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삶이 익숙했다.

계획을 세우고, 무언가를 완성하고,

다시 새로운 일을 시작하며

끊임없이 나를 증명해왔다.

멈춘다는 건

어디까지나 패배의 다른 이름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제야 처음으로

가만히 있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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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방은 그 멈춤의 끝에서 시작된 공간이었다.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곳.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나는 그저 조용히,

이곳에서 숨을 고르고 싶었다.

사람이 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와도 눈 마주치지 않고

각자의 시간만 흘려보내면 된다고 믿었다.

처음에는 그랬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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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첫 손님이 다녀간 뒤,

그리고 두 번째 손님의 어색한 말 한마디가

마음을 어딘가 건드리고 지나갔다.

“생각보다 분위기가 좀 다르네요.”

그 말은 분명한 작별이었고,

나는 그 표정을 잊지 못했다.

‘나는 정말 이 공간을

비워두기 위해 만든 걸까?’

‘아무도 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던 걸까?’

며칠 뒤, 나는 작은 메모지에

짧은 문장을 적어

입구 벽에 조용히 붙였다.

“이곳은 조용한 글쓰기 공방입니다.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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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는

작지만 분명한 선언이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났을까.

문이 열렸다.

낯선 남자가 들어왔다.

검은 백팩을 메고,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회색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문 앞에서 잠시 망설이던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기… 그냥 들어와도 되는 거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커피 같은 거 마셔도 되나요?”

“편하게 드세요. 캔음료랑 간단한 과자도 있어요.”

“입장료 같은 건…?”

그제야 문 앞에 가격이나 이용시간에 대한 안내가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어쩌면 그게 더 이상하게 느껴졌을 수도.

즉흥적으로 말했다.

“이용료는 5천 원이에요. 시간 제한은 없어요.”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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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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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다

햇빛이 닿지 않는

가장 안쪽 테이블에 앉았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그가 먼저 말을 건넸다.

“여기, 원래 이렇게 조용해요?”

“네. 대부분 조용하죠. 사람이 거의 안 오니까요.”

“근데 이상하게 편하네요.

서울에선 이렇게까지 조용한 공간 찾기 힘들거든요.

‘조용한’이란 이름 붙은 카페도 시끄럽더라고요.”

나는 웃음 아닌 웃음을 흘렸다.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노트북을 꺼내 들었다.

“저도 요즘 글을 좀 쓰려고요.”

“글 쓰세요?”

“네. 뭐, 그럴 수 있다면요.

회사 다닐 땐 틈틈이 썼는데

지금은 좀 쉬는 중이라.”

나는 그의 사정도,

그가 어떤 시간을 지나고 있는지도 묻지 않았다.

그도 내가 왜 이곳을 운영하는지 묻지 않았다.

그 적당한 거리감이

묘하게 편안했다.

그가 말했다.

“이런 공간, 있으면 좋겠다 생각만 했는데

진짜 있었네요.”

“…네.”

“지금은 제가 첫 손님인가요?”

“세 번째요.”

“아. 두 분은 잘 계세요?”

“모르겠어요. 다들… 한 번 오고는 안 오셨어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괜찮아요. 저라도 자주 올게요.

당분간은 강릉에 있을 거거든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그가 앉아 노트북을 펼치는 모습은

무언가를 감당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은,

어쩌면 나의 과거와도

조금은 닮아 있었다.

바람이 창문을 스치고 지나갔다.

풀잎은 여전히 같은 방향으로 흔들렸지만,

이상하게도 공간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아주 작게,

그러나 분명히.