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곰족과 범족 국경지대 갈대 숲 속 （늦은 오후）

여기저기 흙이 묻은 지저분한 가죽신발이 갈대 줄기를 밟자 ‘뚜둑’하는 소리가 나며 정적을 깬다.

​가죽 갑옷 사이로 보이는 탄탄한 가슴근육, 두껍고 거친 손으로 꽉 움켜진 창. 헝클어진 머리를 끈으로 대충 묶어 맨 젊은 용병.

​구마라는 이름의 곰족 출신 용병이다.

​그 뒤로 두서명의 용병이 보이고, 어깨 높이까지 자란 갈대 숲에 은신한 채 수색을 하고 있다.

​벌레를 쪼아 먹는 새 한 마리. 이들의 발걸음에 깜짝 놀라 날아오른다.

​연이여 여기저기 갈대 숲 사이 숨어있던 십 수 마리 새들이 요란하게 날아오른다.

구마                     뭐.. 뭐야? 깜짝 놀랐잖아?

장군                      （손을 들며） 멈춰

갈대 숲 사이로 숨어있던 10여명의 곰족 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병사들 뒤로 해가 지려는 듯 옅은 주황색 노을이 낮게 깔려 있다.

장군                     수색은 여기까지 한다. 모두 본진으로 복귀한다.

부스럭거리는 소리. 장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전방의 갈대 숲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병사1                    뭐.. 뭐지?

병사2                    호.. 혹시 범족 놈들 아닐까요?

병사들은 장군의 지시를 기다리는 듯 그를 바라본다. 잠시 생각하는 장군.

         장군                      당황하지 말고, 조용히 철수한다.

 그 순간 누가 말릴 틈도 없이 앞으로 튀어나가는 구마.

구마                    （장군 옆을 지나가며 한 마디 툭 던진다） 뭐에요? 겁먹으신 거에요? 확인할 건 하고 가야죠!

장군                    자.. 잠깐! 그쪽은 적진이야! 적들이 얼마나 있을지 모른다고!

구마                    （뒤도 돌아보지 않으며） 많을수록 좋죠! 두당 얼마나 쳐줄지나 생각해 두라고요!

                                     곰의 힘! （바람에 머리를 날리며 달려가는 구마의 몸이 강력한 기의 아우라로 감싸인다）

풀숲 사이로 사라져 버린 구마를 멀뚱히 바라보는 일행.

잠시 시간이 흘러 해가 거의 저물어 간다. 병사 한 두 명은 기다리다 지쳐 선 채로 졸고 있다. 전방 풀숲 사이로 부스럭거리는 소리.

병사1                   （침을 닦으며） 응?

장군                     뭐.. 뭔가 나타났다.

더 가까워 지는 부스럭거리는 소리.

장군                     오.. 온다.

긴장해서 창을 움켜쥐는 병사들. 풀숲 사이로 던져지는 정체불명의 괴물머리.

         병사들                     히익!

         장군                        뭐.. 뭐야 이건...... 돼지머리?

풀숲에서 모습을 들어내는 구마. 이윽고 그의 뒤로 질질 끌려오는 죽은 멧돼지가 보인다.

구마                      젠장. 범족 놈들이 아니더라 구요. 대신 안주거리가 생겼으니 오늘은 고기 안주에 거하게 한잔 합시다.

장군                      저.. 저 자식 도대체 뭐 하는 녀석이야?

#3. 회상 （삽화）

배경 없이 검은 화면

         구마 （내레이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용병이다.

（삽화） 농사, 목수일, 탄광일 하는 구마의 모습이 화면에 3등분 하여 나타난다.

구마 （내레이션）        처음에는 농사에, 목수일에, 탄광 일도 해 봤지만.

（삽화） 지친 얼굴을 한 구마가 고용주로부터 엽전 몇 개를 받고는 더 피곤한 얼굴을 한다.

（삽화） 손바닥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엽전 3닙

구마 （내레이션）        이 길은 나 같은 인재가 갈 길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

（삽화） 칼을 쥔 손

            구마 （내레이션）       그래서 용병이 되기로 했지!

（삽화） 온 몸에 여우 목도리를 두르고 패션모델 같은 포즈를 과하게 취하는 구마.

   구마 （내레이션）        첫 의뢰로 청구국의 골치거리인 구미호를 잡았는데, 그 꼬리로 목도리를 만들어 팔았더니 여인네들 사이  에서 여우 목도리가 대 유행을 하더라고.

（삽화） 강가에서 구마가 쏜 활에 눈을 맞고 고통스러워 하는 하백 （상반신은 인간, 하반신은 용의 모습）

구마 （내레이션）        하백족과의 전투에서는 그의 왼쪽 눈을 맞추었지. 덕분에 그쪽 동내에서 무한정으로 물고기를 공급받아서는 다른 곳에서 되팔아 재미 좀 봤지.

（삽화） 바닷가, 해태를 타고 화살로 멀티샷을 날리는 구마. 해변에서 활을 맞고 쓰러지는 왜구들.

구마 （내레이션）        저 멀리 왜나라 원정 길에서는 어땠는지 알아? 동해바다 한복판에서 태풍을 만나 난파했는데…… 나 혼자 해태를 잡아 타고 동해바다를 건너서 왜구들을 모두 퇴치해버렸다고.

#4. 곰족 병영의 식당 막사 （안 > 밖 / 밤）

왼쪽 눈에 칼자국이 있지만 훈남스럽게 잘생긴 구마가 살짝 미소를 띤 채 정면 （관객）을 응시하며 말한다.

구마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냐고?  몰라 물어? 당연히 돈 때문이지!

막사로 지어진 지저분하고 어두침침한 식당에 서너 개의 식탁이 놓여있다. 그 중 한 곳에서 구마가 3~4명의 동료들에게 자신의 무용담을 열심히 떠들고 있다. 식탁에는 막걸리와 낮에 잡은 멧돼지 수육과 머리고기가 안주로 올려져 있다.

병사1                    （다소 거드름을 피우며） 자네의 허풍담은 언제 들어도 재미있어.

병사2                    암~암~ 곰족 최고의 이빨이지~

병사3                    난 해태 타고 왜놈 퇴치하는 부분이 제일 맘에 들어. 창의적이랄까?

병사2                    자넨 용병보다는 이야기꾼으로 진로를 잡았어야......

구마                      （허탈하듯이） 이 사람들이~ 사람을 완전히 허풍쟁이로 보네~

병사1                    （술잔을 들며） 자~ 자~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거리인데, 술이나 한 잔 하자구~

다 같이 건배를 하고 웃고 떠들며 환담을 이어 나간다. 시끌벅적 한 막사. 잠시 후 장군이 막사의 문을 확 젖히고 들어온다.

장군                      이제 취침시간이다! 모두 숙소로 복귀하도록!

술에 취해 볼이 빨개지고 눈이 풀린 구마와 병사들이 장군을 바라본다.

（막사 밖） 구마와 병사들이 서로 어깨 동무를 하고, 트림을 하며 막사 천막을 젖히고 나온다.

           구마                       어~ 취한다.

달 밝은 밤, 넓게 자리잡은 군영에 막사들이 촘촘하게 늘어서 있고, 그 사이 사이 세워져 있는 화톳불들이 은은하게 빛을 발한다.

구마                       （군영을 내려다 보는 배경에 목소리만） 다들 좋은 꿈들 꾸라고~

병사1                     （배경에 목소리만） 꿈속에서 우리 꽃분이나 만났으면 좋겠구먼~

           병사2                      꿈에서 볼 애인도 있고, 복 받은 놈 같으니라구……

#5. 본진 내 막사 （안 / 밤）

막사 안에 구마를 포함한 4명의 병사. 구마는 팔베개를 한 채 무언가 생각 중이고, 나머지 병사들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서 요란하게 코를 골며 콜아 떨어져있다. 병사1이 옆에 누워 있는 병사2를 껴 않는다.

병사1                      （잠꼬대） 꽃분아~ 보고 싶었어~ 음냐…… （뽀뽀를 하려고 입술을 쭉 내밀며）     오빠 믿지? 음냐…… 이리 와봐~ 괜찮아~ 음냐……

           병사2                      （잠꼬대） 사.. 살려주세요……

계속 더듬는 병사1, 손을 꼭 쥐며 흐느끼는 병사2. 구마는 팔베개를 하고 누워 목에건 목걸이를 매만지며 생각에 잠겨있다. 옥으로 만든 곰 4마리 형상의 목걸이가 구마의 4가족을 연상시킨다.

구마                       （목걸이를 꼬옥 잡으며） 내가 왜 이 고생을 하고 있냐고?

#6. 구마의 꿈 / 구마의 고향 마을 （낮）

10살즘 되어 보이는 구마의 동생 아라가 구마가 목에 걸고 있던 그 곰 목걸이를 앞으로 쭉 내민다.

           아라                      오빠~ 우리 보고 싶으면 이거 보면서 우리 생각해~

뒤쪽으로 높은 산이 보이고 그 밑으로 10여개의 움집이 보이는 작은 마을입구에 4명의 사람이 모여있다. 구마가 서 있고 맞은편에 남루한 옷차림을 한 40대 중반의 어머니와 13살즘 되어 보이는 남동생 마루 그리고 여동생 아라가 서 있다.

           구마                     （목걸이를 받으며） 그래~ 아주 잘 만들었구나. 꼭 간직할게.

어머니                  （눈에 고인 눈물을 훔치며） 얘야, 몸조심 하고 밥 잘 챙겨먹고 건강해야 한다.

구마                     걱정 마세요 어머니. 꼭 돈 많이 벌어서 돌아올게요.

그럼 우리 네 식구를 위한 집도 사고, 한집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어머니                  （구마의 얼굴을 매만지며） 돈보다는 건강이 최고란다, 무엇보다 네 몸부터 챙겨야 한다 아가.

구마                     （어머니의 손을 잡으며） 참 어머니도, 언제까지 아가에요. 너무 걱정 마세요.

마루                     （아라의 어깨를 감싸며） 형. 아라는 내가 잘 돌볼 테니까, 부자 돼서 돌아올 때 나 멋진 말 한 마리 꼭 사줘야 돼~

구마                     （웃으면서 마루의 머리를 흩트리며） 알았다 욘석아.

                                      （다시 어머니를 보며） 이제 가볼게요.

                                      （큰절을 하며） 그 동안 몸 건강히 계셔야 돼요……

멀리 석양 아래로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며 떠나는 구마. 그를 보며 손을 흔드는 식구들. 구마가 두 번 세 번 뒤를 돌아보고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준다. 그들을 뒤로 한 채 고개를 돌린 구마의 눈에 깊은 슬픔이 고인다.

#7. 본진 내 막사 （안 > 밖 / 밤）

컴컴한 배경. 점점 커지는 종소리, 매우 요란해진다. 잠자는 구마의 얼굴이 보이고 눈에는 눈물 한줄기가 흘러 내린 흔적. 눈을 번쩍 뜨는 구마,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허겁지겁 신발을 신는 병사, 무기를 챙기는 병사, 매우 부산하다.

구마                     （벌떡 일어나 병사1을 보며） 무슨 일이야?

병사1                    （주섬주섬 신발을 신으며, 다급한 목소리로） 적이 침입했나 봐!

                                       （막사 밖으로 뛰어 나가면서 구마를 돌아보며） 당장 장비 챙겨서 집합하라는 명령이야.

           구마                     적?

구마 막사 천막을 세게 젖혀 열고 밖을 본다. 요란한 함성 소리와 북소리. 멀리 다급하게 지휘하는 지휘관이 보이고, 여기저기 삼삼오오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병사들. 구마 옆으로도 두 명의 병사들이 창을 들고 지나쳐 간다. 구마 그 중 한 명을 두 손으로 잡아 세우며,

          구마                     이봐! 잠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병사                     범족 놈들이 뒤통수를 쳤어!

                                     （다시 뛰어가며） 이곳 본진을 우회해서 직접 마을로 쳐들어 갔대!

          구마                     （충격을 받은 듯 혼잣말로） 뭐.. 뭐라고? 마.. 마을로 침입?

어디로인지 급하게 뛰어가기 시작하는 구마

          구마                     （독백） 어머니……! 마루! 아라야……!

곧 앞에 감시 탑이 나타나고 급하게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구마. 탑 위에 도달하여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 마을 쪽을 바라본다. 마을이 군데 군데 불타오르고 있다.

         구마                     이런.. 젠장…… 어머니와 동생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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