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군. 무더위에선 구구콘은 어울리지 않다. 효율을 따지자면 뽕따같은 쭈쭈바가….”

“내가 뭘 사든 신경쓰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나는 콘 아이스크림을 집어들곤 계산대로 향했다. 그러자 이 미친 여자아이가 빛보다 빠른 속도로 내 손에 있는 구구콘을 낚아챈다.

“주군. 분명히 후회할 것이다. 소다맛이 싫은가? 과연. 초코맛을 원한 모양이군. 그렇다면 빠삐코다.”

소녀는 당장 구구콘을 갖다놓곤 갈색 쭈쭈바를 내게 내민다. 그것을 바라보다 다시 소녀에게 눈을 맞췄다. 되도록 무섭게.

하지만 녀석은 갸우뚱거리더니 싱긋 웃는다.

“아아, 주군. 그렇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나는 그저 주군이 이 무자비한 여름에서 살아남길 바라는 것 뿐.”

“너 더위 먹었냐?”

나는 얼척이 없어서 가증스런 소녀를 이리저리 살펴봤다.

마트의 전광 때문인지 반짝거리는 검은 머리카락. 나를 향해 바라보는 맑은 갈색 눈동자. 미묘하게 붉은 볼. 미소녀인가? 그래, 미소녀군. 근데 그게 어쩌라고.

“흠, 주군은 내 자비가 맘에 들지 않은 모양이군. 그 시원하지도 않고 가격만 비싼 콘을 고집하는 것인가.”

“그 말, 다른 콘 아이스크림 애호가가 듣는다면 너한테 주먹을 날릴지도 몰라.”

사실 나도 너한테 자국이 남을만한 철권을 먹이고 싶거든.

“그런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어째서 비효율적인 아이스크림을 선택하는지 설명을 해주지 않겠다면 나 역시 주군의 앞을 비키지 않겠다.”

소녀는 팔을 大자로 벌리며 아이스크림 코너를 막아섰다. 뇌가 한쪽이 비어있지 않고는 저런 민폐를 부릴 순 없다. 저래서는 다른 손님한테도 피해잖아. 나는 이마를 부여잡다가 결국엔 입을 열었다.

“좋아. 설명해주지. 구구콘 가져와봐.”

미친년한테는 미친놈이 약이랬다. 나는 소녀가 가져온 구구콘을 받아들며 말을 이었다.

“우선 이 원뿔 형태를 봐라.”

“그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일단 콘이란 것이 장점이지. 먹기에도 좋아 보이고 깔끔하게 먹을 수도 있다. 녹아내려도 손에 묻을 걱정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해.”

“그렇군. 하지만 그것만으론 메리트가 적지 않은가?”

“아니, 그것뿐만이 아니지.”

나도 모르게 미소가 나왔다.

“이 콘 밑에는 비밀 초콜렛이 있다고. 그것도 아주 달달한.”

소녀는 ‘달달한’이라는 단어에 반응했다. 그러고는 턱을 아뤄만진다.

“그, 그런가. 그것이 콘 아이스크림….”

“그래. 그것이 콘의 묘미지.”

소녀는 무언가를 상상한 듯 침을 꼴깍 삼키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구구콘을 바라본다.

“알았으면 이제 비켜.”

“으, 으… 그래도 안 된다. 역시 이 여름엔 쭈쭈바가 어울린다.”

그러자 도리도리 고개를 흔들며 나를 노려본다. 포장을 뜯은 구구콘으로 저 쌍판에 찍어버리고 싶어졌다.

“돌겠네.”

내가 먹겠다는데 뭔 상관을 하는 거야. 아니, 애초에.

“너 누구냐?”

생판 처음 보는 녀석이 갑자기 주군, 주군거리면서 아이스크림을 빼앗다니. 더 이상 봐줄 수가 없겠는데. 남한테 시비 거는 게 미소녀의 특권이라도 되나?

“너 누군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야? 우리 초면 아니냐?”

소녀는 내 말을 듣고 잠시 눈을 깜빡거리더니 손뼉을 짝 하고 한번 친다.

“아아, 주군에게는 본인이 초면이겠군. 이해하겠다. 사실 주군을 처음 본 것은 한 달 전이다.”

“한 달 전?”

그동안 스토킹을 해왔단 소리인가.

소녀는 아이스크림 냉장고를 열어 젤루좋아라는 초록색 아이스크림을 꺼내들었다.

“주군은 무려 한 시간마다 한 번씩 이 마트로 와서 아이스크림을 골랐지. 그렇다. 그야말로 아이스크림의 신. 주군만큼이나 아이스크림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품는 사람은 없겠지.”

그러고는 포장봉지를 뜯었다. 수학 교과서에서나 나올 것 같이 정확한 비례로 포장지가 갈라졌다.

“그런 주군의 아이스크림 사랑이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몇 년 만인가 마트에서나 파는 싸구려 아이스크림을 한번 사봤지. 그리고 나는…….”

소녀는 아이스크림을 지그시 바라봤다. 눈빛에 애절함이 담겨있었다.

“나는 미련했던 것이다. 싸구려라도 그런 싸구려에게 그런 가치가 있을 줄이야….”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온 듯한 진심. 마치 유명 영화배우가 연기라도 하는 듯 완벽했다.

“결과, 주군의 아이스크림 사랑은 나에게까지 전파됐다. 그렇게 나는 삶의 의미와 진리를 되찾았지.”

기어코 녀석이 꼭다리를 따기 시작했다.

“여름이란 재앙을 막는 방법은─ 아이스크림뿐.”

그리고 소녀는 싱긋 웃는 얼굴로 그 꼭다리를 내게 내밀었다.

“미소녀 주제에 옳은 소리를 하는군.”

나도 미소를 지어봤다. 하지만 꼭다리를 받아들진 않았다. 공범자가 되기 싫었기 때문이다.

“저기, 손님. 그거 계산하시고 따신 거에요?”

어느부턴가 다가온 매장 직원이 소녀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다.

“아, 아아! 아? 아아….”

녀석은 정신이 혼미해진 듯 나와 직원과 아이스크림을 번갈아 쳐다보며 의미모를 말만 뱉어내고 있다.

“주, 주군. 나에겐 돈이 없다.”

“어쩌라고.”

동공이 점차 흔들리는 범죄자 소녀. 이를 딱딱 깨물더니 내게 다가와 손을 붙잡는다.

“도, 돈 좀 내주어라 주군.”

“싫은데.”

“…….”

앞으로 몇 초 후면 울음 폭발이 나올 것 같은 얼굴이다.

“그러게 돈도 없으면서 왜 뜯었냐.”

여자아이가 찡얼대면서 우는 소린 짜증난다. 나는 손바닥에 참을 인을 3번 쓰고는 주머니에서 500원을 소녀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소녀의 얼굴에서 화색이 돌았다.

“주, 주군. 이 은혜는 꼭 갚겠다. 정말이다.”

“알았으니까 구구콘 사는 거 방해하지마라.”

나는 방해꾼을 지나가 냉장고에서 구구콘을 들고는 계산대로 향했다. 이거 하나 사려고 도대체 몇 분을 소비한 걸까. 나는 계산 후 포장지를 벗기며 매장을 나섰다.

그렇게 한입을 베어물으려는 순간.

“자, 잠시만 주군!”

어느덧 소녀가 다가와 나에게 소리쳤다. 무의식적으로 소리가 난 쪽으로 돌아봤다.

소녀의 볼에 있는 홍조가 더욱 짙어졌다. 눈가에 살짝 보이는 이슬. 바람에 의해 살랑거리는 검은 머릿결. 그러한 것들이 내리쬐는 햇빛에 의해서 더욱 밝게 빛나보였다.

녀석은 미소녀고, 나는 남자다. 고자가 아닌 이상 이러한 광경에 심장이 두근거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냐.”

나는 얼떨결에 대답했다. 그러자 소녀는 내게 다가온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올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나도 모르게 오른쪽 가슴에 대니 박동이 느껴진다. 이봐, 심장은 왼쪽에 있는 게 아니었어?

그렇다. 오른쪽까지 진동이 전해질 정도로 내 심장은 폭발 일보 직전.

어느덧 소녀의 발걸음은 멈췄고, 우리들의 눈은 단 20cm도 안 되어 보이는 거리.

그런 와중에 소녀는 내게 밝은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한입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