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절망했다.

가족, 친구, 연인, 그리고 그가 아는 모든 것을 앗아간 ‘그 사건’ 앞에서 무력한 인간은 오로지 절망하고 절망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무너진 세계와 생명력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대지, 마치 다른 세계에 그 홀로 내동댕이쳐진 것처럼 소년은 괴로워하고 탄식했다.

아무 것도 없는 세상에서 죽고 싶다고 몇 천 번이고 몇 만 번이고 계속해서 생각했다. 원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간 세상이, 이제 아무 의미도 없어진 자신의 목숨마저 앗아가 주기를 간절히 원했다.

목을 매달았다. 화염 속에 몸을 던졌다. 건물의 폐허 속으로 뛰어내렸다. 다 부서져버린 화학공장에 들어가 보이는 대로 집어삼켰다. 굶었다. 물을 마시지 않았다. 칼날로 동맥을 그었다.

하지만 몇 번을 시도해도, 항상 그는 다음날 아침 해가 뜰 때가 되면 눈을 떴다.

소년은 어쩌면 자신이, 마치 영화 속 그것처럼 자신이 수많은 인생의 날들 중 한 곳에 갇혀버린 것이 아닐까, 이 세계는 입구와 출구가 없는 닫힌 세계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더 무너져만 가는 도시의 풍경과, 추위가 찾아오기 시작한 날씨가 그것을 부정했다. 평화로웠던, 북적거렸던 소년의 도시가 무너져가고 따뜻했던 기억들이 얼어붙어가는 현실 속에서 소년은 아직도 살아있었다.

불사（不死）.

좋다고 생각했다.

고속도로에서 일어난 20중 차량 추돌사고, 백 명이 넘는 피해자 속에서 혼자 살아남았다.

지하철 화재에서도 그 혼자만 멀쩡했다.

사고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니, 자신이라도 살아남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그래도 그는 이런 현실이, 자신의 이런 능력이 ‘좋다’고 생각했다.

주변에서 쏟아지는, ‘기적의 아이’라는 말과 ‘재앙의 아이’라는 두 개의 엇갈린 시선 속에서도 그는 담담했다. 어린 나이에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무감각했던 것인지, 아니면 그 자신이 죽지 않는다는 것으로 인해 이 세계를 제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던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소년 자신조차도, 그 때의 자신에 대해서는 가물가물한 기억뿐이었다.

그저 어린아이처럼, 자신이 죽지 않는다는 것이 좋았다, 라는 막연한 기억.

하지만 지금 소년은 확신할 수 있었다.

불사는 절대 축복이 아니었다.

이 세계를 구경하며 무료해하던 한 전능한 존재가 절망과 비탄을 보고 즐기기 위해, 무료한 시간을 조금이나마 달래기 위해 선택된 것이 바로 자신이었다. 불사란 아끼는 인형을 소중한 곳에 감춰두는 것처럼, 꼭두각시에게 내려지는 총애이자 저주인 것이다.

그래서 소년은 절망했고, 또 절망했다.

마치 어린아이의 손에 붙들린 벌레처럼 제 목숨을 선택할 권리조차 가지지 못했기에. 살리면 살리는 대로, 죽이면 죽이는 대로 살아야 했기에. 운명을 개척할 수도, 희망을 엿볼 수도 없었기에.

그리고 소년은, 그런 나날들 속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누구보다 불사를 기원하는 남자를.

“너, 나한테 팔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