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소서 여신이여,
그들의 증오를, 우리의 분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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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율을 담당했다.

사측과 노조가 같은 문서를 보되, 서로 다른 의미로 읽을 수 있도록 만드는 역할. 회의실 한가운데에 앉아, 양쪽의 단어를 낮추고 방향을 바꾸는 사람이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중재라 불렀고, 누군가는 기술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냥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이 표현은 노조 쪽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사측이 잠시 자료를 넘겼다.

“그럼 ‘책임’ 대신 ‘유감’으로 갑시다.”
노조 쪽 테이블에서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 정도면 기록으로는 남길 수 있겠네요.”
나는 키보드를 두드렸다.

문장은 중립을 띠었고, 누구의 잘못도 명시하지 않았다. 갈등은 조율되었고, 회의는 끝났다. 회의실에는 안도가 남았고, 그 안도는 언제나 나를 통과했다.

나는 인사평가 문서도 맡고 있었다. 노조와 사측의 협상보다 더 민감한 단어들이 등장하는 문서였다.
‘성과’, ‘기여’, ‘태도’.
어느 쪽으로 기울어도 문제를 만들 수 있는 단어들의 조합.
나는 이 문서에서도 조율을 했다. 평가가 아닌 것처럼 보이게, 판단이 아닌 요약처럼 읽히게.

“이건 너무 직접적인 것 같은데요.”

“수치를 조금 낮추죠.”

“주어는 빼는 게 좋겠습니다. ‘부족했다’보다는 ‘부족함이 관찰됨’으로.”

문장은 안전해졌고, 모두가 동의했다. 나는 늘 그랬듯, 어느 쪽의 표정도 오래 보지 않았다. 조율자는 표정을 기억하지 않는 편이 좋았다.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니, 나는 문장에서 나를 지우는 데도 익숙해졌다. 메일에서 ‘저는’이라는 말은 사라졌고, 대신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라는 표현이 남았다. 나의 의견은 ‘조율 결과’가 되었고, 나의 판단은 ‘합의된 방향’이 되었다.

인사평가 시즌이 끝났을 때, 나는 마지막으로 문서를 한 번 더 훑었다. 내가 조율한 문장들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받아들일 수 있는 평가, 누군가에게는 항의할 수 없는 결과. 그 문서들은 문제없이 통과될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며칠 뒤, 도착한 나의 인사평가서 역시 익숙한 형식의 문서였다.
객관적인 어휘, 중립적인 문장, 완만한 결론. 나는 거의 자동적으로 문장을 읽어 내려갔다.

“조율 역할은 수행했으나, 주도적 기여는 제한적이었음.”

“조직 내 긴장을 완화하는 데 기여했으나, 성과로의 연결은 불분명함.”

나는 잠시 멈췄다.
이 문장들은 내가 직접 쓰지는 않았지만, 분명 내가 설계한 언어였다. 책임을 묻지 않으면서도 평가를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 반박할 수 없고, 분노할 수도 없는 문장.

그곳에는 나를 향한 증오라는 단어는 없었다.
내가 분출한 분노라는 단어는 더더욱 없었다.

그러나 나는 알았다. 이것이 그들의 증오가 선택한 방식이라는 것을. 직접 말하지 않아도 되도록, 관계를 망치지 않고도 밀어낼 수 있는 언어. 밀어진 내가 여기서 분노를 분출하더라도, 회의실은 여전히 조용할 것이고 사측과 노조는 다음 안건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조율은 계속될 것이다. 내가 아닌 또 다른 누군가는 가운데에 앉아 문장을 다듬을 것이다.

집에 돌아와 구겨진 양복 자켓을 벗지도 않은채 그대로 개인 노트를 펼쳤다.
늘 빈 페이지로 남겨두던 첫 장에 잘 쓰지 않던 펜을 꺼내 문장을 하나 적었다. 조율되지 않은 문장, 중립적이지 않은 문장.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그들의 증오를, 우리의 분노를.

나는 그 문장을 오래 바라보다가, 천천히 여러개의 줄을 그어 지웠다.
지워진 자리에 남은 것은 애매한 형태의 잉크덩어리 뿐이었다.
그것이 이 문장의 가장 정확한 형태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 것, 어느 쪽에도 제출하지 않는 것. 나는 그 선택에 익숙했다.

다음날 아침, 나는 다시 익숙한 회의실에 들어섰다.
테이블은 이전과 같았고, 좌석 배치도 변하지 않았다. 사측과 노조는 각자의 자료를 펼치고 있었고, 나는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누군가 물컵을 밀어주었고, 누군가는 펜을 건넸다.

“이 부분, 표현이 조금 강한 것 같은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문장을 낮추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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