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으로 구상 중인 건 꽤 괜찮은 스토리 나올 거 같은데 인물 새로 짜는 게 좀 어렵네요.
그리고 그것도 주인공이 딥다크

프롤로그는 장면 전환 더럽게 많음.
그리고 한 번에 글자가 많이 안 들어가는데 연속 글쓰기 제한 걸리네요 이거.

이건 친구한테 들은 건데 노블엔진 1회 공모전 대상 수상 작품 '엔딩 이후의 세계' 에서 작가 자신의 욕망과 독자들의 요구를 적절히 조화해서 수상했다고 하네요. 그 작가님의 작품을 읽어 본 적은 없지만 그 전에는 어두운 내용이 많았다고 했었나...

----------------



*

그곳은 어두운 방안이었다. 창 하나 나있지 않은 비좁은 방에는 한 군데에 놓인 테이블과 그 위의 등잔불이 가구의 전부였다.
그는 어째서 이곳에 있는가하고 의문을 품었지만, 그에게도 짐작 가는 바가 있기는 하다. 그는 왕국 내에서의 대규모의 무력시위를 주도했었다. 그렇지만 그 자신이 바로 여기, 딱딱하고 불편한 의자에 앉아있게 된 과정은 전혀 기억하고 있지 않다.
얼마 지나지 않아, 덜컥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그곳에서는 한 줄기 빛이 새어 들어옴과 동시에 한 명의, 그의 얼굴에서 힘든 세월의 흔적과, 어쩌면 그 과정에서 생겼을 법한 잔학한 눈빛을 지닌 한 중년 남성이 들어와 그의 맞은 편 의자에 앉았다.
“죄수 번호 115, 국가에 반역해 내란을 일으킨 죄, 선량한 국민들을 선동해 미풍양속을 해친 죄, 거기다가 체제를 부정하는 반동 서적을 소지한 죄, 국가의 공공 기물을 훼손시킨 죄, 관청의 허락을 득하지 않고 벽보를 게시한 죄, 그리고 국가의 원수의 이름을 모독한 죄, 살인죄, 방화죄 등.”
그가 가져왔던 서류를 훑어보며 죄수에게 들으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다른 것은 차치하더라도, 심문을 받는 그의 손으로 사람을 죽이거나 불을 지르지는 않았다. 심문자는 시위 과정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그의 책임으로 돌리려는 거겠지. 심문자가 몇 장 더 서류를 넘겨보며 죄수에게 말했다.
“헤센 왕립 대학교에 재학 중, 졸업도 얼마 안 남았고, 아버지는 하급 귀족으로 시의 보통학교 교사라.”
그리고는 그는 죄수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하찮은 생물을 바라보는 듯한 멸시와 수감자에 대한 우월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는 그는 마주앉은 이에게 모멸적인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왜 그랬어? 가만히 있었으면 나라의 은덕을 입어 출세하는 건 식은 스프 마시기일 텐데.”
인간의 마음은 약하다. 하루에도 수 천 번을 변하는 게 마음이다. 지금 당장에라도 죄수는 그의 행동을 후회하게 될 것 같다고 느꼈다. 그는, 그러기 전에 서둘러 입을 열었다.
“지금의 헤센에는 변혁이 필요하다.”
그가 내뱉은 것은 그 한 마디였다. 그는 그와 뜻이 맞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그는 각 도시에 벽보를 붙이고, 광장에서 혁명 선언문을 낭독했으다. 그를 믿고 따라준 시민들과 함께 관청을 습격하고, 부패한 귀족을 척결했으며, 다른 도시에서 일어난 혁명의 물결과 더불어 수도로 진격했다.
그의 말을 들은 심문관은, 쯧쯧 혀를 차며 약간 고양된 목소리로 그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네가 높은 자리에 가서 바꾸면 될 거 아니야? ‘법’ 이라는 것은 지키라고 있는 거 아니겠어?”
이제 와서 그게 가능할 리가 없다. 어째서 지금까지 그토록 많은 이들이 파면되어 귀족의 지위를 잃어버렸는지 그는 알고 있었다.
“법을 자의적으로 만들어서, 정작 법을 만든 자들은 법의 속박을 받지 않아. 게다가 평민들은 법 조항을 제대로 알 방법조차 없이 일방적으로 억압받을 뿐이야. 그딴 쓰레기 같은 법을 왜 지켜야하지?”
“법은 누군가에 의해 혼자서 마음대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야. 설명 국왕이라도. 귀족 의회와 평민 의회의 적법한 의결 절차를 걸쳐야 하는 거라고.”
하지만 의회 제도에는 허점이 너무 많았다. 평민 의회의 의원을 누가 뽑는지, 그 기준은 뭔지도 알 수 없다. 게다가, 양 의회의 활동이 아예 별개였기에 한 쪽의 단독 의결만으로도 법안이 통과 되었으며, 국왕이 거부해버리면 그걸로 끝이었다. 게다가 귀족들도 의회에서의 의결을 신용하지 않았고, 그 보다는 국왕을 직접적으로 압박하는 것을 신뢰했다.
“이 나라는 규칙과 절차가 사람보다 위에 있나?”
그가 그렇게 말하자, 심문관가 짜증난다는 듯이 지껄였다.
“법과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질서가 붕괴되는 거야. 선대로부터 내려온 규칙에는 이유가 있는 거야. 적당히 죄를 인정하고 포기하면 쉽게 끝날 일이야. 네 뒤에도 여러 명이 있어. 나 굉장히 바쁜 사람이야. 알아들어?”
그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소리쳤다.
“뭐 이 개새끼야!”
그 말을 듣자, 심문관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테이블의 귀퉁이를 돌아 그의 옆까지 왔다. 그는 심문관의 행동을 가만히, 그렇지만 증오에 찬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런 그의 눈에 뒤이어 보인 것은, 그의 안면으로 직격하는 주먹이었다.
순간적인 충격과 함께 그는 의자채로 뒤로 나자빠졌다. 방안에 나무 의자가 나뒹구는 소란스러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는 대응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땅바닥에 뒤통수를 부딪쳤다. 뒤늦게 찾아오는 코의 고통과 함께 코 안이 축축해지고, 머리의 충격으로 정신이 멍해졌다.
“이 새끼가! 배워먹은 놈이라 적당히 봐줬더니 기어올라?”
심문관은 그렇게 외치며 누워있는 그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목으로 넘어오던 코피가 기침과 함께 끈적한 가래와 섞여 입 안에 눌어붙었다.
“켈륵…… 켁…….”
내장에 싸늘한 고통이 감돈다. 심문관은 그리고는 문을 꽝 닫고 바깥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곧바로 뒤이어,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들어왔다.
그 사람은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죄수를 일으켜 의자에 앉히고,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새로이 들어온 심문관은 죄수보다 약간 나이가 많아 보이는 젊은 남성이었다. 죄수는 손수건을 받아 피범벅이 된 코 주위를 닦으며, 그가 하는 말을 들었다.
“115번이시죠? 정보는 대충 살펴봤습니다. 저분이 워낙에 거친 분이셔서…….”
심문관의 얼굴에는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약간 부자연스러운 면이 있었다. 마치, 그 표정 그래도 고정된 것처럼.
“당신은 실패하셨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요.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이제는 포기하시고 편해지세요.”
그는 역시 나는 실패한 걸까, 사람들은 절망하고, 다시금 노예처럼 살게 되는 걸까하고 생각했다.
“당신은 헤센 최고의 엘리트 중 한 명이에요. 교화도 시험을 통과하고, 충성의 맹세를 하기만 하면 제가 바로 사회로 복귀하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당신 같은 인재가 필요합니다.”
그는 교화도 시험에서 마음에도 없는 애국심을 담은 글을 써내려가고, 억지로 무릎 꿇어 맹세를 하면 사회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리 쉽게 끝나지 않을 게 뻔했다.
그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심문관은 뒤이어 말했다.
“당신이 여기서 죽는다고 해도, 세상은 당신을 알아주지 않을 겁니다. 반란군 무리들은 벌써 공포에 질려 해산해 버렸습니다. 당신은 저 무지몽매한 국민들에게, 시간이 지나면 한낱 반역자가 되어 잊혀지겠죠. 저는 당신이 살아남기를 바랍니다.”
목숨을 구걸하기는 쉽다. 단지 몇 마디의 자존심을 버린 몇 마디의 말만이 필요할 뿐이다. 하지만, 그의 입술은 지금 이 순간에도 죽어갈 국민들의 무게가 걸린 듯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당신의 마음은 알겠습니다. 정말 유감이군요.”
심문관은 그렇게 말하며, 잠시 슬픈 표정을 짓고는 그에게 말했다.
“당신의 동료들은 당신을 버렸습니다. 그들은 모든 일을 당신의 탓으로 돌리고는 이내 목숨을 구걸했죠. 그리고, 만약 당신이 살아가기를 원했다면 당신의 기억은 왜곡되었을 것입니다. 이 정보가 제가 당신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입니다.”
그토록 함께 떠들고 웃던 친구들이 그를 버렸다는 것은 충격적이었지만 예상한 일이었다. 그는 동료들을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의문인 것은, 기억의 조작에 관한 것이다. 그런 마법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당신 가족들의 안위는 최대한 노력해보겠습니다.”
심문관은 그렇게 말하고는 일어나서 뒤쪽의 문에 노크 두 번, 잠시 쉰 후 두 번 더 노크를 했다. 그러자 문이 열리고 칼을 찬 병사들이 들어와 죄수의 양 팔을 잡고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런 그에게, 아까의 젊은 심문관이 나지막이 말했다. 아까의 역설적으로 딱딱한 미소가 풀어진 듯, 한 없이 깊은 푸른 눈동자로, 마치 눈물을 흘리는 듯이.
“당신은…….”
그 심문관이 마지막으로 하려던 말이 뭐였는지는 끝내 듣지 못했다. 그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 자신뿐이겠지.

그는 결국 재판조차 받지 못하고 사형을 당할 처지가 되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처형장으로 향하는 길에서, 그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우습구나. 한 때는 모두에게 인정받는 최고의 엘리트였는데.
그는 처형자에게 끌려 교수형 대에 올라섰다. 그의 앞에는 목을 걸만한 밧줄의 매듭이 매달려 있었다. 그는 저기에 목을 집어넣고, 처형자에 의해 내 밑의 발판이 순식간에 하강하고, 낙하 속도를 얻은 밧줄이 쫙 펴진 순간 그 반동으로 그의 목뼈는 부러지고 척수가 망가져 죽을 것이다.
이 정도면 상당히 자비로운 사형 방식이다. 한 때 지식인이라고 불리던 그에 대한 국왕의 선물인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은 그보다 훨씬 더 끔찍하게 죽을 것이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처형자가 그에게 묻자, 그는 주의를 둘러싼 군중들을 바라보았다. 개 중에는 사형식을 처음 보는지 생소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아이도 있고, 익숙한 듯 담담하게 지켜보는 노인도 있다. 속상한 듯 고개를 떨구는 청년이며, 남모르게 눈물을 흘리는 아낙네도 있다. 혹시 그녀의 남편이 끌려갔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지켜보고 있는 사람의 무리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마지막쯤은 폼을 잡고 싶은 것이 남자의 본성일까. 누가 들으면 우스워 보일 지도 모른다.
“만약 누군가가 저에게 분하냐고 묻는다면.”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쉬었다. 군중들이 큰 소리로 말하는 그에게 주목하기 시작한다. 그는 그 모습을 보고 뒤이어 말했다.
“저는 분하다고 답하겠습니다. 제가 분노하는 이유는, 악이 살아남았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저는 마땅히 자기주장을 해야 할 진실과 정의가 침묵하는 것이 두렵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하게 되어버릴 현실이, 너무도 분합니다.”
그가 그렇게 말하자, 웅성거리던 군중들은 이내 숙연해지더니 저마다 고개를 숙였다.
“제가 세상에서 잊혀진다고 해도 좋습니다. 다만 제가 바라는 것은, 저의 죽음이 하찮은 것이 아니었다고, 그 덕에 희망을 이뤄낼 수 있었다고, 먼 훗날, 저의 가족들이 저를 기억하고 있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도록…….”
그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숨이 콱 막혀왔다. 가슴이 미어지는 듯이 쓰라리다. 그의 감정의 물결을 억제하던 제방이 무너진 것처럼, 두 눈에서는 참아왔던 눈물이 메마른 나무 발판에 물을 주듯이 쏟아졌다. 도저히 말을 끝마칠 수 없었다.
그 때, 뒤편에서 처형자가 그의 종아리를 걷어차며 그에게 소리쳤다. 그 덕에 축 늘어졌던 어깨와 숙인 고개를 바로하고, 그는 밧줄에 목을 걸었다.
“이제 끝이다.”
죽음의 뒤에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을 지는 아무도 모른다. 죽음을 경험하지 않았을 때는 죽음이 오기 전이며, 죽음을 경험한 후에는 그걸 느낄 육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의 문턱에서, 그는 묘하게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독백했다.
'힘들었어.’
꿈만을 쫓아 도약하다가 고스란히 추락한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이상의 늪에 빠져 나아가려 하지만, 앞으로 전진 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제자리에서 수렁에 파묻힐 뿐이다.

*

그것은 이젠 그의 기억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어린 시절의 일, 그렇지만 끊임없이 반복되는, 그 자신이 나오는 꿈이었다. 그가 7살 정도였을 때라고 생각한다.
그 겨울의 바깥 날씨는 어린 아이에게는 너무나 잔혹했다. 그는 자신이 왜 이 벌판의 비포장도로를 걷고 있는지도 모른 채로 그저 한발 한발을 내딛을 뿐이었다. 딱딱하게 얼어버린 바닥에 그의 얼어버린 발바닥이 닿아 아파오기까지 했다.
“추워…….”
매서운 추위가 얇은 옷 사이로 파고들어 얼마 남지 않은 작고 여린 몸의 온기를 자꾸만 빼앗았다. 머릿속은 이미 난롯가에서 몸을 녹이고 싶다는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굶주린 위도 격렬한 추위에 더 이상 음식을 넣을 것을 호소하지 않았다.
얼마나 걸었는지 조차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너무도 고요한 이 밤에 아무도 마주칠 수 없었다. 도움의 손길도 더는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그저 그가 지금까지 걷고 있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걸어 나갔다.
이런 상황에서도, 벌써 꽉 차오른 보름달은 정말 아름다웠다. 주변에 아무 불빛도 없기에, 둥근 달은 눈부시게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바라보려 할수록 눈앞은 점점 흐려졌다. 싸늘하게 식어버린 두 다리의 움직임도 서서히 느려졌다.
“도와줘…… 누가 도와줘…….”
그는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것 따위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의미조차도 생각하지 않고 듣는 이가 없는 공허한 그 말을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릴 뿐이었다.
눈꺼풀은 끊임없이 무겁게 감겨왔다. 하지만 그는 이대로 눈을 감으면 모든 것이 끝나버릴 것 같아서 필사적으로 눈에 힘을 주고 다리를 움직였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그의 무의미한 저항을 비웃기라도 하듯, 결국 그는 다리가 맥없이 풀리며 쓰러지는 걸 느끼며 의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

깊고 고요한 밤, 움직이는 것은 오직 근무를 서는 도시의 경비대뿐이었다. 그 중에서도 국경지대에 위치한 디 에네 시의 성문은 경비가 삼엄한 편에 속했다. 성문에는 두 명의 문지기가 한손에는 횃불을 들고 허리춤에 칼을 찬 채로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다. 두꺼운 옷차림과 하얀 입김이 이 밤의 추위를 말해주고 있다.
“이 놈의 군역은 언제 끝나려나…… 어이 신병! 며칠 남았냐?”
그러자 옆에 서있던 아직 앳되어 보이는 신병이 대답했다.
“전역까지 53일 남으셨지 말입니다!”
“시펄 시간 줫도 느리게 가네. 사람을 왜 억지로 불러 모으고 지랄이야? 전쟁하지도 않을 거면서. 이럴 줄 알았으면 외동아들로 태어나는 건데.”
그러자 신병이 얼굴이 새파래지면서 말했다.
“…… 그 말씀 다른 사람이 들으면 조금 위험하지 말입니다.”
“닥쳐 새끼야. 넌 말투가 왜 그따구야?”
신병이 배실배실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 답이 없구만.”
“어? 저기 누구오지 말입니다.”
“뭔 개소리야. 이 시간에.”
선임 병사가 그 쪽을 쳐다보니 실제로 누군가가 비틀비틀 걸어오는 게 희미하게 불빛에 비쳐보였다.
“진짜네…… 길을 잃었나?”
이 날씨에 길을 잃고도 살아있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어이 신병. 모포랑 따뜻한 물이라도 가져와라.”
“알겠지 말입니다.”
신병이 모포를 가지러 간 사이, 남은 문지기는 어이없어하며 그 사람에게 다가갔다.
“참나. 성벽 위의 놈들은 근무 더럽게 대충 서는구만. 이렇게 가까이 올 때 까지 모르고.”
그것은 한명의 소년이었다. 그의 얇은 옷과 앳된 얼굴과 붉은 머리카락, 손에는 검붉은 이물질이 말라붙어있었다. 옷 사이로 보이는 피부에는 시퍼런 멍이 들어있었다.
‘설마…… 피는 아니겠지?’
선임 병사는 가정 폭력을 의심하면서도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며 그 소년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을 걸었다.
“어이, 괜찮아?”
그가 소년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물었다. 소년의 눈동자는 텅빈 것처럼 공허해 의식이 없는 듯 보였다. 의식이 없는 채로 어떻게 여기까지 걸어온 걸까하고 그는 생각했다.
“모포랑 따듯한 물 가져왔지 말입니다.”
마침 신병이 왔다. 나는 일단 모포를 소년의 몸에 걸쳤다.
“흠…… 의식이 없으니까 따듯한 물은 그냥 너 마셔라. 그리고 이 아이는 일단 고아원 문 두드려서 오늘 밤에 좀 재워 달라 그래라.”
“괜찮을까 말입니다. 거기 원장 좀 이상해 보이던데…….”
“어쩌겠냐…… 얼른 가라.”
나는 신병을 보낸 후 혼자 성문을 지키기로 했다. 하지만, 뭔가 찝찝함이 남았다. 뭘까. 이 덧없는 위화감은.
“시발, 왠지 더럽게 찝찝하단 말이야.”
이런 말을 함과 동시에, 나는 그 소년의 어깨에 있던 분명한 온기를 기억해냈다. 이 날씨에 그런 옷차림으로 바깥에 오래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