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과의 전투 끝에 장렬히 산화한 영웅이여, 소원을 말하라. 부활도 좋고, 이대로 영광스러운 전사의 전당으로 가는 것도 좋다. 그대 덕에 마왕을 봉인하고 있던 나의 힘이 돌아왔으니, 그대가 원하는 것은 그게 무엇이든 이루어지리라."

"제가 잊혀지길 바랍니다."

"안식을 말하는 것이냐?"

"이 세상 모든 것과 모든 곳에서 제 존재가 지워지길 바랍니다. 단 한 명 덕에 구원받은 세상이 아닌, 모두의 힘으로 구해낸 세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누구도 저를 기억하지 못하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너는 무엇 때문에 멸시를 당하며, 피를 뿌리며 외로이 걸었느냐? 그저 누구도 모르게 세상을 구하고, 그 공을 세상에 빼앗기기 위해 살았느냐? 너를 무시한 인간들이 경외에 찬 눈으로 너를 보기를 원하지 않느냐? 그동안의 모든 고생이 한순간에 보상으로 돌아오는 나날, 그것을 위한 것이 아니냐?"

"저는 애초에 세상의 일부이므로 세상을 구한 것은 세상입니다. 저를 무시하는 인간들의 시선을 신경 쓴 적은 애초에 없었으며, 그들이 저를 경외하기를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저는 세상의 일부로써 역할을 다하고, 이제 돌아갈 자리를 찾는 것 뿐입니다."

"어리석구나. 헛된 꿈을 꾸는구나. 그런들 인간들이 다시금 찾아오는 위협에 대항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차라리 네가 영원한 자리에 앉아 모든 위협을 물리치는 편이..."

"그것이 비록 헛되다 하여도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모든 의미에는 뜻이 있으니 헛되다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안타깝고 어리석은 용사여, 그대의 소원을 이루어 주겠다. 단, 그 의지 또한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의지는 누군가가 남긴다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저 또한 누군가의 의지로 행동한 것이 아니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