명의 패잔병들이 서로를 부축하며 걷고 있다. 너덜너덜 해진 깃발들이 처참했던 전투에서의 패배를 보여주는 듯 하다. 탈진한 듯 힘들어 하는 병사들이 겨우 겨우 발걸음을 내딛는다. 풀썩 쓰러지는 한 명의 병사. 선두에 서서 걸어가던 장군이 멈춰서 돌아본다. 보이는 것은 처참하게 지치고 부상당한 병사들. 더 이상 행군은 무리라고 판단된다.

           장군                           잠시 쉬었다 간다.

병사들이 삼삼오오 나무에 기대어 퍼져 버린다.

장군                           여기가 어디쯤이지......?

구마                            （앉은 채로 장군 쪽을 바라보며） 마을 북쪽 숲입니다. 제가 마을로 가는 샛길을 알고 있습니다. 서둘러 가면 반 시진 안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신창이가 되어 널브러져 있는 병사들은 움직이기 조차 힘들어 보인다.

장군                            이 병사들로는 무리다. 본대와 합류하여 전열을 가다듬은 뒤 역습한다.

구마                             （다소 흥분하여 일어서서 장군을 내려다 보며 항의하듯） 하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합니다! 지금 마을이 불타고 있는 것이 안보이십니까?

장군                             （역시 벌떡 일어서 언성을 높이며） 10여명의 부상병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모두 개죽음 당할 뿐이다!

구마                            （더욱 흥분하여） 마을에서는 우리 가족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장군                            （단호한 목소리로） 지금 내 명령에 불복하겠다는 건가!

더 이상 대꾸하지 못하고 장군을 노려보기만 하는 구마.

장군                          （다시 나무에 기대 앉아 시선을 회피하고 눈을 감으며） 잠시   눈이나 붙여 둬. 이각 후에 출발이다.

（잠시 시간 흐름） 멀리 산 너머 동이 터온다.

           병사2                          （목소리만） 장군! 구마가 사라졌습니다!

나무에 기대 잠들었던 장군, 목소리에 잠을 깨 눈을 뜬다.

병사1                          （난감한 표정으로） 구마 이 자식…… 못 참고 결국 탈영을……

옆에 병사2 또한 난감한 표정으로 장군을 바라본다.

병사1                         장군, 화장실이 급했을 수도 있고…… 제가 찾아보고 오겠습니다.

 뒤돌아 서서 듣고 있던 장군이 돌아보지도 않은 채로 말한다.

장군                           탈영병 따위에 신경 쓸 겨를 없다. 바로 본대와 합류하러 출발한다.

숲 속을 열심히 달리고 있는 구마.

구마                           （독백） 탈영이라니…… 꼴이 우습게 되었군……

속도를 높여 숲길을 질주하는 구마, 멀리 불타는 마을이 보인다.

구마                           （독백） 조금만 기다려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